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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궁 가족 답사기 -- 소수 서원
BOF   2004-03-31 11:36:47, 조회 : 1,718, 추천 : 115

형섭이의 타스매니어 여행기 (4)

 

순흥이란 지명은 요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익숙한 지명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500년 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순흥은 꽤나 유명한 곳임을 알 게 됩니다. 조선 초기만 해도 북송남순(北松南順)이라고 해서 한양 이북에서는 송도가, 한양 이남에서는 순흥이 가장 큰 고을이었다고 합니다. 기와집이 즐비했고 집집마다 쌀밥을 짓고 참나무 숯불에 고등어를 구워 먹었다는, 아주 위세가 당당한 고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순흥 면 사무소 자리에는 '봉서루(奉棲樓)'라는 건물이 그 옛날 순흥 도호부의 위세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순흥이 지금처럼 쇠퇴한 고을이 된 것은 세종조 때의 단종 복위 운동 때문입니다. 단종에게 왕위를 양위받은 세조는 성품이 곧고 강직하여 조카를 복위시킬 의도를 보이는 자신의 동생, 금성 대군을 순흥으로 귀양보냅니다. 순흥에 유배된 금성 대군은 귀양지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한 순흥 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위한 거사를 도모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거사 계획은 관노의 밀고로 사전에 발각되고, 세조는 금성 대군과 순흥 부사를 비롯한 주모자는 물론이고 순흥을 반역의 고을이라 하여 양민까지 모두 학살을 하고 순흥을 폐촌시켜 버립니다. 고을 앞 죽계천은 이 때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 그 끝이 10리에 이르렀고, 피로 물든 죽계천이 제 빛을 되찾은 지점은 지금도 '피끝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그 때의 처참했던 사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드넓었던 순흥 땅은 인근의 풍기, 안동, 예천, 봉화, 영월 등의 땅으로 쪼개어져 편입이 되었습니다. 순흥은 그 후 200여년이 지난 숙종 7년(1681년), 단종이 복위 되면서 다시 순흥 도후부의 이름으로 복설 되었지만 다시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슬픈 역사를 간직한 땅 순흥에 우리 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습니다. 순흥은 고려 시대부터 '순흥 안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왔던 고장입니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성리학(주자학)을 들여왔던 '안향'선생은 이 순흥 안씨의 4세 손입니다. 그 후 성리학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 체계가 되었으니, 우리 나라 성리학의 비조인 안향 선생의 고향에 그를 모신 서원이 건립된 것은 운명과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조선 중중 때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 선생은 성리학을 최초로 들여온 안향 선생의 고향이 단종 복위 사건으로 폐촌이 되고 피폐해져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숙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에 안향 선생을 모시는 사묘를 짓고(1542년) 이듬해 학생들을 교육할 건물을 지으면서 서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주세붕 선생이 처음 서원을 지을 때는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본따서 '백운동(白雲洞) 서원'이라고 이름하였으나 10여년 후(1550년) 풍기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의 주청에 의해 사액이 내려질 때 '끊어진 학문을 이어서 닦게 하라'는 뜻으로 '소수(紹修)'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서원이 세워지기 전 우리 나라의 지방 교육은 주로 향교에서 담당하고 있었고 이는 나라에서 관할하는 관학이었습니다. 반면에 서원은 일종의 사학이었으니 오늘날로 치면 향교는 국공립 대학이고 서원은 사립 대학인 셈입니다. 향교와 서원은 많은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으나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향교는 중국의 유학자들을 배향하고 있으나 서원은 우리 나라의 훌륭한 학자들을 배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 서원은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면서 우리 나라 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소수 서원은 이런 서원 중흥의 시발점에 서 있는 곳입니다.

