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코스트를 비롯하여 여러곳을 여행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전번 방문과는 달리 이번에는 뉴캐슬에서 계속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월, 화요일은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요일은 프랭크 할아버지 농장에 다녀왔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1박2일 코스로 전번 방문때 들렀던, 와인으로 유명한 헌터 밸리를 다시 한 번 찾았습니다. 헌터 밸리에 대한 이야기는 전번 여행기에서 소개한 적이 있죠?

역시 시간은 빨리도 지나갑니다. 한 주일이 휘딱 지나고 벌써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군요. 오늘은 뉴캐슬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한시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스티븐 항구 (Port Stephens)을 둘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스티븐 항은 호주에서 상당히 유명한 휴양지로 호주 관광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곳입니다(포트 스테판이라고 하면 호주에 다녀온 사람들은 익숙할 수도 있겠습니다. 원래 발음은 포트 스티븐이지만 한국인들은 포트 스테판이라고 발음하고 관광 책자에도 그렇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전날은 1박 2일로 헌터 밸리를 다녀왔고 저녁에는 교수님 부부와 저녁 식사(터키 레스토랑), 또 그 뒤엔 우리집에서 밤 늦도록 술까지 마신 터라 아침에는 조금 늦잠을 잤습니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넬슨 베이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넬슨 베이는 스티븐 항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이름입니다.

호주에 온지 5일째 되던 그저께부터 집사람의 차를 제가 몰기 시작했습니다. 호주는 영국이나 대다수의 연연방들처럼 자동차가 좌측 통행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조작 기기의 위치가 한국과 반대입니다. 운전석이 오른쪽 좌석에 붙어 있고, 와이퍼는 핸들의 왼쪽에, 방향 지시키는 핸들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어 레버도 당연히 왼쪽에 있죠. 좌측 통행 차량과 배치가 같은 것은 발로 조작하는 클러치, 브레이크 페달, 엑셀러레이터 페달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 운전을 하면 좌, 우회전을 하면서 반대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고, 좌,우 깜빡이를 넣는다는 것이 와이퍼를 작동시키기도 하는 등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운전하기를 천성적으로 즐기는 저는 이번 방문때는 꼭 운전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방문 5일째인 목요일부터 집사람이 걱정하는데도 불구하고 핸들을 잡았습니다. 조금 햇갈리는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두 번의 방문으로 이미 좌측 통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 져 있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우려했던 좌,우회전 시 반대 차선으로 진입하는 일은 늘 신경을 써서 그런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방향 지시키는 거의 무의식 중에 손이 먼저 가기 때문에 깜빡이 대신 와이퍼가 작동되는 일이 몇 번 있긴 했습니다. 또한 늘 좌측 핸들에 익숙해 져 있어서인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차가 차선에서 왼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더군요.

집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큰 문제 없이 이틀을 몰았고 오늘도 스티븐 항까지 가는 길에도 제가 핸들을 잡았습니다. 호주의 차들은 큰 대륙에서 운행되는 차인 만큼 '크루즈 컨트롤'이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고 집사람의 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루즈 컨트롤은 일정한 속도에서 세팅을 해 놓으면 엑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저절로 세팅된 속도가 유지가 되는 장치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좁고 도로가 복잡한 곳에서는 별로 소용이 없지만 이 나라처럼 차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고속도로를 몇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경우는 엑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편하게 운전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크루즈 컨트롤은 과속을 방지하는데도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속도에 무감각해 져서 점점 속도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하면 엑셀러레이터에서 아예 발을 떼므로 항상 규정 속도 이하로 운행할 수 있습니다. 지도를 읽어 가며 새로운 도로를 달리는 재미와 크루즈 콘트롤을 작동하는 재미 등을 즐기다 보니 스티븐 항까지 금방 도착합니다.

