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그 전까지 보던 17인치 TV를 29인치로 바꿨습니다. 아남에서 나온 '화왕'이란 모델이었는데, 처음에 그 물건을 들여 놓고 너무 큰 화면에 눈이 어려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후 7-8년이 지난 2년전, AV를 시작하면서 구입한 영상 기기는 43인치 프로젝션 TV였습니다. 45인치로 커진 화면은 17인치에서 29인치로 업할 때처럼 처음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었습니다. 그러나 AV 생활이 계속되면 될수록 화면이 점점 줄어드는 듯 느껴지더니 요즘에와서는 AV 기계 중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것이 작은 화면이 되어 버렸습니다. 43인치라고는 하나 화면비가 4:3이므로 2.5:1 등의 포맷으로 촬영된 영화를 볼 때는 화면의 세로폭이 29인치 TV의 그것과 다름없이 되어 버리므로 불만스러울 수 밖에요.

그러나 거실 인테리어를 하면서 고정식으로 설치한 장식장의 변경할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더 이상 큰 TV를 들여 놓을 수 없었고, PDP는 화면 크기에 비해 너무나 고가라서 엄두를 못내고 있었습니다. 우리집 거실 구조에는 사실 프로젝터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우선은 가격이 만만찮았고, 또 프로젝터로 보는 대화면의 화질이 나쁠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크게 고려를 안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큰 화면을 구현하면서도 PDP처럼 전면부가 심플하게 처리된 LCD 프로젝션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이런 저의 생각은 한 후배의 집을 방문해 본 순간 일순간에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사한 지 며칠 안된 집이라 커튼도 설치 안된 집에서 대충 빛을 차단한 상태에서 시청한 11HT의 화질은 그동안 제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프로젝터에 대한 불신감을 일거에 날려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프로젝터의 가격도 상당히 떨어져서 보급형 기종의 경우 40-50 인치 프로젝션 TV의 가격대밖에 되지 않으니 상당히 구미가 당기더군요.

집에 돌아와서 당장 인터넷을 뒤지고 그 후배를 비롯한 몇몇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후보가 몇 개 나오더군요. 소니의 LCD 프로젝터 VPL-VW11HT, VPL-HS10, NEC LT 240 등의 세 모델과 이보다 낮은 가격대의 보급형 모델로 Infocus의 X1, 현대에서 만든 X1의 OEM모델인 HTS301, 파나소닉의 AE 300, 그리고 이들보다 고가의 모델로 NEC의 HT1000 등의 모델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최종적으로 제가 고민했던 모델은 VPL-VW11HT, VPL-HS10, NEC HT1000 이렇게 세 개의 모델이었습니다. 11HT와 HS10은 LCD 프로젝터로 LCD프로젝터가 가지는 화사하고 선명한 화질, 1366 x 786(11HT)픽셀, 1386×788(HS10)픽셀에 달하는 고 해상도등이 강점이었고, NEC의 HT1000은 DLP프로젝터로서 높은 명암비와 안시 루멘을 바탕으로 한 화질이 뛰어나다는 평이 있더군요. 몇가지 관점을 두고 고민한 끝에 NEC의 HT1000으로 모델을 결정했습니다. 구입 업체는 후배가 소개해 준 AV zone이었습니다.

물건은 서울에서 오지만 이곳 영주가 대구에서 가까운 관계로 설치는 대구에서 사람이 오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남철희씨라고 합니다. 남철희! 이분은 음악 타이틀의 감상기를 많이 쓰는 분으로 저는 평소 이분의 글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이분이 쓴 '코어스'의 'Unplugged'는 국내 AV파일들 사이에 코어스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됬던 감상기이도 하죠. 이분의 감상기를 읽고 해외 사이트에서 타이틀을 주문하느라 유난을 떨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특히 코어스의 언플러그드는 일본의 DVD판매점에서 거금을 들여서 구입하기도 했었죠. 뜻밖에 남철희씨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로 주말이 더욱 기다려 집니다.

이런 물건 주문하고 도착을 기다리는 일의 지루함은 겪어본 분들은 모두 이해하실 겁니다. 토요일 근무는 딴 날보다 짧은데도 불구하고 일각이 여삼추입니다. 프로젝터와 스크린은 토요일 오전에 이미 서울서 도착하였습니다. 스크린은 너무 길어 승용차에 실리지 않아서 아파트로 바로 배달시켰습니다. 집에 사람이 없는 관계로 경비실에 맡기도록 했지요. 근무가 끝나자 말자 득달같이 달려갔습니다. 스크린은 생각보다 무게도 무겁고 길이도 길더군요. 미국 다라이트사에서 나온 하이콘트라스트 다매트 수동형 스크린(106인치)인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잘 들어가지를 않아서 엘리베이트 천장등 커버를 벗기고 겨우 실을 수 있었습니다. 스크린과 프로젝터의 포장을 풀고 내용물을 살펴보았습니다. 프로젝터는 생각보다 상당히 크기가 작고 무게도 가볍습니다. 일주일 전 구경한 11HT보다는 훨씬 작습니다. 천장에 매달아야 하므로 소형, 경량이란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모양도 매끈하게 예쁩니다.

오후 6시 쯤 되니 드디어 설치를 맡은 남철희씨가 도착하셨습니다. 세분의 일행이 같이 오셨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철희씨는 기기 세팅을 위해 오셨고 기기 설치는 같이 오신 대구 소재의 AV업체의 사장님과 또 다른 직원이 주로 하셨습니다.

