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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휴가기
BOF   (Homepage) 2002-08-27 17:31:29, 조회 : 1,568, 추천 : 103

필리핀 휴가기

자기의 클리닉을 열고 있는 개업 의사의 생활은 무척이나 단조롭고 갑갑합니다. 딴 직종처럼 외근이나 출장이 없으므로 하루종일 진료실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몸이 피곤한 날은 어디가서 사우나라도 한 번 하고 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단 10분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것이 개업의의 일상입니다. 환자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의사가 없어서는 단 한 명의 환자도 처리가 되지 않는 것이 의료업의 특징이니 딴 사람에게 맡겨 놓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개업의의 일상은 개업을 하는 날이나 수십년의 개업의 생활을 보낸 후나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병원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는 100% 자신을 만나야 하는 것이죠. 딴 직종의 경우에는 신입 사원 때 또는 사업을 시작하는 초기에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직급이 올라가든지 사업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여유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개업의의 일상은 병원문을 닫지 않는 이상 늘 같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있어 1년에 한 번 있는 휴가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고 소중합니다. 휴가가 시작되면 마치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드넓은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찍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한 번도 가족들과 해외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해외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시에서 자주 만나는 동료 의사 다섯집이 의기투합하여 모두 자녀들을 동반하고 떠났습니다. 어른 10명 어린이 11명 모두 21명입니다. 어린이가 많아서 약간은 걱정이 되었지만 애들끼리 이미 서로 잘 알고 친하게 지내왔던 사이라 잘 지낼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할 때부터 어른들은 뒷전이고 저희들끼리 자리를 잡고 앉아서 어른들 근처에도 오지 않고 너무 잘 놀고 있습니다.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목적지는 필리핀의 세부섬입니다.

투어를 하면 휴가가 오히려 피곤해 질 것 같아서 세부섬에 있는 휴양 호텔인 플란테이션 베이라는 곳에서 4박 5일간 머물면서 해양 스포츠 위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4박 5일이라고 하지만 첫날은 밤 비행기로 인천을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했으므로 실제로는 4박 4일인 셈입니다.

옆에 보이는 사진이 우리가 숙소로 정한 플란테이션 베이 호텔입니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해수 풀장이 있는데 마치 조그만 호수처럼 보일 정도로 큽니다. 이 해수 풀의 가장자리로 빙 돌아가면서 2층 높이의 빌라형 객실이 여러개 배치되어 있고 일층의 객실에서는 배란다를 통해서 바로 해수 풀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사진에서 호수처럼 보이는 곳이 해수 풀장입니다. 무척 크죠?

이 사진은 이 호텔의 홈페이지에서 빌려온 것인데 실제는 이만큼 멋있지는 않습니다.

둘쨋날,

이날 새벽에 숙소에 도착한 관계로 어른들은 모두 늦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 8시쯤이 되니 애들이 문을 두드리더군요. 배가 고파서 도저히 못참겠다고 합니다. 애들은 자기들끼리 자도록 숙소를 배정했었는데, 아침 6시경에는 모두 일어났다고 합니다. 개중에는 아예 잠을 한숨도 자지 않은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집사람은 그냥 자게 두고 저 혼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애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식사는 조식 뷔페식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한국에서 흔히 보는 서양식 조식 뷔페였습니다.

아침 식사 장면입니다. 베이컨, 햄, 소세지, 빵 등의 서양식인데도 잘 먹습니다.
다이어트 시켜야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더 쪄서 온 것 같습니다.

오전에는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열두시쯤 모두들 모였습니다. 호핑투어라는 것을 한답니다. 배를 하나 빌려서 바다로 나가서 점심도 먹고 스노클링도 한답니다. 호텔에 접해 있는 해변으로 나가니 우리를 태워갈 배가 하나 보입니다. 필리핀의 배들은 우리의 배와 모양이 약간 달랐습니다. 배의 폭이 매우 좁았는데, 배의 양 옆으로 아치 모양의 지지대를 늘어뜨려 놓아서 배가 불안해지지 않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베란다에서 한 컷 찍었습니다. 베란다에도 남국의 정취가 풍깁니다.