'스티븐 항 (Port Stephens)'은 1770년 시드니에서 동부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여행하던 제임스 쿡 선장이 이곳을 발견하였는데 그의 보좌관인 '필립 스티븐'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곳은 시드니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3시간 가량, 뉴캐슬에서는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인데, 카루아강과 뮈얄강이 만나는 곳에 천연의 방파제와 같은 지형 안쪽으로 형성된 깊숙한 만이기 때문에 시드니 항처럼 파도가 거의 없고 항상 잔잔한 호수같습니다. 이곳에는 40Km에 이르는 넓은 해변과 내륙에서나 볼 수 있는 사막등 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이곳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돌고래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거의 항상 돌고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항구에는 많은 배들이 돌고래 구경을 주제로 한 씨 크루즈 (Dophine watching cruise)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넬슨 베이 (Nelson Bay)'입니다. 그래서 이 일대는 '포트 스티븐'보다도 '넬슨 베이'란 지명으로 더 많이 불리기도 합니다.

넬슨 베이는 유명한 휴양지답게 조그만 시골 어촌같은 동네가 제법 붑빕니다. 차를 주차할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큰 관광 버스들이 주차한 옆에 간신히 공간을 찾아내서 차를 세웠습니다. 집사람과 애들은 이미 한 번 와 본 적이 있던 곳이라 모든 것이 익숙합니다. 매표소에서 돌고래 관광선 표를 사고 시간을 보니 출항 시간까지는 한 30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 봤더니 배 안에서는 커피와 간단한 스낵은 있지만 식사는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하고 대신에 음식물을 사가지고 탈 수는 있다고 합니다. 배를 타기 전에 점심 식사를 마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여 패스트 푸드를 사서 배 안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부둣가에는 많은 상점과 음식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Subway'라는 패스트 푸드점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가게의 간판을 보고 이런 동네에 지하철이 있나 싶었는데 알고 봤더니 패스트 푸드점이더군요. 미국에서 시작된 패스트 푸드점이라고 합니다. 길다란 롤 빵 속에 여러 가지 내용물을 넣고 먹는 샌드위치 같기도 하고 서양식 핫도그나 햄버거 같기도 한 음식입니다. 빵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의 종류가 무지하게 다양한데 우리는 미트볼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두 개만 주문하였는데 빵이 워낙 길어서 혼자서 한개 다 먹기는 힘들고 반으로 잘라 두명이 나눠 먹으면 딱 맞습니다. (※ 이 여행기를 쓰면서 알아봤더니 이미 국내에도 42군데나 체인점이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저로서는 호주에서 처음 봤습니다.)

배를 타면서 승무원에게 음식 가지고 들어가도 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승무원이 "안된다"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매표소에선 분명히 된다고 했는데? 약간 당황이 됩니다. 그럼 이 음식들을 어쩌나? 그러나 이어서 나오는 승무원의 말, "나한테도 좀 나눠주고 가야지 그냥은 안된다"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으흠 영어 서툰 사람에게 농담을......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당신이 먹을 것도 준비해 오겠다"라고 말한 뒤(물론 집사람이 말했죠), 배에 올랐습니다. 우리처럼 음식을 싸가지고 오는 사람이 많은 듯 선실에는 식탁과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한켠에는 커피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더군요. 본격적으로 구경이 시작되기 전에 식사부터 빨리 했습니다. 며칠전 해리스 핫도그 먹으면서 흘렸던 경험을 되살려 이번에는 흘리지 않고 잘 먹었습니다.

출항 시간이 되어 서서히 배가 출항합니다. 이 곳은 시드니 항처럼 항구 주위의 풍경은 크게 다양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식 빌딩이 즐비한 시드니 항과는 달리 한적한 시골 항구의 고즈넉한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입니다. 오늘 탄 배는 시드니에서 탔던 배보다는 훨씬 큽니다. 2개 층의 선실이 있고 그 위에는 널찍한 갑판이 있어 시원한 바닷 바람을 맞으면서 경치를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80-90%는 한국인인 것 같습니다. 중국인인 듯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동양인의 대부분은 한국인이었습니다. 작년에 저의 여동생 부부가 호주에 관광왔을 때도 이곳에 들렀다고 하던데, 아마 그들처럼 한국에서온 단체 관광객들이 탑승한 모양입니다.