우리집 거실이 인테리어를 새로 해 놓은 관계로 미관을 해치지 않고 배선을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면서, 힘든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천장에 간접 조명을 설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어 이 공간으로 배선을 숨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으니...... DVDP와 프로젝터를 연결한 RGB 콤포넌트 케이블이 너무 짧은 것입니다. 주문할 당시 10미터정도면 충분하다는 말만 믿고 별 생각없이 10미터 짜리 케이블을 주문했었는데 막상 길이를 재 보니 최소한 13미터는 필요하였습니다. 결국 배선을 위한 작업만 마무리 해 놓고 나중에 15미터 짜리 케이블이 오면 다시 연결하기로 하고 나머지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쉽게 끝날 것 같던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군요. 6시 좀 넘어 시작한 작업이 근 11시가 되서야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더군요. 지금까지 뒷치닥거리만 하던 남철희씨가 이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바로 프로젝터를 세팅하는 일입니다. 스크린에 정확한 상을 맺게 하는 키스톤, 코너스톤 세팅 등 여러 가지 작업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칼라 세팅이 또 남아 있었습니다. 그이는 미리 가방에 준비해 온 레퍼런스 타이틀을 꺼내서 이것 저것 바꿔가면서 저에게 어떤 색감이 좋으냐고 의논을 해가면서 세부 색상을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은 사실 저녁에 딴 약속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활동하고 있는 음악 동호회 회원의 집에 가서 기기를 조정해 주기로 했었던 모양인데 우리집 일이 늦게 끝난 관계로 결국 약속을 못지키고 말았습니다. 여러 가지 타이틀을 번갈아 가면서 걸어 색감 조정을 반복한 끝에 대충 세팅이 마무리되어 갑니다. 시간은 벌써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습니다. 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은 세팅치를 찾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남철희씨의 모습에 자그마한 감동을 느낍니다.

이분은 사실 수개월 전 같은 모델의 프로젝터를 본인의 집에 설치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세팅치를 이미 가지고 있을 터이고, 그 수치대로 세팅해 줘도 될 터인데도 저의 의견을 물어가며 일일이 다시 세팅해 줍니다. AV를 직업으로 하지 않고(이분의 직업은 어린이 완구 관계 일입니다.) 취미로만 하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오히려 제가 너무 늦었으니 이만 가시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 번 보겠노라고 하면서 이들을 돌려 보내야 했습니다.

이분들이 가고 나서 이것저것만지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새벽 4시를 훌쩍 넘깁니다. 아쉽지만 이제 자야 합니다. 내일 다시 봐야지요.

 자 그럼 설치된 모습을 한 번 보여드릴까요? 물론 아래의 사진은 케이블을 긴 놈으로 교환한 뒤의 깔끔해진 모습입니다.

 

텐션 스크린이 아니라 아무래도 화면이 약간 웁니다. 하이콘트라스트 다매트는 일반 스크린 보다는 낫다고 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를 감상해 보니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좀 더 흐르면 불만이 생겨서 액자형이나 탠션 스크린을 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한 번 틀어봐야겠죠?

어떤 화면이 나오는지 한 번 볼까요? 스크린에 비춰진 화면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이라 실제의 느낌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일단 한 번 보시죠.

위의 4컷은 글래디에이터, 아래 두 장면은 분노의 역류에서 찍은 장면입니다. 아래 두 사진은 소스의 화질도 떨어지는데다 비스듬히 찍은 사진을 포토샵에서 수정했더니 화질이 좀 떨어지는군요.

역시 대화면이 주는 감동은 남다릅니다. AV생활을 시작하면서 42인치 TV를 장만하고 DVD를 시청했을 때의 감동이 새삼 생각납니다. 그러나 프로젝션 TV의 큰 화면은 소형 TV에 비할 수 없는 많은 감동을 주었지만 역시 영화를 집에서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 산다는 생각이 강해지더군요. 모두가 작은 화면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터로 투사된 100인치의 화면은 집에서 영화를 본다는 느낌을 없애줍니다. 마치 영화관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극장의 불편한 의자가 아닌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서 영화관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 AV의 궁극의 목적아니겠습니까? 그 목표점에 성큼 다가선 느낌입니다.

TV로보는 화면과 프로젝터로 보는 화면은 화질 또한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Film-Like한 화질'이 어떤 것이냐를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암부 표현, 흑의 계조가 어떠니, 콘트라스트가 어떠니 하는 등, 그동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던 용어들이 어떤 뜻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화질에 있어서는 3관식 프로젝터가 강점이 있겠지만 HT1000이 보여주는 화질은 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줍니다.

후배의 뽐뿌질 아닌 뽐뿌질로 거금을 들이긴 했지만 TV와는 차원이 다른 화면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딴 어떤 기기의 바꿈질보다도 TV에서 프로젝터로의 바꿈질은 들인 돈 이상의 만족을 주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터을 설치한지 4-5일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연일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시야를 꽉 채워 주는 스크린에다 이 타이틀, 저타이틀 걸어 시청하다 보면 매일 새벽 2시를 넘기기 일쑤입니다. 당연히 몸 컨디션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저녁이 기다려 집니다.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고 DVD를 보기 위해서 말이죠.

※ 위의 두 화면은 자연스러운 사진이 아니고 불을 끝 상태에서 찍은 사진과 조명을 약간 켠 상태에서 찍은 사진을 합성한 것입니다. 이정도 조명 상태에서는 이렇게 깨끗한 화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혹시 오해하실까봐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