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구정 때 처음 호주를 방문했을 때는 관광에 많은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뉴캐슬에는 이틀밖에 머물지 못했고 나머지 날들은 헌터 밸리, 골드 코스트, 블루 마운틴, 시드니 등지를 여행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광보다는 가족들이 있는 뉴캐슬에서 일주일 내내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집사람과 애들이 호주에 도착해서 정착하기까지, 그리고 그후로 지금까지 8개월여 생활하는동안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가족을 이역만리 떠나보낸 저로서는 이분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인데 덕분에 이번에는 이런분들과 함께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윤영일 군은 저의 대학교 써클(합창단) 후배입니다. 저보다 9년이나 후배라 학창 시절에는 서로 몰랐지만 합창단 출신 동문들의 온라인 모임을 통해 호주에 거주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우리 가족이 호주에 가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후배입니다. 처음 호주에 갈 때 우리 가족들은 참 황당하게 떠났더랬습니다. 정착할 도시인 뉴캐슬에는 단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집사람과 애들이 다닐 학교만 정해졌을 뿐, 아무것도 미리 마련된 것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정 안되면 일단 뉴캐슬로 가서 호텔에 머물면서 살 집을 알아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죠. 이때 우리 가족을을 뉴캐슬로 태우고 가서 뉴캐슬 한인 사회의 해결사이신 한인 교회 목사님을 소개해 준 이가 바로 이 후배입니다.

그 후로도 학비, 생활비 송금 문제, 여행 문제 등 자질구래한 귀찮은 일들을 기꺼이 맡아서 해결해주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이번에도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고 씨 크루즈 예약등 시드니 관광에 대한 안내를 해 주었고 애들 미용실도 예약을 해 주는 등 애를 많이 썼습니다. 호주에 올 당시 신혼이던 이들 부부는 호주에서 애기를 가졌고, 제가 가기 일주일 쯤 전에 부인이 출산을 하였답니다. 산모와 애기는 모두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후배는 기분이 참 좋은 듯 합니다. 같은 도시에 살면 좀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었지만 시간 여유가 없어서 시드니 도착하던 날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애기에게 줄 조그만 선물을 전달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윤섭이가 호주가서 사귄 친구 중에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샘(Sam)이라고 하는 호주 아이가 있었습니다. 샘은 윤섭이와 친하기도 하지만 우연하게도 윤섭이와 생일이 같다고 합니다. 작년 11월 초 샘이 자신의 생일 파티에 윤섭이를 초대했는데, 초대장이 놀랍게도 한글로 되어 있더랍니다. 그것도 세련된 필체로 말입니다. 알고 봤더니 이 초대장은 샘이 직접 쓴 것은 아니고 윤섭이가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어서 영어를 잘 모를까 걱정이 된 샘의 어머니께서 이웃에 사는 한국인에게 부탁을 해서 작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샘의 생일 파티에서 초대장을 대필해 준 분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분은 뉴캐슬 대학교 공과 대학에 재직하고 계시는 김호성 교수님 부인이었습니다. 뉴캐슬 대학교의 유일한 한국인 교수라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가족은 교수님 부부를 알게 되었고, 이 분들은 그 이후 늘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 가족을을 돌봐 주고 계십니다. 특히 뉴캐슬 대학의 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시는 사모님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책과 비디오(이곳 도서관에서는 비디오도 빌려줍니다.)를 빌려서 갖다주시기도 하고 자주 집으로 초대해서 밥도 먹여 주십니다. 며칠 전 전세계에 동시 출간된 해리포터 책도 도서관에 들어오자말자 바로 대출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갖다 주셨답니다.

화요일 저녁에는 교수님 댁에서 술을 한잔 하기로 했습니다. 호주의 대학생들은 한 학기가 끝나고 나면 술을 한잔씩 거나하게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로 치면 종강 파티와 같은 것이죠. 집사람도 학생이지만 사모님 또한 50대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최근 뉴캐슬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시는 학생으로 등록을 한 학생이십니다. 두사람 모두 며칠전 1학기 수업을 모두 끝냈으므로 이를테면 이날의 술자리는 이 두 여성분의 종강 파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종강은 여자들이 했는데 술은 남자들이 다 마셨습니다. 많은 종류의 호주 와인들을 마시면서 밤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거의 자정이 가까워서 끝났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도 우리 가족은 시내에 있는 터키식 레스토랑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 터키식 레스토랑에는 밸리 댄서가 공연을 하는데 뉴캐슬에서 밸리 댄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합니다. 식당은 뉴캐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뷰몬트 거리에 있습니다. 뷰몬트 거리는 뉴캐슬에서 밤 문화가 가장 활발한 곳입니다. 호주는 오후 5시만 되면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데 이곳만은 밤 늦도록 불야성을 이룹니다. 밤이 외로운 주당들이나, 사랑에 빠진 커플이나, 뻗치는 정열을 주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때로는 마약에 취한 젊은이를 볼 수도 있는 곳입니다.

