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가장 성공한 테너를 들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가장 뛰어난 테너를 들라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여러 사람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 의견도 각각 다르겠지만, 가장 성공한 테너를 꼽으라면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꼽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카루소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 시절 카루소의 소리를 접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카루소가 미국의 한 시골 마을을 지날 때 농부에게 길을 물으며 자기의 이름을 이야기 하자 그는 잘 못 알아 듣고 몇 번을 되묻더니 "아! 당신이 그 유명한 사람입니까? 저도 잘 압니다. 로빈슨 크루소를 모를리 있습니까?"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지 않습니까?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두고 천박하게 소리만 질러댄다는 사람도 있고, 악보를 읽지 못해 자신만의 암호 비슷한 메모를 들고 다닌다고까지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파바로티를 카루소를 능가하는 테너로 꼽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파바로티는 가장 많은 레퍼토리를 보유한 테너 중 한 사람이고, 가장 많은 음반을 낸 테너이고, 가장 돈을 많이 번 테너인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지난해 서울 잠실에서 열린 3테너 연주회 게런티가 20억쯤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항상 관중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면서 황제처럼 군림하던 파바로티도 세월의 무게는 이길 수 없었는지 요즘은 듣기에 민망할 정도의 소리를 보여주고 있고, 은퇴 소문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으니 인생무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파바로티는 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의 모데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나이로 올해 68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제빵사였는데 본인 또한 무척 좋은 소리를 가진 아마추어 테너였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파바로티는 아버지와 함께 Gioacchini Rossini라고 하는 그 지역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 합창단이 국제 콩쿨에서 우승을 하면서 파바로티가 픽업 되어 정식으로 성악의 길로 입문하게 되었다고 하는 군요.

파바로티의 데뷔는 1961년입니다. 그해 파바로티는 이탈리아의 레조 에밀리아의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게 되고, 그 덕분에 그곳의 시립 오페라 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포역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 공연의 성공으로 그는 암스텔담, 비엔나, 취리히, 런던 등으로 자기의 활동 무대를 넓히게 됩니다.

1965년 2월 파바로티는 미국 데뷔 공연을 가지는데(Miami production이라고 하니 마이에미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는 이후 오랬동안 파트너쉽을 유지했던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와 함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불러 호평을 받습니다. 그 뒤 파바로티는 라 스칼라와,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지에서 차례로 데뷔 무대를 가지면서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갑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빛낸 계기는 1972년 2월 17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부른 도니제티의 오페라 'Daughter of the Regiment(연대의 아가씨)'입니다. 여기서 그는 무려 9번의 하이 C가 나오는 곡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불러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하이 C는 테너들의 머리에서 항상 떠나지 않는 화두와 같은 것입니다. 하이 C를 잘 내면 테너로서의 인기와 명예를 얻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 심한 패배감을 맛봐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테너들이 무리하게 하이 C를 내는 대신에 반음이나 한음 정도 내려서 노래하는 타협점을 찾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이후 파바로티는 '하이 C의 제왕'이라는 애칭을 얻게 되고 'Pavarotti Phenomenon'이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70년대가 파바로티로서는 정상의 테너를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던 시기라면 80년대는 명실공히 최고의 테너로서 세계 오페라계에 군림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는 그의 나이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의 시기인데, 젊은 시절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에 윤기와, 깊이가 더해져서 완숙하고 힘있는 목소리를 들려 줍니다.

90년대의 파바로티는 오페라보다는 대형 콘서트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몸이 너무 비대해져서 오페라 배역을 소화하기 힘들어 졌다는 점도 있었고, 목소리가 점점 쇠퇴해 가는 것도 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유명한 3테너 콘서트를 잇달아 열었고,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너비가 참가한 런던의 하이드 파크 공연에서는 15만명의 관중이 관람하는 메머드 공연을 성사시킵니다. 뿐만 아니고 1993년 6월의 뉴욕 센트럴 파크 공연에서는 50만명 이상이 관람했으며 그해 9월의 에펠탑 공연에서도 30여만명의 관중이 운집합니다. 또한 '파바로티와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고향 모데나에서 팝 스타들과의 크로스 오버 무대도 꾸준히 가집니다.

