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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의 팔자
BOF   (Homepage) 2005-12-01 15:30:32, 조회 : 1,812, 추천 : 275

잘사는 나라, 유복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나 그런 집으로 입양된 애완 동물은 좋은 팔자를 타고 났다고 할 수 있고, 반대로 불우한 환경에서 출발한는 사람이나 애완 동물의 팔자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 식물에겐 팔자가 없을까? 나무는 어떨까요?

아마 심산 유곡에 뿌리를 박은 나무는 좋은 팔자를 타고 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쁜 팔자를 타고난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요?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로수로 심겨진 나무가 그 중 하나가 아닐까요? 도시의 온갖 매연과 소음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고, 뿌리로 받아들이는 물과 양분에는 요염 물질이 가득할 것입니다. 게다가 밤이 되어도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불빛 때문에 잠을 잘래야 잘 수도 없을 것이구요. 또한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행해지는 가지치기는 또 어떻습니까? 일년 내내 가꾸어 온 가지들을 사정없이 잘라버리니 말을 못해서 그렇지 그 고통이 얼마나 대단할까요? 동물이야 자기가 처한 나쁜 환경에 능동적으로 회피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식물은 그렇지 못하니 그저 묵묵히 참아내야 할 수밖에. 대게 같은 수종의 나무라도 가로수의 수명이 짧은 것은 이런 여러가지 스트레스 때문일 것입니다.

가로수가 삭막한 도심에서 현대 문명에 지친 도시인에게 주는 위안과 산소 공급, 여름철 도심 온도 하강 등의 실질적 도움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가로수들의 자기 희생적 봉사에 깊은 감사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 동물에 비할 바가 못되죠. 그러나 우리는 물과 공기에 감사하지 않듯 가로수의 이러한 자기 희생적 봉사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사람인 것을. 이런 걸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구요.

이제 곧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나라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일 것입니다. 매년 이맘 때 아기 예수의 탄생과 그 사랑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벌이는 일 중 빼놓지 않는 것이 거리의 가로수를 꼬마 전구로 장식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무도 엄연한 생명체입니다. 낮 동안에는 탄소 동화 작용을 통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와 동물들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산소를 생산해 내지만 저녁이 되면 나무에게도 휴식이 필요하고 그들도 잠을 자야 합니다. 도심의 가로수로 심어진 운명으로 인해 밤에도 도시의 각종 조명과 소음으로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는 것만 해도 애처러운 일인데 거기다 온몸에 전구를 칭칭 감고 밤새도록 불을 켜 놓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말을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라서 그렇지 얼마나 괴로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일입니다. 휴식의 문제 외에도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되는 나무 중에는 전선의 누전 사고로 화상을 당하는 경우도 흔하고 심지어는 화재가 나는 일도 있다고 하니, 이는 인간의 조그만 즐거움을 위해 너무나 많은 또 다른 생명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굳이 생명체에다 이런 조명을 다는 방법이 아니어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전세계는 바야흐로 인간 존중의 시대를 넘어서 생명 존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동물 뿐만 아니고 모든 동물의 묵묵한 봉사자인 식물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생명 존중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거창한 것을 떠나 적어도 살아 있는 생명체에 전선을 칭칭 감고 밤새도록 불을 켜대는 일은 너무나 잔인한 짓입니다.

가로수에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장식을 하지 말자는 운동을 벌여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래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도 거리의 가로수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하는 일(이런 일을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광고하는 나라도 있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도심의 밤 풍경은 덜 화려할 지 몰라도 우리의 생명 사랑의 정신은 딴 나라 사람들에게 조그만 울림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혹시 압니까? 이런 운동이 확산된다면 상젤리제 거리의 가로수 트리가 없어질지도.

인간의 이기적인 즐거움을 위해 또다른 생명체에 괴로움을 주는 일을 그만두는것.이것이야 말로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온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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