남태평양의 많은 섬들 처럼 필리핀도 해안에는 산호초가 많고 그로 인해서 바닷물의 색깔이 연초록색입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이 산호초 지대를 벗어나면 갑자기 무지하게 깊어집니다. 물색깔이 거의 검은빛입니다. 수심이 만미터 가까이 된다고 하더군요. 필리핀 일대의 바다는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바다 중 하나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연인 케이프 존슨과 엠덴 해연이 있다고 합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키가 작은 원주민 소녀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영어를 곧잘 합니다. 키가 작아서 초등학생인줄 알았는데 high school student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는 12세라고 하네요. 뭔가 좀 이상해서 다시 물어봤더니 이곳은 초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high school로 간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쳐서 high school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학생은 중학생인 셈입니다.

필리핀의 언어는 매우 다양하다고 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언어가 타갈로그이고 그래서 필리핀말을 보통 타갈로그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일로코, 팜팡고, 비콜, 세부아노, 일롱고, 와라이와라이(사마르-레이테), 마긴다나오, 팡가시난 등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 섬이 많고(섬이 7,0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섬 끼리 왕래가 잘 안되기 때문에 방언이 100여가지나 되고 개중에는 서로 의사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말들도 많다고 합니다. 또한 이나라는 언어는 있지만 그 말을 표기할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나라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군요. 그래서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영어를 잘합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든지, 다녔더라도 학력이 낮은 사람들의 영어 실력은 썩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현지인 중 호텔이나 쇼핑 센터 등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영어는 아주 훌륭했지만 일반 현지인들의 영어는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닌 듯 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문장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수준이더군요.

배를 타고 30분 쯤 가니 자그마한 섬이 보입니다. 배는 이 섬의 해변에 만들어져 있는 수상 가옥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호텔 안에서는 잘 몰랐는데 배를 타고 현지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니 후진국의 일상이 보입니다. 어린이들은 공부나 놀이 대신 노동의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수상 식당으로 접근하는 손님들의 배를 접안시키고 닻줄을 묶고 푸는일, 손님을 안내하는 일 등을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습니다. 이네들이 사는 집들은 우리의 60-70년대의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여러 가지 해산물들을 회나, 구이의 형태로 내 놓는 점심 식사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조리가 되었는지(이 섬의 관광객은 한국인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비교적 맛이 좋았습니다. 특히 식사가 끝난뒤 후식으로 나오는 열대 과일들은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든 맛이었습니다. 망고와 같은 과일을 아예 한국에서 먹어보기 힘든 과일이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바나나 조차도 현지에서 먹는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아마도 한국 등지로 수출되는 과일은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따기 때문에 완숙된 상태로 따낸 현지 바나나보다 맛이 훨씬 덜한 듯합니다.

너무나 푸짐히 차려진 후식이어서 다 먹지 못하고 남겼는데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어린이들이 달려와서 챙겨가는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연민의 정이 느껴집니다. 아무리 열대 과일이 많아도 이네들이 사먹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 옛날 미군 지프를 쫒아 다니면서 '쵸콜렛 기브 미'를 외쳤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더군요.

식사를 하고 나서는 열대의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겼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손에 잡힐 듯이 노니는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이곳이 남태평양임을 말해줍니다. 애들은 수영을 잘해서인지 가이드의 간단한 교육만으로도 키를 넘기는 바닷속을 잘도 헤엄쳐 다닙니다. 그러나 수영을 못하는 집사람은 저와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아서 내내 제가 손을 붙잡고 다녀야 했습니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호텔의 전경입니다. 그 옆은 바로 옆동 건물의 모습입니다.
일층에서는 베란다를 통해서 바로 해수 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날은 하루종일 호텔 내에 있는 시설을 이용하며 지냈습니다. 낚시터에서 빵조각을 미끼로 낚시도 시도해 보고 (미끼가 안좋아서인지, 실력이 없어서인지 한 마리도 낚지 못했습니다.) 해수 풀과 민물 풀을 오가며 수영도 즐겼습니다. 게임 룸에서 게임도 즐겼습니다. 오래간만에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멋진 밴드가 식욕을 돋구어 주더군요. 우리 귀에도 익숙한
1960-70년대의 팝송들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이날 저녁에는 해변에서 뷔페식이 제공되었습니다. 해산물을 위주로 한 음식이었는데 비교적 먹을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실력이 좋은 밴드가 특별 공연을 해서 열대 바닷가에서의 저녁 식사를 더욱 맛있게 해 주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필리핀 민속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네들의 민속춤이란 것이 좀 특이했습니다. 타악기를 위주로 한 폴리네시안들의 춤과 스페인의 플라맹고 댄스가 합쳐진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무용수들이 손에 든 타악기도 플라맹고 댄스에 자주 등장하는 케스트네츠 비슷한 것이더군요.