 소수 서원의 입구에는 수백년 된 적송의 군락이 있습니다. 사계절 푸른 잎을 자랑하는 적송은 소나무 중에서도 아주 곧게 자라는 품종으로  그 기상이 꿋꿋하고 곧아서 예로부터 학자수라고 불리는 나무입니다. 서원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적송은 이 서원이 배출한 많은 학자들의 꼿꼿한 선비 정신을 말해 주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가족이 이 곳을 처음 찾았던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 곳은 찾는 이들이 적어서 소나무 숲에 누구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김밥, 치킨 등의 간식 거리를 준비해서 이 숲 속에 돗자리를 펴 놓고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애들은 넓은 솔밭을 뛰어 다니며 놀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답사객이 차츰 많아지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이제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답사객으로부터 숲을 보호하려면 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우리로서는 예전의 정취가 없어져서 아쉬운 부분입니다.

적송 숲을 지나 한참 걸어가다 보면 길 오른쪽으로 당간 지주가 보입니다. 서원에 당간 지주가 있다니 좀 이상하죠? 그런데 이것은 서원에서 사용하던 것이 아니고 예전에 이곳이 절이었던 시절, 그 절(숙수자)의 당간 지주라고 합니다. 숙수사 절터에 서원을 짓다보니 서원 입구에 당간 지주가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당간 지주를 지나서 조금 더 나아가면 왼쪽과 앞쪽으로 큰 은행 나무가 보입니다. 수령이 거의 500년 가까이 된 나무인데, 은행 나무가 서원에 세워져 있는 것 또한 약간의 내력이 있습니다. 그 옛날 공자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은행 나무 밑에서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 공자의 학문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에는 은행 나무를 심는 전통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은행 나무는 수령이 오래가고 많은 열매가 열리므로 묵묵히 학문에 정진해서 많은 학문적 성취를 이루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합니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제법 큰 시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시내의 이름은 죽계천입니다. 혹시 죽계천이란 이름에서 떠오르는 것 없나요? 고등 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죽계 별곡'이란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안축이 지은 죽계 별곡은 경기 체가인데, 안축은 고려 시대의 인물로 바로 이 순흥에서 태어난 문장가로 자신의 고향 동네를 흐르는 이 죽계천의 아홉 계곡, 즉 죽계 구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죽계 별곡을 남겼습니다. 안축은 안향 선생의 삼종손이 된다고 하고 문장과 인품, 효심이 뛰어났다고 하고 안향 선생과 함께 이 서원에 배향되어 있습니다.

 

죽계천의 건너편에는 오래된 정자가 하나 보입니다. 푸른(翠) 연화산의 산 기운과 차가운(寒) 죽계천의 물빛을 즐긴다는 뜻으로 '취한대(翠寒臺)'라고 이름 붙혀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 정자로 가는 길이 없어서 접근이 쉽지 않으나 과연 저 정자에 앉으면 시 한수가 절로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소수 서원의 정문 오른쪽에는 '경렴정(景濂亭)'이란 또하나의 소박하고 단아한 정자가 있는데, 경렴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의 철학자 렴계 주돈이를 경모하는 뜻에서 첫 글자인 '염'자를 땄고 회헌 선생을 높이는 뜻에서 '경'자를 붙였다고 합니다. 이 정자의 현판을 쓴 이는 퇴계 선생의 제자인데, 당시 초서의 대가였다고 합니다. 원래 이분이 쓴 현판의 글씨는 '정'자의 끝이 멋지게 말려 올라가서 용틀임하는 모습이었다고 하는데, 일제 시대 때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그 끝을 지웠다고 합니다. 전국 곳곳에서 끈질기게 자행되었던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의 단면이 여기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네요.

