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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무박 화대종주
관리자  2016-02-18 15:39:12, 조회 : 230, 추천 : 9

hwadae2015



'화대 종주'란 지리산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 천왕봉까지 능선길을 등반한 뒤
대원사로 하산하는 지리산 종주길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산인 지리산엔 수많은 등산 코스가 있습니다만
이 산의 이름있는 봉우리들을 모두 통과하는 화대 종주야말로
지리산 등반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코스는 도상 거리가 44km에 이르고 거쳐 가는 봉우리만도 18개에 이르러서,
화대 종주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리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들 합니다.

화대종주는 2박3일 또는 3박4일의 일정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장거리 산행을 즐기는 이들은 무박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44km의 여정을 한 번에 진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화대종주는 아마추어 등반 애호가가 장거리 산꾼으로 거듭나는 관문과 같은 코스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3년 반 전 등반에 처음 입문 한 후 늘 화대 종주를 꿈꿔 왔으나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가지 못하다가 이번에 드디어 결행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근무를 마친 후 차를 몰고 대구까지 간 다음 서부 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남원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차를 버스를 탄 건 거의 30여년 만인 것 같네요.



남원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을 먹었는데
남원의 명물인 추어탕이나 한정식을 먹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김밥 천국에서 순두부 찌개로...



식사 후엔 무박 종주를 위한 카페인 공급을 좀 하고...
11시 쯤 택시를 이용해서 화엄사로 향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하고 화엄사를 출발한 시각은 자정.
이 사진이 이번 산행의 유일한 인증샷입니다. ^^




화엄사 앞 이정표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노고단까지는 6.8km, 천왕봉까지는 32.3km입니다.
(위의 이정표는 거리가 약간 잘못된 듯합니다)




예전의 화엄사는 지리산 등반의 중요한 거점 중의 하나였으나 성삼재를 통과하는 도로가 열리면서
성삼재를 들머리로 삼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젠 한적한 등로가 되었습니다.
길 하나가 이렇게 많은 것을 바꿉니다.

등산 입문 후 지리산을 여러 번 찾았으나 화엄사를 통해서 오르는 건 대학 시절 이후 33년 만입니다.
대학 시절 동아리 하계 수련 코스로 이곳을 찾았을 때는 4박5일간의 식량과 야영 장비에다,
여학생들의 짐까지 옮겨 넣어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랐던 곳인데
오늘은 비교적 가벼운 등짐을 지고 올라갑니다.

완만한 경사길로 시작하여 차츰 경사도를 높혀가던 길이
국수등에선 제법 가팔라지더니 집선대를 지나니 된비알이 됩니다.
등산객의 코가 땅에 닿을 듯한다고 ‘코재’라고 한다지요?



2시간여 오르막길과 씨름한 끝에 무넹기에 닿습니다.
노고단에서 전북쪽으로 가는 물줄기를 화엄사 쪽으로 돌렸다고(물넘기) 해서
‘무넹기’란 이름이 붙은 이 고개는
대학 시절 무거운 배낭과의 사투 끝에 이곳에 다다른 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날렵한 걸음으로 지나가던 아가씨를 멍하니 쳐다봤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등산의 고수인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초보자인지는 지금도 궁금한 일입니다.



무넹기에서 노고단 고개까지 약간의 오르막을 더 올라가니 드디어 지리산의 주능선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25.5km입니다.
출발!



지리산 종주길에서 가장 평탄한 길인 돼지령과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임걸령에 도착해서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임걸령 샘물로 목을 축입니니다.
임걸령은 조선 명종 시대에 이곳에 본거지를 뒀던 초적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 근처에서 관련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답니다.



임걸령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40분여 더 길을 재촉하니 삼도봉에 이릅니다.
삼도봉은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세 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그래서 정상엔 이런 독특한 모양의 정상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도봉의 옛 이름은 ‘날라리봉’입니다.
이곳의 바위가 '낫'의 '날'을 닮았다고 해서 '낫날봉'이라 했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이 되었다는 데,
예전 이름이 훨씬 멋진 것 같지 않습니까?