아마도 400여년의 스페인 식민지 통치 기간동안 이네들의 고유 문화와 스페인의 문화가 뒤섞인 결과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퓨전 댄스인 것이지요.

이네들의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서 씁쓸함과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이네들의 민속춤입니다. 스페인의 춤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필리핀 전통이 많이 배어 있는 듯한 춤을 선보여 주더군요.

그 다음날은 오전은 역시 그냥 보내고 오후에는 제트 스키와 바나나 보트를 탔습니다. 호텔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이나라의 독특한 교통 수단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미니 트럭의 짐칸을 개조해서 손님이 양쪽 옆으로 길게 앉을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천장이 낮아서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제트 스키와 바나나 보트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선착장에 도착을 하니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우리를 반겨 줍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 때문에 처음에는 원주민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고향도 대구라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거의 대부분이 대구에서 대학을 나왔으므로 서로들 무척 반가웠 했습니다.

큰놈과 작은 놈을 번갈아 가면서 제트 스키를 태웠었는데 모두들 처음에는 무서워 하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 특히 작은 놈은 처음에 태울 때는 안타려고 울고불고 하더니 끝나고 나서는 필리핀에 와서 지금까지 해 본 것 중 제일 재미있었다고 싱글벙글입니다.

그놈참, 울다가 웃으면 X구멍에 솔난다는데......

제트 스키 타기 위해 대기 중입니다.
제트 스키와 바나나 보트를 타고 나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더군요.

이날 저녁은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스파게티를 중심으로한 이태리식 뷔페가 제공되었습니다. 스파게티에 들어갈 재료들을 본인이 직접 선택해서 담아가면 즉석에서 요리를 해 주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먹을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요리사가 두명 뿐이라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볼륨 댄스 시범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혈통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늘씬한 남녀 무용수가 보여주는 볼륨댄스는 정말 보기 좋습니다. 저도 집사람과 함께 한 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나라에서 스페인 혼혈과 원주민은 비교적 쉽게 구별이 됩니다. 우선 원주민들의 키는 저의 어깨 정도를 넘기지 못합니다. 얼굴 생김새 또한 우리의 기준에서 보면 좀 못생겼습니다. 이에 반해 스페인 혼혈들은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호텔에서 서빙하는 웨이터, 웨이터리스나 쇼핑센터 등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게 혼혈인 듯 합니다. 이나라에서 고급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려면 원주민 출신들은 힘들 듯 합니다. 이 역시 식민지 역사의 슬픔입니다.

볼륨 댄스 시범이 있고 난 뒤에는 즉석 댄스 경연대회가 열렸습니다. 마침 여기에 참석한 필리핀 항공 한국 지사장이 한국인에게는 서울-세부간 항공권을, 외국인에게는 50달러를 경품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흥겨운 일은 이 댄스 경연대회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댄스 경연 대회가 끝난 뒤 전문 댄서들의 율동에 맞춰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무대로 나가 댄스 파티를 벌였습니다. 저희들도 점잖게 앉아있다가 결국은 무대로 끌려 나가서 돌아가지 않는 허리를 흔들어야 했습니다.

내친김에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허리띠를 빼서 양쪽에서 잡게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아래로 통과하는 춤을 췄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서 거기에 참석한 각국의 남녀노소가 모두 그 밑을 통과하는 장관을 연출해 내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남정내들은 나이가 있어서인지 슬슬 뒤로 빠졌습니다. 그러나 마눌님들은 한 번 불을 붙혀 놓으니 도대체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결국은 남자들끼리 먼저 돌아오고 말았죠. 남자들이 빠져줘야 마음 편히 놀 수 있을 거라는 핑계를 대며 말이죠. 한밤중까지 광란의 댄스파티는 계속 되었습니다.

다음날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원래는 시내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바쁘게 서두르고 이곳저곳 끌려다니는 것이 싫다는 여론에 따라 모두 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침 식사 후 호텔 내를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바닷물에 카메라가 젖을까봐 제대로 찍지 못했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호텔 주위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11시에 모두들 짐챙겨서 모였습니다.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마젤란 기념비를 구경하기로 하였습니다.

필리핀읠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은 마젤란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이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세계 일주를 최초로 한 사람이 마젤란인줄은 알았지만 필리핀을 발견한 것이 이이인 줄은 몰랐던 것이지요.