레스토랑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습니다. 예약된 좌석에 앉아서 주문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있는 케밥을 비롯하여 여러가지의 터키 음식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터키 음식은 전혀 먹어보지 않았던 터라 교수님 부부께 알아서 주문해 달라고 맡기고 처분만 바라고 있었습니다. 사모님께서 몇가지 종류의 음식을 주문하셨는데,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덜어먹으며 골고루 맛볼 수 있게 준비해 달라고 하십니다. 터키 음식은 양고기를 많이 쓰는데, 이날도 양고기 요리를 몇가지 시켰습니다. 양고기는 조리를 잘하지 않으면 특유의 냄새 때문에 처음에는 먹기가 힘들 수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조리를 잘해서 그런지 괜찮습니다. 물론 처음 먹는 양고기이고, 터키 스타일 음식이라 아주 맛있다고 하긴 힘들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고, 무엇보다도 색다른 음식에 대한 경험이란 사실만으로도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갑자기 요란스러운 음악이 흘러 나옵니다. 밸리 댄스가 시작되나 봅니다. 밸리 댄스라고 해봐야 무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댄서가 손님들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댄서도 터키인은 아닌 듯하고 무용 솜씨도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댄서는 손님들을 무대로 끌어내 즉석에서 같이 댄스를 하도록 유도해서 관객들에게 유쾌한 경험을 더해 줍니다. 그러나 지목된 사람이 춤을 잘 추지 못할 때는 상당히 곤혹스럽기도 한데 제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케이스입니다. 동양인이라 특이해 보였던지 저에게도 두 번이나 와서 같이 춤을 추자고 하는 것을 춤에는 워낙 잼병인 저는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백호주의(White Australianism)로 대표되는 호주의 이민 정책은 1970년대 중반 백호주의가 공식적으로 철폐되고, 1980년대 들어 다민족주의(Multiculuralism)를 표방하면서 세계각국으로부터 다양한 이민을 폭넓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호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민족의 집단 거주 지역에 가지 않아도 다양한 음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 일본, 타이, 베트남 등지의 음식은 어디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음식입니다. 아쉽게도 한국 음식점은 한인 타운 근처나 한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 아니면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일 것입니다. 한국 음식점들도 호주 사회에 많이 진출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 맞은편에는 '프랭크', '몰린'이라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살고 계십니다. 이분들은 원래 목장을 경영하는 농부였는데 수년전 할머니의 남동생에게 농장을 대부분 양도하고 은퇴하시면서 이곳으로 이사오셨습니다. 또한 우리 가족이 사는 집과 병을 맞대고 있는 옆집에는 '피터'와 '조이'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십니다. 이분들 또한 프랭크 할아버지네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데, 피터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음악, 영어 과목 교사(원래 전공은 피아노)이시고, 조이 할머니는 전직 간호사 출신으로 지금은 간호사 일은 그만 두고 병원의 접수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 두 부부는 현재 우리 가족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고 우리 가족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시는 분들입니다.

프랭크 할아버지는 앞마당의 잔디 깍는 일, 고장난 의자 수리, 빨래줄 다는 일 등, 집안에서 남자의 손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항상 도움을 주십니다. 은퇴하신 분이기 때문에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은데 보통 차고 문을 열어 놓고 작업을 하십니다. 이 작업실에서는 우리 집이 바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집에 낯선 사람이 방문하면 집사람에게 누구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낯선 사람은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등 친정 아버지와 같은 관심을 보이는 분이십니다. 거의 감시당하고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저로서는 마음 든든한 일이죠. 또한 이집의 손녀중 - 모두 9명의 손자, 손녀가 있답니다. - 한 녀석은 윤섭이와 같은 반 친구이기도 하고, 윤섭이와 피아노 레슨도 같이하는 등 꽤 친하게지냅니다. 이집과 피터 할아버지 집에 또래의 손자 손녀가 놀러오면 항상 우리집 애들과 신나게 놀다 간답니다.