넬슨 베이의 씨 크루즈는 사실 풍경보다는 돌고래가 주된 구경거리입니다. 이곳은 호주에서 가장 돌고래가 많은 해안이어서 배를 타고 나가면 거의 항상 돌고래를 구경할 수 있는데 돌고래를 볼 수 있는 확률이 97%나 된다고 합니다. 특히 스티븐 항구는 '호주의 돌고래 수도(Dolphin Capital of Australia)'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라고도 하니 이곳의 돌고래가 얼마나 유명한지 알 수 있습니다. 마침 우리가 간 이 날은 유난히도 돌고래가 많이 보였습니다. 거의 20-30 여마리는 본 것 같은데,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온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지난번 애들과 집사람이 왔을 때는 돌아올 무렵 겨우 몇마리 봤을 뿐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무척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애들은 돌고래를 질리도록 봤다고 즐거워합니다. 저도 돌고래를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는 많이 봤지만 바닷속에 있는 천연 돌고래는 처음 봤으므로 무척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다시 차를 몰고 인근에 있는 '아나 베이 (Anna Bay)'로 향했습니다. 이 곳은 넬슨 베이와는 달리 태평양과 직접 접하고 있는 해안이어서 늘 거센 파도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또한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 때문에 해안의 모래가 날아가서 생긴 상당히 넓은 면적의 사막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사륜 구동 차를 타고 사막을 둘러 보는 관광 상품이 있고 사막 썰매가 있기도 하답니다.

해안에 도착해서 보니 과연 잔잔한 호수같았던 넬슨 베이와는 대조적으로 파도가 끊임없이 해안으로 밀려 옵니다. 바람이 별로 없는 날이라 파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많은 날은 큰 파도가 써퍼들을 유혹할 것 같습니다. 한겨울이지만 별로 춥지 않아서인지 물 속에는 써핑을 즐기는 사람과 파도를 즐기는 아이들이 제법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다리를 걷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서 즐겁게 놉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파도가 덮치는 바람에 옷을 모두 버리고 말았는데, 그 뒤로는 아예 더 깊이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한겨울의 해수욕을 즐깁니다.

놀 때는 좋았지만 갈아 입을 옷이나 수건을 전혀 준비해 가지 않았던 저희로서는 돌아올 길이 좀 난감해 졌습니다. 자동차 트렁크를 뒤져서 수건과 비닐로 만든 비옷을 찾아 내어 승용차 뒷좌석에 깔고 애들은 발가벗겨서 태웠습니다. 부끄럽다고 기절을 하는 것을 차 문 닫고 가면 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타일러서 간신히 차에 태우고 히터를 강하게 틀었습니다. 덕분에 돌아오는 길은 상당히 덥게 와야 했습니다.

아나 베이 근처의 '낚시꾼만(Fishermans Bay)'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언덕 위에 지은 집들이 많은 조용한 바닷가 마을입니다. 잔잔한 넬슨 베이와는 달리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집들의 풍광이 그림과 같습니다. 노후에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아마 우리 나라에는 이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겠죠?

그런데 바다가 잘 보이는 경치 좋은 한 언덕에 공동 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집을 지었으면 상당히 비싼 가격에 팔릴 것이 틀림없을 이런 곳에 공동 묘지를 조성해 놓은 것이 우리의 정서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망자들이 항상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배려한 살아있는 자들의 배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주식 명당이라고 할까요?

낚시꾼만을 차로 한 번 둘러본 뒤 뉴캐슬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4시쯤 출발하였는데, 하지 하루 전 날(이곳은 남반구라 하지때 해가 가장 짧습니다. 혹시 이 나라에서는 동지라 하는 것은 아닐까요?)이라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기 시작하고 집에 도착하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애들은 샤워를 하러 올라가고 우리는 다시 외출 준비를 하였습니다. 프랭크 할아버지 집에 저녁 식사를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스파게티와 치킨 커트렛을 배부르게 얻어 먹었던 바로 그 저녁 말입니다.

다음 이야기(뉴캐슬 중심가 구경)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