이러한 면으로 인해 그는 너무 상업적인 면에 치중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영국 언론은 ‘파바로티가 이제 성악계의 프랭크 시내트라가 되려나 보다’고 꼬집기도 했죠. 또한 그는 거액의 소득세 탈세와 관련되어 250리라(135억원)에 달하는 체납 세금과 벌금을 부과받았다니 세간의 비난을 받을 만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의 수익금을 분쟁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내 놓았으며 파바로티 음악 학교를 세워 후진 양성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최근의 파바로티의 목소리는 예전의 힘도, 화려한 음색도 모두 빛이 바랜 것 같습니다. 올해 미국의 메트 공연이 갑자기 취소되는가 하면, 2000년 11월 열린 미국 애틀랜틱시티 공연에서는 성난 관객이 환불을 요구했었고, 또 지난해 1월 메트 오페라의 ‘아이다’ 공연에서는 동료 가수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노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매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앞으로 더이상 파바로티의 모습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군요.

또한 올해 들어서는 파바로티의 은퇴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파바로티는 예전에 이미 '대뷔 40주년인 2001년이 되면 은퇴하겠다'고 이야기 했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평생의 라이벌 도밍고가 아직까지 비교적 생생한 목소리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어찌됐든 파바로티는 작년에 은퇴를 했었어야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노추를 보이는 것보다 팬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목소리를 새겨 놓고 아름다운 은퇴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파바로티의 전성기 앨범을 하나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바로 1999년 Kultur사에 의해 발매된 'Luciano Pavarotti Gala Concert'입니다.

1986년 뮌휀 올림픽 경기장에서 Emerson Buckley가 지휘하는 뮌휀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진행된 이 연주회는 현재까지 나와 있는 파바로티의 DVD로서는 가장 젊은 시절의 영상입니다.

젊은 시절이라는 말은 오래된 녹음이라는 말도 되겠지요?

그래서인지 DVD를 플래이시켜 보면 그 화질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색깔도 우중충하고 선명도도 떨어지고 색번짐도 심합니다. 흡사 질낮은 비디오 수준입니다.

그리고 음질도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5.1 채널은 물론 지원되지 않고 2채널 stereo로만 녹음되어 있습니다. 성악곡을 듣는데 5.1채널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녹음 상태가 썩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녹음 레벨도 낮은 편이어서 일반적인 타이틀 보다 음량을 높혀줘야 만족할 만한 음량이 나옵니다.

연주회장 또한 올림픽 경기장이라는 넓은 공간에 수만명의 관중을 모아 놓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써서 한 공연이기 때문에 양질의 녹음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절정기에 이른 파바로티의 그 쟁쟁한 소리입니다.

데뷔 25년을 맞은 50대 초반의 이 테너의 소리에서는 아직 노쇠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25년의 관록이 묻어나는 깊은 울림의 소리가 시청자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파바로티 목소리의 특징이라고 할 화려한 고음, 넓은 음역, 아름다운 음색, 뛰어난 감정 처리, 드라마틱 테너를 방불케하는 강렬한 포르테 등등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습니다.

수록곡은 비교적 적은데, 본 공연이 11곡이고 앵콜까지 합쳐도 14곡밖에 되지 않습니다. 런닝 타임도 60분 정도로 비교적 짧은 편입니다.