삼도봉은 일출로 유명한 포인트이지만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므로 그대로 진행하기로 합니다.
지루한 551계단을 내려가 하동과 남원의 물물교역의 통로였다는 화개재를 지나
가파른 형제봉 구간을 힘겹게 올라 명선봉 쯤에 이르니 드디어 해가떠오르기시작합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여명을 뚫고 산을 오른 뒤 맞이하는 일출은 늘 남다른 감동을 줍니다.  




아침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지리산.
수많은 지리의 연봉과 능선들이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잠시 일출을 감상한 뒤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이곳 명선봉부터 연하천, 벽소령 일대는 남부군의 넋이 서려 있는
이른바 ‘피의 능선’ 구간입니다.
삼각고지를 지날 때는 이현상이 최후를 맞았다는
빗점골을 눈으로 가늠해 보며 우리 현대사의 아픈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아침 이슬 머금은 지리산 철쭉.
이즈음의 지리산 능선길은 온통 철쭉꽃으로 가득합니다.
저지대의 철쭉은 이미 지고 없지만 여기는 이제야 망우리를 터뜨립니다.
고산지대에 피는 철쭉은 차가운 밤공기에 꽃물이 빠져 마치 진달래와 같은 연분홍의 꽃을 피웁니다.



사뿐히 즈려밟기엔 너무나 아까운,
가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




형제봉에 이르면 지리산 종주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위 중 하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바위 때문에 형제봉이란 이름이 붙었겠죠?



고사목 위로 뜨는 시리고 푸른 달빛으로 '벽소 명월'이라는 이름을 얻은 벽소령을 지나면
아름답고 평탄한 산책길이 열립니다.
개인적으로 지리산 종주길에서 가장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카메라 셔터 누르느라 자연히 발걸음이 늦어지게 됩니다.

다시 덕평봉을 가파르게 오르고 나면
살아서 천대를 받던 노인이 죽은 뒤엔 누구든 그곳을 지나는 이에게 인사를 받도록
이곳에 무덤을 썼다는 전설이 있는 선비샘을 만나고
여기서 목을 축이며 다리쉼을 한 뒤 다시 출발하면
종주길 최대 난코스 중의 하나인 칠선봉과 영신봉 코스를 만납니다.



가파르기 그지없는 칠선봉 오름길을 힘겹게 오른 뒤 조망이 뛰어난 망바위에서 잠시 주변 풍광을 즐깁니다.  

망바위에 오르면 앞으로 지나가야 할 봉우리와 능선이 한눈에 보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칠선봉, 영신봉으로부터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 중봉, 써리봉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져 있네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다시 끝없이 이어진 영신봉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드디어 철쭉 꽃 만발한 세석 평전에 다다릅니다.
천왕봉 5.1km 전입니다.




이원수 시인이 작사한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가사처럼 ‘울긋불긋 꽃 대궐’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밭 한가운데서 잠시 다리를 쉬며
미리 준비한 햄버거로 원기를 보충한 뒤 다시 길을 나서는데
다리가 천근만근, 촛대봉을 오르는 길이 가파르기 그지없습니다.



그 후 삼신봉,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등로 또한 가파르기 짝이 없지만



연하봉 근처에 펼쳐지는 연하선경은 잠시나마 피로를 잊게 해 줍니다.

장터목 산장에 이르러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오! 제석봉을 오르는 등로는 또 한번 산객 인내심을 시험대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자연에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제석봉.
그 제석봉에도 봄은 오고...

제석봉을 지나 무거운 다리를 끌며 통천문으로 다가가는데
‘심장마비 환자 발생 지점’이라는 팻말이 섬뜩하게 서 있습니다.
2년 전 CPR하던 산객을 직접 목격한 바로 그 지점입니다.
천왕봉을 올라올 정도면 초보 산객은 아닐텐데 무증상 관상 동맥 질환이 이래서 무서운 것 같습니다.
중년의 진지한 등산 애호가라면 증상이 없어도
관상 동맥 질환에 대한 검사를 미리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산에서 일을 당해서는 골든 타임을 지킬 수가 없으니까요.