대개의 서원에는 정자나 누각이 있습니다. 소수 서원의 경우 누각은 없고 정자만 있는데, 이런 정자나 누각은 서원의 교육 이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서원의 개념을 말할 때 흔히 장수(藏修)와 유식(遊息)이라는 두 단어를 이야기 합니다. 장수는 마음을 집중해서 학문에 힘쓴다는 뜻이고, 유식은 즐기며 편안히 쉰다는 말인데, 서원의 본래 기능은 선현을 기리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곳이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틈틈이 적당한 휴식과 이완을 줘야 공부의 효율성이 극대화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부분의 서원들은 장수의 기능 못지 않게 유식의 기능을 중요시 해서 이러한 정자나 누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취한대 바로 옆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바위에는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자와 '경(敬)'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바위를 '경자바위'라고 부르는데, 이 바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원을 처음 건립했을 때 밤마다 이 죽계천에서 귀신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이는 단종 복위 사건 때 죄없이 죽은 많은 순흥 읍민들의 원혼이 죽계천에 서려있어서 그런 것인데, 주세붕 선생이 죽계천변의 큰 바위에 귀신들을 공경한다는 뜻으로 '경(敬)'자를 새기고 붉은 칠을 하였더니 귀신의 울음 소리가 그쳤다고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공자가 제자로부터 귀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경이원(敬而遠)', 즉 공경하긴 하지만 가까이 하진 않는다는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멀리한다는 '경원시(敬遠視)'한다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주세붕 선생이 '敬'자를 새긴 것은 공자가 귀신을 대하는 이런 태도와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敬'자 위쪽에 있는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씨는 퇴계 이황 선생께서 쓰신 글씨라고 합니다.

경렴정을 오른쪽에 두고 소수 서원의 입구를 들어서면 문 바로 앞, 왼쪽편에 어떻게 보면 무너진 봉분과 같이 생긴 도드락한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성생단(聖牲壇)이란 곳으로 서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소, 돼지, 염소와 같은 제물을 잡던 곳이라고 합니다. 서원의 기능 중 유생들의 교육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서원에 모셔져 있는 선현들에 대한 향사입니다. 성생단은 이 향사에 쓸 제물들을 잡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소수 서원에서는 요즘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향사를 드리고 있다고 하는데, 소수 서원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높은 만큼 전국 각지의 유생들이 많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소수 서원의 정문인 홍살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강학당을 만나게 됩니다.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강학당은 명륜당이라고도 하는데, 유생들이 교육을 받던 강의실과 같은 곳입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소수서원에서 제일 큰 건물로 서원의 나머지 건물들은 강학당의 뒤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수 서원의 건물 배치는 일반적인 서원의 그것과는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개의 서원은 강학당의 앞쪽에 유생들과 선생들의 기숙사 격인 동제와 서제가 있고, 강학당의 뒤쪽에 선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위치하는 이른 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양식인데 비해, 소수 서원에서는 강학당의 뒤쪽에 기숙사가 배치되어 있고 강학당의 오른쪽에 사당이 배치된 동학서묘(東學西廟)의 양식입니다. 이러한 동학서묘의 양식은 중국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 전통 위치법인 이서위상(以西爲上)을 따른 것인데, 이는 소수 서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니만큼 아직까지 서원 건축의 명확한 형식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후에 건축된 많은 서원들은 대개 향교의 건축 양식과 비슷한 전학후묘의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강학당의 왼쪽을 돌아 보면 '문성공묘'가 보입니다. 문성공은 안향 선생의 시호입니다. 서원이 향교와 구별되는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향교는 중국의 유학자들을 배향했지만 서원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학자를 모신 곳이라는 것입니다. 소수 서원도 처음에는 안향 선생을 모신 사묘로 출발해서 이듬해 강학당을 세우면서 서원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안향 선생을 주향으로 모신 이듬해 안향 선생의 삼종손인 안축, 안보 선생을 배향하였고 나중에는 이 서원의 건립자인 주세붕 선생을 추향하였습니다. 사당이 강학당의 오른쪽(들어가면서 보는 사람의 위치에서는 왼쪽이지만 건물이 앉은 방향에서 보면 오른쪽)에 위치하는 것을 봐도 서원에서 교육 기능보다 선현에 대한 제사 기능이 더 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학당의 뒤쪽으로 몇채의 건물이 있습니다. 강학당의 바로 뒤에는 일신재, 직방재라고 이름지어진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서원의 교수들의 기숙사입니다. 일신재는 일반 교수들의 공간이고 직방재는 원장의 거처입니다.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건물은 하나인데, 크지 않는 규모이지만 높은 기단 위에 팔작지붕을 얹은 간결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의 건물입니다.