마젤란은 원래 포르투갈의 귀족이었다고 합니다. 젊어서 그는 인도에 가서 많은 공을 세웠으나 왕실에서 그를 냉대하자 이에 실망하여 스페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도와의 무역이 상당히 중요했는데 인도로 가는 항로는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있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항로가 아닌 서쪽의 아메리카 대륙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의 필요성이 절실했다고 합니다.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발견도 사실을 인도로 가는 서쪽 항로를 발견하기 노력의 결과였지요.

어쨌던 마젤란은 서쪽으로 가는 인도 항로를 발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아 (그는 여기서 마젤란 해엽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태평양으로 나갔습니다. 많은 고생 끝에 1521년 3월 마젤란의 일행은 필리핀 군도의 세부 섬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총,포로 무장한 500여명의 군인, 선원을 데리고 나타난 마젤란 앞에 세부섬의 원주민들은 별다른 저항 한 번 없이 모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부섬에 바로 붙어있는 조그만 섬인 막탄섬(이 섬은 지금은 세부 본섬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세부 국제 공항도 이 섬에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강화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만큼은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젤란은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막탄섬 정벌에 나섭니다. 그러나 막탄섬의 원주민들은 나풀나푸 추장의 지휘아래 일사불란하게 싸워 마젤란이 끌고온 세 대의 배 중 두 대를 침몰시키고 500여명의 군사를 몰살시킵니다. 마젤란도 여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겨우 13명의 선원만이 파괴되지 않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도망갔다고 하니 눈부신 승리이지요?

마젤란과 나풀나푸 추장 군대와의 전투 장면과 기념비입니다.
이네들이 서양인에 맞서 싸운 최초의 승리입니다.

이날 우리가 구경간 곳이 바로 이 마젤란 기념비입니다. 그러나 이름만 마젤란 기념비이지 사실은 나풀나푸 승전 기념관이라 해야 옳은 일일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곳에는 마젤란을 기념하는 곳이 아니였고 필리핀인들이 외세의 침략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역사를 드러내기 위한 전승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스페인 인들을 물리치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나풀나푸 추장의 동상이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마젤란 기념비라고 부르는 것은 외국인에게 마젤란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승 기념비와 나풀나푸 추장의 동상입니다.

그러나 몇 년 후 스페인에서 파견된 군대에 의해 필리핀은 6년만에 완전히 스페인에게 정복을 당하고 그로부터 19세기 말까지 300년 이상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필리핀은 종교, 문화, 혈통에 있어 스페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게 되는데 이때의 영향으로 필리핀 사람의 85%는 카톨릭 신자라고 합니다. 피도 자연스럽게 섞여서 스페인 계열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문화또한 스페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이틀전 그네들의 민속춤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네들의 사회 시스템이나 교육 시스템등은 모두 미국식입니다. 19세기 말 스페인이 내전에 휘말리면서 식민지를 관리할 힘이 떨어진 틈을 타서 미국이 2000만 달러에 필리핀을 넘겨받게 되고 이때부터 1946년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미국이 통치를 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영향으로 필리핀의 공식 언어는 영어가 되었으며 모든 사회 시스템(심지어 자동차 번호판 체계도 미국과 동일하다고 하네요.)과 교육 시스템은 미국식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인들은 겉으로 보면 미국식이지만 속을 보면 스페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를 받은 이네들이라 이 나풀나푸 추장과 마젤란 전투에서의 승리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은 꽤 큰 것 같습니다. 해마다 전투가 있었던 시기가 되면 거대한 축제가 이 기념관 주위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일제를 비롯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민족이라 동병상련의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나풀나푸 기념관을 방문하고 나니 어느덧 점심 때가 되었습니다. 4박5일의 일정중 유일하게 한식을 맛볼 수 있는 날입니다. 막탄 공항 근처의 제법 깔끔한 한식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종업원들은 모두 현지인이지만 주인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김치째개, 된장국 등의 메뉴를 시켜놓고 먹었습니다. 역시 우리들은 김치, 된장을 먹어야 속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소주 한잔 곁들여 먹으니 그저그만입니다. 그동안 기름기 많은 느끼한 음식에 절은 위장이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듭니다.

