11년 전 로마의 칼라칼라 극장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 프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이 세명의 테너가 Three Tenors concert라는 이름으로 합동 공연을 했을 때 사람들은 꿈의 무대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공연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 공연의 녹화 중계를 보면서, 또 그 이후 출시된 VHF 비디오 테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세명의 테너는 이 공연의 대성공에 힘입어 그 후, 세계를 순회하면서 3테너 공연을 하였습니다. 94년 LA 월드컵에서도 98년 파리 월드컵에서도 그들은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90년 공연을 정점으로 그들의 목소리는 서서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94년 LA 공연에서 이미 쇄퇴의 조짐을 보였고 98년의 파리 공연은 이미 3테너는 오로지 옛날의 명성에 기대어 연주를 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오늘 소개해 드릴 이 앨범을 이미 수개월 전, 3테너의 다른 공연 실황과 같이 구입했었습니다. 그러나 계절도 걸맞지 않았을뿐더러 먼저 들어본 LA와 파리 공연에 너무 실망을 해서 아예 듣지도 않고 처박아 두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이 타이틀을 다시 생각해 내었습니다. 계절이 12월이라 크리스마스 캐럴이 듣고 싶어졌던 게지요. 이미 실망을 맛본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타이틀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들의 이번 앨범은 아주 색다른, 상당히 괜찮은 연주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 공연은 1999년 12월 23일, 음악의 도시 빈의 Konzerthaus에서 있었던 연주 실황 앨범입니다. Steven Mercurio가 지휘하는 비엔나 심포니와 Gumpoldskirchner Spatzen 어린이 합창단이 함께 공연하였습니다. 타이틀은 전주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눈발이 휘날리는 연주회장 바깥 풍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무대 뒤에서 세명의 테너가 연주회장으로 들어서는 모습들, 어린이 합창단과 인사하는 모습들, 기념 사진 촬영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관중들의 박수 속에 등장한 3명의 테너는 캐럴 매들리를 들려주는데 맨 처음에 들려주는 곡은 그 유명한 'White Chrisma'입니다. 클래식 가수들의 첫 곡이 대중 음악이라니 약간은 의외라는 느낌이 듭니다. 세명의 테너가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하는데 80년대에 이미 여러명의 팝송 가수들과 클로스 오버 음반을 낸 경험이 있는 도밍고가 가장 대중 음악적인 창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약간은 신선하게 와닿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의 화음입니다. 이전의 이들의 공연을 보면 합동 연주에서도 화음 위주의 노래가 아니고, 각 소절을 번갈아 가면서 자기의 기량을 한껏 뽐내면서 부르는 형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크라이 막스에서도 포르테의 유니슨 일색이었죠.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특히 눈에 뛰는 것은 두명 혹은 세명이 화음을 맞추어 듀엣이나 트리오를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매들리의 나머지 곡들에서도 이들은 때로는 따로 자기의 목소리를 뽐내기도 하고, 혹은 같이 화음을 맞추기도 하고, 그러다가 강렬한 포르테의 유니슨으로 노래하기도 하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감칠 맛 나게 들려 주었습니다. 노인네들의 늙어가는 목소리를 확인하려고 하는 나의 기대(?)는 처음부터 깨졌습니다.

이 음악회는 세명의 테너가 엮어내는 삼중창 캐럴 매들리를 드문드문 배치하고 그 중간에 솔로, 듀엣, 트리오 곡들을 집어 넣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매들리는 대체로 대중적이고 흥겨운 곡들이 많았고 매들리가 아닌 곡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엄숙한 곡들이 많은 듯 했습니다.

첫 매들리가 연주된 후 파바로티는 'Tu Scendi Dalle Stelle'란 곡을 독창으로 들려줍니다. 합창을 배경으로 그의 특유의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크리스마스를 차분하게 맞이하는 산골 마을의 정취를 느끼는 듯 합니다.

뒤이어 도밍고와 카레라스가 '북치는 소년'을 연주합니다. 이 곡은 우리들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곡입니다. 너무나 잘알려져서, 또한 테너가 노래하기에는 적절치않을 것 같아서 부르기 힘들 이 노래를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매력적인 화음의 이중창으로 소화해 냅니다. 환상적 분위기의 합창이 또한 곁들여 져서 더욱 감칠 맛 납니다. 특히 이 두 테너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피아니시모의 앤딩은 오랫동안 가슴에 여운을 남깁니다.