 

일신재와 직방재의 왼쪽 뒤쪽으로 학구재와 지락재가 보입니다. 이 곳은 학생들의 기숙사인데, 팔작 지붕의 화려한 양식으로 되어 있는 일신재와 직방재에 비해 맞배 지붕으로 검소하게 지어졌으며, 건물의 단도 낮고, 위치 또한 왼쪽 뒤쪽으로 물려져 있어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이 건물의 모양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한자의 공(工)자의 형태로 지어져 있다고 합니다.

일신재와 직방재의 오른쪽으로는 장서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서각은 서책을 보관하는 도서관과 같은 건물인데, 아주 작은 건물이지만 일신재, 직방재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고 지붕 또한 팔작 지붕으로 되어 있어 서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임금께서 직접 하사하신 어제 내사본을 비롯한 서책이 3000여권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장서각의 뒷편에는 사당의 제사 때 쓰이는 제기들을 보관하는 전사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사청 옆에는 국보인 안향 영정과 보물로 지정된 주세붕 영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유물각이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소수 서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학구제 뒤쪽으로는 담장이 쳐져 있는데, 뒤쪽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나가 보면 옛날 서원의 자질구레한 일을 돌보던 일꾼들의 거처인 고직사 건물이 있고 후대에 만들어진 사료 전시관이 있습니다.

그 뒤쪽을 보면 또하나의 제법 큰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은 1990년대에 와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이곳에는 소수서원의 여러 가지 유물들의 진, 사본을 모아놓은 전시관이 있고, 소수 서원에 대한 여러 가지 교육 자료 보관소, 강당 등으로 이루어진 충효 교육관이 있습니다.

전시관에는 소수 서원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새로 단장했기 때문에 모든 자료들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약간 조잡해 보이기는 해도 옛날 우리 조상들이 서원에서 교육을 받는 모습을 미니어쳐로 재현해 놓아 어린이들의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그러나 안향 선생의 영정이나 주세붕 선생의 영정 등과 같은 중요한 유물들은 모두 영인본으로 전시를 해 두어서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전시실의 여러 자료들의 사진을 찍으려니 형섭이가 말립니다. 옆을 쳐다보니 '사진 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전에 다녀온 부석사의 전시실도 마찬가지이고 이곳도 모두 사진 촬영 금지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우리나라의 박물관이나 이와 비슷한 성격의 전시관들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을까요? 정말 이해하기 힙듭니다. 제가 생각한 이유는 대략 이렇습니다.

1. 사진 촬영 시 플래쉬 불빛이 유물을 손상시킨다. --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아주 오래된 유물인 경우는. 그러나 몇몇 특별한 전시품을 제외하면 플래쉬 불빛에 손상될 정도로 취약하면서 중요한 유물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플래쉬 불빛이 문제라면 플래쉬를 쓰지 않고 촬영한다면 이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될터이니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촬영을 허용해도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곳과 같이 많은 사료 전시실의 경우 중요한 원본은 아예 전시를 하지 않고 영인본만 전시하는 곳에서는 더더욱 제한할 이유가 없습니다.