통천문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500m의 구간은 마지막 시험대이지만
정상이 지척이라는 기대감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힘 풀린 다리를 재촉한 끝에 드디어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에 섰습니다.
해발 1,915미터. 섬을 제외한 남한땅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화엄사를 출발한지 13시간 만입니다.
천왕봉에 서서 뒤를 돌아 보면 지금까지 걸어 온 지리산의 등뼈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진 오른쪽편에 둥그스럼하게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가 반야봉이고
그 왼쪽 뒤편의 뽀죽한 봉우리가 노고단입니다.
노고단에서 여기까지는 25.5km, 화엄사에선 32.2km입니다.




우리나라 산에는 천왕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많지만
지리산 천왕봉이야말로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천왕봉 등산객이 어찌나 많은지
정상석 인증샷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20미터 쯤 되고
사정을 모르고 정상석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려던 사람들은
새치기 하지 말라는 나무람을 듣고 있더군요.
전 그래서 인증샷은 포기하고 정상석 사진만...



1,915m나 되는 높은 곳에 이렇게 사람이 많습니다. ^^



천왕봉 정상을 이루는 바위 무더기엔 
이렇게 '天主'라고 씌여진 바위 기둥이 있습니다.
산객들은 이를 '천주석'이라 부르는데
언제 누가 새겨놨는지는 모르지만
천왕봉 정상석보다 이 천주석을 더 중히 여기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싶었는데
하산길은 또 하나의 큰 도전이란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급경사 내리막을 지나자마자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중봉, 그리고 써리봉.
그 후로도 11.7km의 하산길 내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오르막들은 다리 힘 풀린 등산객을 기진맥진하게 만듭니다.



중봉에서 바라본 써리봉과 치밭목으로 이어지는 하산길




취나물이 많아 치밭목이란 이름을 가진 치밭목 대피소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새도 없이 갈길을 재촉합니다.
치밭목 이후엔 무릎을 괴롭히는 너덜지대가 끝없이 펼쳐지고 마지막 봉우리인 장단봉이 다시 한번 힘을 빼더니




하산 시작 4시간여 만에 드디어 유평 마을에 도착합니다.
대원사까지는 여기서 1.6km 더 내려가야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포장된 임도여서 그나마 좀 낫습니다.



자정에 화엄사를 출발해서 일요일 오후 6시에 대원사에 도착했습니다.
도상거리 44km를 18시간동안 걸었네요.

그동안 성삼재-중산리 종주는 여러번 했지만 화대 종주는 그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화엄사-노고단 6.8km 구간의 가파른 등반이 그 후의 진행을 힘들게 했고,
결정적으로 천왕봉-대원사 11.7km 구간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등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한라산 다녀와서 다리에 알이 밴 이후
처음으로 장딴지, 허벅지가 뻐근하네요.

무박 화대종주는 장거리 산꾼의 입문 코스 같은 것이라 큰 숙제를 하나 한 느낌입니다.
혹자는 사서 고생인 길을 왜 가느냐고 합니다만
장거리 산행은 그것만의 치명적 매력이 있습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러닝 하이를 느끼듯이
장거리 산행도 극한 육체적 고통 속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힐링’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사용됩니다만 등산만큼 힐링 효과가 큰 운동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유산소 운동이고요.
젊어서 다니는 산도 좋지만 중년의 나이에 오르는 산은 더욱 좋습니다.
그 시절엔 느낄 수 없었던 그 무엇이 분명히 있습니다.
거기에 이끌리다 보면 이렇게 잠도 자지 않고 하루종일 산속을 헤매는 미친짓(?)도 하게 되는 것이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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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집에서 만드는 스콘 레시피  [2]  BOF 2010/02/10 177 2301
223  주왕산과 주산지의 끝물 단풍    BOF 2009/11/12 139 1924
222  할머니와 나    BOF 2009/10/07 304 1905
221  코타키나발루 여행기(2)  [2]  BOF 2009/09/02 185 4325
220  코타키나발루 여행기(1)    BOF 2009/09/01 160 2739
219  오궁 가족의 1박 2일  [1]  BOF 2009/08/04 190 1976
218  형섭이의 성년식  [1]  BOF 2009/05/20 178 3643
217  윤섭이와 함께한 주말  [1]  BOF 2009/02/16 262 2137
216  아내의 생일 선물  [2]  BOF 2009/01/15 218 2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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