음식점을 나서니 기념품을 팔려는 현지인들이 여러명 달라 붙습니다. 조개 껍질 비슷한 것을 줄에 꿰어 목걸이로 만든 것인데 10개짜리 한 묶음에 만원이라고 합니다. 안사고 갈려고 했더니 20개 만원이라고 합니다. 계속 못본체 하니 30개 만원이라고 합니다. 결국 마음 약한 동료 한 사람이 40개 만원에 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모두 같은 목걸이를 한 개씩 걸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못사는 이들이지만 1950-1960년대만 해도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에 속했다고 합니다. 한국전 이후 서울을 재건할 때 필리핀에서 원조 차원에서 건설해 준 고층 빌딩이 아직도 건재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시아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이나라가 지금 이렇게 몰락하게 된 것은 한사람의 부패한 독재 정치인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한 나라를 얼마나 망쳐 놓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는 좋은 독재자를 만났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한 편으로 부러운 것은 이네들 삶의 여유입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한달 생활비가 얼마냐고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한다고 합니다. 하루에 10달러 벌면 10달러 쓰고, 20달러 벌면 20달러 쓰고, 못 벌면 안쓰기 때문에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계산을 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도 그런 생활을 힘들어 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두가 주님이 주신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감사하게 살아가고 있고, 자기들은 모두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행복은 상대적이고 자기의 마음에 있다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세계적으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인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이나라도 아마 행복 지수는 우리나라보다 높을 듯 합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바로 필리핀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이네들의 이런 낙천적인 생활 태도가 이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온화한 기후, 지천으로 깔려있는 열대 과일, 풍부한 해산물 이러한 축복받은 자연이 오히려 이네들이 열심히 일할 이유를 뺐어간 것 같았습니다.