2. 사진 촬영 행위가 딴 사람의 관람을 방해한다. -- 일리있는 말입니다. 플래쉬 촬영을 한다면 분명히 방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플래쉬만 쓰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플래쉬를 쓰지 않더라도 카메라 셔터 소리가 관람에 방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곳의 분위기라는 것이 음악회 관람처럼 절대적으로 정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대화는 하는 분위기이니 사진기의 셔터 소리가 그렇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3. 박물관의 전시물에 관한 사항들이 사진 찍어서는 안될 만큼 기밀 사항이다. -- 아닐겁니다. 물론 미술 전람회나 개인 소장품과 같이 저작권의 보호가 필요한 일부 전시물들은 이런 이유로 촬영을 제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물관이라는 것은 어차피 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기를 원한는 물건들입니다. 오히려 관람객들이 이런 물건들에 대한 사진을 찍어가서 딴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 사람들이 '사진으로 봤으니 실물을 볼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사진으로 인해 흥미를 얻어 실물을 보러 오고 싶어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4. 쓸데없는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 가장 근사한 답이라고 봅니다. 국립 박물관과 같은 중요한 문화재를 전시한 곳이 아닌 조그만 기념관 같은데서도 한결같이 사진 촬영 금지라는 팻말을 붙혀 둔 것은 쓸데없는 권위주의의 산물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원본이 아닌 영인본만 전시해 둔 곳인데도 촬영 금지를 하는 것은 이런 이유말고는 적당한 변명이 없을 것입니다. 혹시 촬영 금지 팻말이 붙어 있어야 해당 전시물들이 값어치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가족 방문차 호주에 갔을 때 들렀던 'NSW 주립 아트 갤러리(Art Gallery of NSW)' 생각이 납니다. 이 미술관은 1874년 개관한 역사 깊은 곳이고 수많은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는 호주의 대표적인 미술관인데도 불구하고 플래쉬를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미술 작품들을 사진으로 담아올 수 있었죠. 다만 현대 작품을 전시한 곳은 예외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작가와의 저작권 문제 등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이렇게 큰 미술관에서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모두들 한결같이 사진을 못찍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시관 내에 전시품에 관한 도록을 판매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전시품이 저작권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될 기밀 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면 관람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수준(플래쉬 촬영 금지 등)에서 사진 촬영은 허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요? 가끔 초등학생들이 방학 숙제용으로 전시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긴 설명문을 일일이 배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럴 때 사진 촬영을 허용하면 사진으로 담아서 집에서 차분히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점들은 정말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료들의 사진이 딴 지방 사람들에게 소수 서원을 알리는 좋은 자료로 쓰이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과감하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형섭이에게도 저의 뜻을 설명했습니다. 절대 아버지가 법을 지키지 않는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아래는 전시실의 내규를 어기면서 찍은 내부 사진입니다.

↖ 명종이 하사했다는 친필 사액이 전시실 첫머리에 걸려 있습니다.

←↑ 강학당에서 강의하는 모습과 향사를 지내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습입니다.

↙ 국보 111호로 지정되어 있는 안향 선생의 영정입니다. 현존하는 국내 초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 보물717호로 지정되어 있는 주세붕 선생의 영정으로 16세기 초상화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주세붕 선생은 뛰어난 인품과 학덕으로 선생의 사후인 1633년에 이 서원에 추향되었습니다.

→ 향사를 지낼 때 쓰던 술항아리입니다.

↓↘ 이밖에도 소수서원과 관련된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을 나오면 건물의 로비에 붓글씨, 탁본 등을 해 볼 수 있는 탁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서예에 필요한 기본적인 8가지의 획놀림이 모두 들어가 있어 영자(永字) 팔법이라고 하는 길 영(永)자를 크게 써서 붙혀 놓고 그 아래에 관람객들이 붓글씨를 써 볼 수 있게 해 놨습니다. 그리고 붓글씨 체험 코너 옆에는 탁본을 뜨는 법을 설명해 놓고, 목판을 이용해서 탁본도 떠 볼 수 있게 해 놨습니다. 저도 거기서 '소수 서원'과 '오궁 패밀리'라고 한 번 써 보았습니다. 그 옆에는 가훈을 무료로 써 주는 분도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훈을 얻기 위해 줄을 서 있었는데, 하루종일 가훈을 쓰려면 많이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실 앞마당에는 옛날 궁중의 여인들이 즐겼다는 놀이인 투호를 즐길 수 있게 마련해 놓았고 제기 차기도 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애들과 마가렛도 한 번 씩 던져 보았고 제기도 한 번 씩 차 보았습니다.