레퍼토리는 그가 즐겨 부르던 오페라 아리아와 이태리 대중 가곡들이 골고루 들어 있는데, 아리아 보다는 대중 가곡이 약간 많이 선곡되어 있습니다. 또한 레퍼토리의 성격도 어두운 곡보다는 밝은 분위기의 노래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폐쇄된 오페라 하우스나 콘서트 공연장이 아닌 올림픽 경기장이라는 확트인 공간, 많은 청중, 그래서 필연적으로 사용해야하는 마이크 등의 여건을 고려한 선곡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첫곡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Questa a quella(이것도 저것도)'로 시작합니다. 그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죠. 만토바 공작의 호색적인 마음을 노래한 곡입니다. 흥겹고 빠른 템포의 이 곡은 오프닝 곡으로서 적합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파바로티의 단골 레퍼토리 중의 하나인데 예의 그 힘있고 화려한 고음을 한껏 뽐내며 노래를 불러줍니다.

다음 곡은 역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입니다. 이 노래는 초연 당시 오페라가 개봉된 바로 다음 날부터 거리에서 불려졌다고 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던 곡입니다. 마지막 피날레에서의 파바로티, 역시 좋습니다.

다음은 칠레아의 오페라 '아를르의 여인' 중에 나오는 'E la solita del pastore'입니다. 여전한 목소리.

다음 세 곡은 파바로티가 늘 즐겨 부르던 이태리 대중 가곡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Mamma', 'Rondine al nido(제비는 돌아오고)', 'Lolita'를 불러 주는데 이태리 노래의 매력을 감칠맛 나게 전달해 줍니다. 특히 'Rondine al nido(제비는 돌아오고)'의 마지막 부분의 피아니시모 엔딩은 참 인상적입니다. 그는 여기서 한 호흡에 20여초 정도 지속되는 피아니시모 엔딩을 보여주는데, A플렛의 고음을 피아니시모로 그렇게 흔들림 없이 장시간 낼 수 있는 테너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의 전속 플루티스트처럼 된 Andrea Griminelli의 유려한 플루트 반주가 더욱 노래를 빛내 줍니다.

다시 오페라 아리아가 연주되는데 특히 두 번째 곡인 레온 카바로의 오페라 팔리아치 중에 나오는 'Vesti la guibba (의상을 입어라)'가 인상적입니다.

원래 이 노래는 드라마틱 테너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는 곡입니다. 특히 마리오 델 모나코의 소리로 들으면 최상이죠.

원래 리릭 테너로 분류되는 파바로티지만 여기서 그는 다른 어떤 드라마티코 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게 이 곡을 불러 줍니다. 리릭, 스핀토, 드라마틱을 넘나드는 파바로티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노래입니다. 비감한 파바로티의 표정에서 아내의 불륜을 알게된 직후에도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웃겨야 하는 팔리아치의 비애가 전해져 오는 듯 합니다.

손님들이 입장료를 치르고 연극을 보러왔다.
의상을 입어라.
하루네킨이 너의 코럼비네를 가로채더라도
팔리아치는 웃는다.
탄식과 눈물도 웃음으로 변한다.

웃어라 팔리아치
사랑을 잃어도,
고뇌의 가슴이 다쳐도
웃어라

다음 세곡은 역시 이태리 대중 가곡들입니다.

'Chiatarra Romana(로마의 기타)', 'La mia canzone al vento(나의 노래를 바람에 실어)', 'Non ti scordar di me(날 잊지 말아라)' 이렇게 세 곡이 연주됩니다.

이 중에서 특히 제일 마지막의 'Non ti scordar di me(날 잊지 말아라)'는 1950년대의 유명한 청춘 영화 '물망초'에 나오는 곡으로 주연을 맡았던 미성의 리릭 테너, 페루치오 탈리아비니가 불렀던 노래입니다. 다시 찾아온 옛 애인으로 인해 흔들리는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르는 절절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파바로티는 어린 시절 그의 우상이 탈리아비니였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파바로티의 단골 메뉴입니다. 노래 또한 절창입니다. 이 곡은 또한 제가 개인적으로도 20년 이상 애창하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고등 학교 재학 시절 테너 엄정행씨의 이태리 가곡집에서 처음 듣고 너무나 좋아서 늘 따라 부르던 노래였죠.