피터 할아버지는 평생을 교직에 종사하는 분 답게 애들을 대하는 법을 잘 알고 계신 듯 합니다. 애들의 입장을 잘 이해해 줄 뿐만 아니라 성격이 매우 유쾌한 분이셔서 애들과 같이 재미있는 장난도 많이 하고 늘 애들을 즐겁게 해 주십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할아버지에게 일주일이 두 번씩 피아노 레슨을 받기도 하는데, 피아노 레슨이 있는 날은 할아버지가 애들을 태워서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로 가서 피아노를 가르칩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애들은 피아노를 배웠지만 체르니, 하농 등의 교본 위주의 연습만 시켜서 애들이 지겨워 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터 할아버지는 클래식 뮤직과 컨탬퍼러리 뮤직(피터 할아버지의 표현인데, 대중 음악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을 적절히 섞어서 가르치므로 애들이 무척 흥미를 느낀다고 합니다. 피터 할아버니는 클래식 음악이 모든 음악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긴 하지만 대중 음악과 적절히 병행을 하면 더 좋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신답니다.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피터 할아버지의 레슨 방식은 큰 애에게 많은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섭이에 비해서 형섭이는 피아노에 대한 흥미가 좀 적었었는데, 피터 할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난 뒤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피터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영어를 같이 가르치시기 때문에 집사람의 전공 공부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십니다. 과제물 작성이나 에세이 교정 등 여러 가지를 많이 도와주셔서 집사람의 공부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집안에 물건이 부서지든지 수리할 일이 생기면 집사람은 프랭크 할아버지 댁에 갑니다. 바느질 할 일이 생기면(집에 재봉틀이 없거든요) 조이 할머니한테 가면 해결됩니다. 공부하다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피터 할아버지가 도와 주십니다. 이 두 부부가 없었다면 집사람이 호주에서 정착하는데 훨씬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집사람 주변의 한인들은 초기에 정착할 때 교민들의 도움을 잠깐 받고는 그 뒤로는 전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을 신기해 한답니다. 집사람이 모든 것을 잘해서가 아니고 사실은 이 분들이 도와주기 때문이죠. 이런 좋은 이웃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랭크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자신의 농장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수요일 오전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의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처남에게 넘기고 일부분의 지분만 갖고 계시긴 하지만 그 농장은 할아버지가 젊은 날의 피와 땀으로 일군 농장입니다. 프랭크 할아버지는 2차 대전에서 부친을 잃고 전후에 18세의 나이로 호주로 이민을 와서 지금의 농장을 일군 의지의 이태리인입니다. 당시만 해도 영국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서양인이라 해도 많은 차별을 받을 때인데 훌륭하게 정착한 것입니다.

뉴캐슬 시내를 벗어나 북서쪽으로 차로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레이몬드 테라스라는 곳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농장은 이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소 읍과 같은 레이몬드 테라스에서 몇가지 식료품을 산 뒤 교외 지역으로 조금 더 가니 할아버지의 농장에 도착합니다. 이곳 주변은 모두 지평선이 보이는 광할한 초원 지역입니다. 드넓은 농장에 드문드문 소와 말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입니다.

할아버지의 농장의 면적은 모두 375헥타아르라고 합니다. 나중에 도량형 환산표를 보았더니 우리의 평수 개념으로 보면 자그마치 100만평이 넘습니다. 여의도가 그정도 면적 아니던가요? 암튼 무지 넓더군요. 농장 주변에 울타리만 쳐 놓고 소와 말들을 방목시키는데 소가 140마리 말이 40마리 정도 된답니다.이렇게 광할한 지역에 방목을 하니 특별히 음식을 챙겨주지 않아도 가축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먹고, 자랍니다. 일년 사시사철 푸른 풀들이 있으니(한겨울에도 새파란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사료가 필요 없는 거지요. 우리나라 축사에 늘 문제가 되는 분뇨 처리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가축의 배설물은 토양이나 물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풀을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된다고 합니다. 하긴 목장이 워낙 넓은 지역이어서 배설물 좀 있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트랙터 뒤에 달린 웨건을 타고(우리나라 경운기 뒤에 달린 짐칸과 비슷한 건데 좀 큽니다.) 목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프랭크 할아버지는 집근처의 제과점에서 유통기한을 넘긴 빵을 얻어다가 소와 말에게 특별 간식으로 나눠 줍니다. 우리 애들도 빵을 뜯어서 소와 말들에게 던져 주느라 무척 신이 났습니다.