호텔 정원에 심어져 있던 이름모를 남국 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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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집에서 만드는 스콘 레시피  [2]  BOF 2010/02/10 206 2569
289  늦겨울 소백의 눈 꽃    BOF 2012/03/08 71 2526
288  윤섭이의 2006 GLPS 여름 캠프    BOF 2006/12/15 105 2458
287  윤섭이와 함께한 주말  [1]  BOF 2009/02/16 291 2451
286  늦게 올리는 여름 휴가 사진 여행기(4) - 헌터벨리  [1]  BOF 2008/02/15 171 2406
285  오궁 패밀리의 미국 여행기-3    BOF 2010/09/09 130 2396
284  아들과 함께 한 차마고도 트레킹 - 수허고성, 리장고성    BOF 2014/09/05 83 2393
283  오궁 부부의 일본 여행기(2)  [2]  BOF 2008/09/12 135 2293
282  오궁 가족의 1박 2일  [1]  BOF 2009/08/04 215 2270
281  초보자를 위한 사진 촬영 팁 (1)    BOF 2011/07/20 104 2244
280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BOF 2003/05/24 121 2238
279  형섭이 근황    BOF 2010/10/18 160 2217
278  할머니와 나    BOF 2009/10/07 342 2211
277  아들과 함께 한 차마고도 트레킹 - 호도협 둘째날    BOF 2014/08/30 89 2193
276  주왕산과 주산지의 끝물 단풍    BOF 2009/11/12 160 2167
275  늦게 올리는 여름 휴가 사진 여행기(6) - 시드니 관광  [2]  BOF 2008/02/16 170 2148
274  윤섭이의 짧은 방학  [1]  BOF 2010/08/12 168 2145
273  최고의 뮤직 에니메이션, 크리스마스의 악몽    BOF 2002/07/02 84 2145
272  존댓말 유감    BOF 2010/07/08 207 2135
271  고생 많이 한 미국 여행  [1]  BOF 2010/09/01 186 2130
270  형섭이 학교 풋볼 개막전 사진    BOF 2010/09/15 131 2121
269  글로리아 에스테판 - Live in Atlantis    BOF 2003/05/24 72 2109
268  골프 핸디캡 산정 방법 (1)    BOF 2002/05/20 100 2070
267  DTS demontration DVD #7    BOF 2003/05/24 79 2057
266  4자성어로 풀어본 17기 동기모임    BOF 2005/09/07 90 2037
265  부석사의 소국(小菊)    BOF 2008/11/17 172 2006
264  크로스 오버의 모범 - 파바로티와 친구들    BOF 2002/07/16 75 1957
263  앙코르 유적군 여행기(2) -- 타프롬, 바이욘, 반테스레이  [1]  BOF 2012/02/11 68 1947
262  제임스 이야기    BOF 2009/01/13 141 1946
261  형섭이와 기타  [2]  BOF 2007/01/05 153 1922
260  Yankee Stadium에서 Football을?    BOF 2010/11/22 151 1904
259  골프 핸디캡 산정 방법 (4)    BOF 2002/05/20 99 1883
258  늦게 올리는 여름 휴가 사진 여행기(5) - 헌터벨리,뉴카슬  [1]  BOF 2008/02/16 146 1867
257  홋카이도 여름 휴가 - 오타루    BOF 2012/09/10 89 1861
256  늦게 올리는 여름 휴가 사진 여행기(3) - 포트 스티븐스    BOF 2008/02/15 124 1857
255  형섭이 군대 갔습니다.    BOF 2011/09/29 93 1854
254  3테너 로마 공연    BOF 2001/12/12 272 1854
253  형섭이의 귀국    BOF 2011/01/18 135 1845
252  바하 - 미사 b 단조    BOF 2003/09/05 140 1840
251  하늘로 올라간 천상의 목소리    BOF 2007/09/07 199 1832
250    전국 골프장 course rating 현황    BOF 2003/03/07 76 1801
249  형섭이의 봄방학    BOF 2011/03/21 129 1799
248  늦게 올리는 여름 휴가 사진 여행기(1) - 출발  [1]  BOF 2008/02/12 127 1782
247  눈이 왔네요 - 요즘 오궁 가족 소식    BOF 2006/11/07 165 1779
246  오궁 부부의 일본 여행기(1)  [2]  BOF 2008/09/11 130 1770
245  Pavarotti 절정기의 목소리 - Gala Concert    BOF 2002/07/27 89 1761
244  군산 기행 - 근대 문화 유산을 찾아서...    BOF 2014/08/07 73 1753
243  군바리의 관심은?  [1]  BOF 2012/05/04 94 1736
242  한라산 가족 등반(1)  [1]  BOF 2013/02/19 83 1735
241  오궁 패밀리의 홍콩 여행기 (3)  [1]  BOF 2007/01/05 106 1735
240  영주의 벚꽃    BOF 2008/04/21 146 1735
239  초보자를 위한 사진 촬영 팁 (4)    BOF 2011/07/20 106 1734
238  오궁 가족 답사기 - 하회 마을    BOF 2004/05/03 89 1734
237  소백산에서 만난 야생화    BOF 2012/07/04 98 1724
236  Images of Notre Dame  [2]  BOF 2011/02/10 122 1718
235  오궁 가족 답사기 -- 소수 서원  [1]  BOF 2004/03/31 115 1718
234  엘튼 존(Elton John)-One Night Only-The Greatest Hit    BOF 2003/05/24 182 1707
233  첨성대 야경    BOF 2007/04/24 99 1699
232  늦게 올리는 여름 휴가 사진 여행기(2) - 뉴카슬 주변 배회하기  [2]  BOF 2008/02/13 133 1685
231  태그 강좌(8) - 테이블 태그    BOF 2005/01/17 129 1681
230  안구 경기?    BOF 2012/03/27 96 1672
229  이 한 장의 사진!!  [1]  BOF 2012/04/17 91 1658
228  피묻은 다이아몬드    BOF 2002/04/04 55 1647
227  뱀사골-피아골 단풍 산행    BOF 2013/11/16 75 1645
226  형섭이가 보낸 '손글씨 부모님 전상서'    BOF 2011/04/29 122 1634
225  가을 사진 몇 장 더...    BOF 2007/11/27 114 1627
224  아들과 함께 한 차마고도 트레킹 - 호도협 첫째날    BOF 2014/08/30 85 1619
223  DIVA라 불리어 손색없는 女子들!!    BOF 2002/03/19 319 1605
222  가을이 깊어가는 부석사    BOF 2007/11/26 125 1602
221  John's Tasmania Tour (3)    노형섭 2003/12/05 78 1600
220  여름 부석사, 그 넉넉함으로...    BOF 2007/06/25 101 1599
219  화장실 들어갈 때 맘과 나올 때 맘이 다르다? ^^    BOF 2011/09/29 84 1598
218  아들과 함께 한 차마고도 트레킹 - 마지막 날 무후사, 마무으리!    BOF 2014/09/05 83 1592
217  태그 강좌(7) - HTML 문서와 기본 태그    BOF 2005/01/17 76 1573
 필리핀 휴가기    BOF 2002/08/27 103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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