이 곡을 끝으로 연주회는 끝이 나지만 열렬한 관중들은 일어설 줄 모르고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많은 열성 팬들이 던진 꽃다발로 무대 바닥은 온통 꽃밭입니다. 심지어 멀리서 던진 꽃다발에 파바로티는 얼굴을 맞기도 합니다. 정장을 한 중년의 여성 팬들이 파바로티에게 보내는 환호는 십대의 그것 못지 않습니다. 무뚝뚝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독일 관중들의 이런 열렬한 환호는 파바로티의 인기가 얼마나 큰 것인가, 또 이날 그의 노래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런 열성 팬들의 성화에 못이겨 파바로티는 앵콜을 세 곡 불러줍니다. 첫곡은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 중의 'Donna non vidi mai(일찌기 보지 못한 미인)'이고 나머지 두곡은 이태리 대중 가곡으로 영원한 이태리인들의 애창곡인 'O sole mio(오 나의 태양)'와 'Torna a Sorrento(돌아오라 쏠렌토로)'입니다. 수도 없이 들었지만 다시 들어도 참 좋은 곡들입니다. 특히 파바로티는 'O sole mio'에서 그의 전유물 처럼 되어 있는 유명한 트릴을 선보여 관중들의 박수 갈채를 받습니다.

이날 공연에서 좀 아쉬웠던 것은 오페라 아리아들이 많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곡으로 즐겨 부르는 'Nessun dorma(공주는 잠못이루고)'를 비롯하여 그가 주된 레퍼토리로 삼는 많은 아리아들을 들어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전체 수록곡의 숫자가 좀 적은 듯한데다 이태리 대중 가곡의 비중이 좀 높아서 아리아 숫자는 더 줄었습니다. 아마도 쉴 새 없이 혼자 노래하는 독창회라는 것이 부담스러워 어려운 아리아들을 많이 넣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4년뒤, 로마 월드컵 직후 밀라노에서 있었던 비슷한 성격의 갈라 콘서트 실황인 'the Event'에는 20곡에 달하는 레퍼토리가 실려있고, 오페라 아리아가 주종을 이루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혹시 녹음 상태가 나쁜 몇몇 곡들을 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 앨범은 'the Event' 앨범에 비하면 녹음 상태와 화질은 확실히 떨어집니다. 수록곡도 적고 아리아 비중도 작지요. 그러나 적어도 파바로티의 목소리는 90년의 'the Event'에 비해서 훨씬 컨디션이 좋은 것은 분명합니다.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둘 중에서 이 앨범에 보다 자주 손이 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이 앨범은 현재까지 나와 있는 파바로티의 DVD로는 가장 젊은 시절에 녹음된 것이고 목소리의 상태가 제일 좋습니다. 단지 화질이나 음질이 최근에 녹음된 것에 비하면 떨어진다는 것이 흠이지만 이 위대한 테너의 전성기 목소리를 실황으로 고스란히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앨범의 구입 가치를 보증해 줍니다.

힘과, 기량과 원숙미가 고루 갖추어진 전성기의 파바로티를 한 번 만나보십시오.

 

PROGRAM

Questa o quella   Rigoletto (Verdi)
La donna e mobile   Rigoletto (Verdi)
E la solita del pastore   L'Arlesianna  (Cilea)
Mamma   (Bixio)
Rondine al nido   (De Crescenzo)
Lolita    (Buzzi)
Amor ti vieta   Fedora  (Giordano)
Vesti la giubba   I Pagliacci  (Leoncavallo)
Chiatarra Romana   (Di Lazzaro)
La mia canzone al vento   (Bixio)
Non ti scordar di me   (De Curtis)
ENCORES
Donna non vidi mai   Manon Lescaut  (Puccini)
O sole mio   (Di Capua)
Torna a Sorrento   (De Curtis)

Andrea Griminelli, Flute
The Munich Radio Orchestra
Conducted by Emerson Buck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