그 후에 연주되는, 역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징글벨'에서도 세사람의 테너는 흥겹고 빠른 곡 속에서도 잘 어울려지는 트리오 화음을 들려 줍니다. 너무 잘알려져서 연주하기 힘든 이 곡의 클래식컬한 재해석에 성공한 듯 보입니다.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는 점점 엄숙해지고 고요해 져 가는 것 같습니다. 정통 성가곡들이 많이 연주됩니다. '징글벨'이후 한차례의 매들리 연주가 끝나면 '참 반가운 신도여'라는 우리말 제목의 성가곡으로 우리에게 잘알려진 'Adeste fideles'가 연주됩니다. 카레라스와 파바로티의 이중창으로 연주되는데 비교적 무난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뒤를 이어 아당의 유명한 성가곡 'O holy night'가 연주됩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럴 중 하나나입니다. 도밍고와 파바로티의 이중창인데 도밍고의 선창을 받아 파바로티가 노래합니다. 저음부에서 약간 불안한 음처리를 보였지만 고음부로 가면서 합창과 도밍고의 목소리가 같이 어울어져 훌륭하게 후반부의 크라이막스를 마무리 합니다.

 

그 다음 곡은 우리에게 역시 잘 알려진 'Amazing Grace'입니다. '너무나 잘알려진 대중곡을 과연 성악가는 어떻게 부를까?' 하는 물음을 가지게 하는 곡인데, 이들 세명의 노래는 여기에 너무나 훌륭한 답을 해 줍니다. 이 단순하고도 잘알려진 멜로디를 세명의 테너는 자신만의 애드립을 가미하여 세명 모두 다르게. 다른 어느 가수가 부르는 것과도 다르게. 그러고도 너무나 은혜에 충만하게 불러 줍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노래 가사처럼 주님의 은총이 어깨 위로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 뒤에도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 우리에게 친숙한 몇 곡의 캐럴을 더 들려준 후 마지막에는 존 레넌의 'Happy christmas/War is over'로 무대의 막을 내립니다. 처음과 끝은 모두 대중곡으로 선곡을 했군요.

마지막에도 앵콜은 없습니다. 그냥 퇴장을 하는 군요. 조용히 감동을 새기며 크리스마스를 맞으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 타이틀은 클래식 타이틀로는 드물게 5.1채널로 녹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음질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5.1채널로 했을 경우 리어 스피커에서는 박수 소리 말고는 거의 들리는 것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박수소리의 녹음 레벨이 지나치게 높아서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볼륨을 줄여야 할 지경입니다. 따라서 차라리 2채널로 감상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2채널로도 음질은 좋습니다. 이 점만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 음향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야외 음악회가 아니여서 연주회장의 세밀한 음들이 모두 잘 녹음되어 있습니다.

화질또한 비교적 괜찮습니다. 정통 음악회이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리느라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부위를 제외하고는 아주 어둡게 처리가 되었지만 카메라는 비교적 좋은 화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감상한 뒤의 느낌은 아주 호사스럽고 깔끔한 귀족풍의 크리스마스 음악회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 상류층 인사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호사를 반쯤은 같이 누린 느낌이랄까요? 대규모 야외 콘서트가 아닌 실내 연주회라 그런지, 크리스마스의 흥청거리는 분위기 보다는 주님의 은총을 새기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조용하고 단아한 분위기가 느껴 지는 듯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분명 힘을 잃었습니다. 도밍고의 맑고 깨끗한 음색은 빛이 바랬고, 카레라스의 그 벨벳같은 목소리도 거칠어졌으며 파바로티 또한 예전의 그 화려하고 힘찬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호흡은 눈에 띄게 짧아졌고 마이크와 입의 거리도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는 이제 더 이상 듣기가 괴로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민끝에 선택한 래퍼토리가 크로스 오버일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것이 오히려 이 앨범이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이들이 예전의 스타일을 고집했다면 이 앨범이 DVD로 출반될 가치조차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힘을 잃은 목소리만 끝까지 붙들고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상대적으로 노래하기 쉬운 대중 음악을 많이 포함한 선곡, 개개인의 기량을 드러내기 보다는 화음에 신경을 쓴 편곡, 대중 음악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살린 새로운 해석과 시도, 어린이 합창단의 적절한 활용, 전문 트리오가 아닌 점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잘 어울어지는 화음, 관록의 목소리 등의 요소가 이 앨범을 가치있게 만들어 주고 있는 듯합니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우리 속담이 생각나는군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대중적인 크리스마스 캐럴을 클래식 가수가 부르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속된 말로 잘해야 본전이기 쉽지요. 그러나 여기서 이들이 들려주는 대중 크리스마스 캐럴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클로스오버의 모범을 보는 듯 합니다. 특히 '북치는 소년'과 'Amazing Grace'에서 보여준 이들의 해석은 분명 놀랄만 했으며, 이 앨범의 백미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의 노래를 비판적인 태도로, 분석적으로 들을려고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선곡부터가 그런 자세의 감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들의 소리는 분명히 노쇄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그것을 보상해 주는 무엇이 있는 듯 했습니다.

그들의 관록이 묻어나오는 멜로디, 오랜 시간 서로 맞추어온 호흡에서 나오는 화음, 그런 그들이 만들어 내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즐기고자 한다면 이 타이틀의 감상은 분명 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갖는 특별한 호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