목장의 가축들을 한 바퀴 둘러본 뒤 그랙(프랭크 할아버지의 처남)은 트랙터를 몰고 목장의 한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 올라갑니다. 물론 이 산도 이 목장의 소유입니다. 수풀 속을 한참 헤치고 가니 자그마한 연못과 공터가 나옵니다. 오늘 바비큐 파티를 할 장소입니다. 이미 여러차례 바비큐를 한 듯 불에 그을린 돌들과 타다만 나뭇가지들이 보입니다. 프랭크 할아버지는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들을 주섬주섬 모읍니다. 우리도 할아버지를 도와 나뭇가지를 모았습니다.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철판을 올려 놓고 바비큐 준비를 합니다.

농장에 다녀온 날 저녁에 우리는 프랭크 할아버지 부부와, 피터 할아버지 부부를 초청하여 저녁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을 딸이나 손자처럼 잘 대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인 셈인데, 집에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식당에서 대접하였습니다. 식당은 뉴캐슬 항구에 위치한 'Scratchler'라는 이름의 해산물 전문 식당인데 음식이 무척 맛있습니다. 제 입맛에도 잘 맛습니다.

식사 중에 프랭크 할아버지의 아내인 몰린 할머니가 우리보고 스파게티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제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할머니께서 우리 가족과 피터 할아버지 가족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스파게티를 대접하겠다고 하면서 시간을 잡아보라고 말합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꺼이 초대에 응하기로 하였습니다. 토요일 저녁으로 날을 잡았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프랭크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스파게티가 만들어지는 동안 에피타이저로 간단한 다과와 에피타이저용 포도주가 나옵니다. 마침 TV에서 마이클 잭슨 대뷔 3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을 중계해 주고 있어 이것을 시청하면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스파게티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먹어보던 스파게티와는 소스의 맛이 조금 틀리긴 한데 맛은 좋습니다. 특히 해산물이 많이 들어 있어 더욱 맛있습니다. 스파게티가 나온 이후에는 치킨 캐트릿이 나옵니다. 스파게티가 메인 디쉬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앙트레 격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 또 달콤한 케익과 파이가 디저트 와인과 함께 제공되더군요.

그냥 간단하게 스파게티만 먹는줄 알았더니 풀코스 정찬입니다. 배 터져 죽는줄 알았습니다.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주는 음식 마다 않는 성격 때문에 나오는 대로 다 먹었더니 정말 배부릅니다. 그런데 몰린 할머니와 조이 할머니도 저와 같은 양의 음식을 모두 다 드십니다. 저도 먹는 것은 잘 먹는 편인데 서양 사람들의 배가 역시 크긴 큰 모양입니다.

두 번의 방문과 식사로 이들과 상당히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프랭크 할아버니는 저의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고 저에게 짐(Jim)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본인도 원래 이름은 프란체스코인데 영어를 쓰는 호주인들이 발음하게 쉽게 하려고 프랭크로 고쳤다고 합니다. 뉴캐슬에 온 첫날부터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시고 그후로 만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부르니 나중에는 짐이란 이름에 꽤 익숙해 집니다.

수요일 저녁 식하 후 몰린, 조이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일상적인 인사가 아닌 포옹을 하십니다. 볼에 하는 가벼운 키스와 함께. 이런 인사는 저도 생전 처음 해봤습니다. 저희 가족을 그만큼 친근하게 여긴다는 표시인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들 부부는 제가 떠나는 날에도 일부러 다시 저희집을 방문하셔서 작별 인사를 하셨고, 제가 떠나고 난 다음날 다시 방문하여 남편이 떠나서 서운하지 않느냐고 위로해 주는 등 깊은 배려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오래오래 기억될 소중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을 끝내고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들이 이런 따뜻하고 고마운 이웃들을 가지게 되어 참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 집사람과 애들을 두고 돌아오는 발길이 많이 가벼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동포간의 끈끈한 정이, 인종을 초월한 이웃간의 따뜻한 사랑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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