소수 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이라는, 서원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또 그 명성에 걸맞게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초창기 서원에서 많은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하기 시작하자 서원은 관학인 향교의 기능을 대신하면서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입니다. 가장 많을 때는 무려 700개소 이상이었다고 하니 정말 많은 숫자였죠? 이렇게 서원이 많아지자 세금이 면제 되는 서원전에 전답을 거짓으로 기증해서 세금을 내지 않은 사례, 서원의 노비로 등록해서 군역을 면제받는 사례 등 많은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고, 특히 조선 후기 고질적 병폐였던 당쟁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는 등 초기에는 없었던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게 됩니다. 결국 고종 시절 대원군은 전국 대부분의 서원의 문을 닫는 서원 철폐령을 내리게 되어 1인 1사의 원칙에 따라 67개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없애 버립니다. 물론 소수 서원은 서원 철폐령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은 67개의 서원 중 하나입니다. 이 때부터 서원의 사회적 기능은 급격히 약해지게 되었는데, 때마침 불어온 근대 교육의 열풍으로 인해 서원의 교육 기능은 거의 없어지고 이제는 선현들의 제향을 드리는 의식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교육의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서원이지만 우리는 서원에서 우리 조상들의 높은 향학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 주관하는 향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순수한 민간 차원의 교육 기관을 세워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또 이 서원이 수백년 동안 지방 교육의 요람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소수 서원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 대학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니 서원은 분명히 우리의 자랑거리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후기로 가면서 초기의 순수한 교육 목표를 지키지 못하면서 생겼던 여러 가지 부작용과, 또 그로 인해 자초된 서원의 몰락을 보면서 모든 일에서 초심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렇지 못했을 때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 소수 서원 뒤문을 통해 나가면 죽계천변으로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산책로에는 안축의 '죽계 별곡'이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시문, 학자, 효자로서 유명했던 안축 선생은 안향 선생과 함께 소수 서원에 배향되어 있습니다.

↓↘영주시에서는 수 년 전부터 옛날 순흥 고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선비촌'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죽계천변을 따라 건설된 선비촌은 이제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입니다.

 

어느덧 시간이 오후 5시를 가르킵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할 때입니다. 마가렛이 3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것이 미안해서 우리가 춘천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거의 10여년 만에 춘천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춘천에 도착하니 거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춘천의 유명한 음식은 뭐니뭐니해도 막국수와 닭갈비 아닙니까? 미식가로 유명한 소설가인, 백파 홍성유 선생이 쓴 '한국 맛있는 집 1234선'이란 책이 있습니다. 낯선 지방으로 여행할 때 항상 휴대하는 저의 여행 필수 지참물 중 하나인데, 이 책을 뒤져보니 춘천 닭갈비 집으로는 '통나무 닭갈비'라는 곳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화로 위치를 확인하고 차를 몰아 갔는데, 3층 건물로 된 무지 큰 곳입니다. 조류 독감 파동이 잠잠해 질 무렵이라 닭고기 소비가 약간씩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닭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는 분위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넓은 앞마당에 주차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몇 바퀴 주차장을 돌고 난 다음에야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식당에 들어갔더니 그 넓은 식당에 자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장의 말로는 지금 예약해 두면 40분 쯤 후에 자리가 난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두고 밖으로 나오니 건물 바깥에 조그만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안을 들여다 봤더니 사람들이 빼곡 들어 앉아 있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와 같은 예약자들이 기다리는 공간이었습니다. 예약자들이 기다리는 건물까지 마련해 둔 것을 보니 정말 손님이 많긴 많은 곳인 모양입니다.

외국인을 복잡한 대기 공간에서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식당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카페는 아주 조용하더군요. 이곳은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어서 바로 옆집과 정말 대비됩니다. 유자차를 마시면서 기다렸습니다. 마가렛은 처음 먹어보는 유자차 맛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애들은 카페 홀에 마련된 통나무 난로에 붙어 앉아 불장난에 열심입니다.

40여분을 기다려서 들어간 닭갈비집이라 맛이 어떨지 정말 궁금합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요즘과 같은 닭고기 불황철에 이렇게 장사가 잘 될까요? 또한 마가렛은 닭갈비를 잘 먹을 수 있을까요? 떡볶이를 잘 먹는 것으로 봐서는 닭갈비도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두고봐야겠습니다.

드디어 재료들이 커다란 철판 위에 올라오고, 이것들이 익는 제법 지루한 시간이 지난 끝에 드디어 맛을 봤습니다. 전체적으로 크게 맵지 않고 부드럽고 덜 자극적인 맛입니다. 이전에 딴데서 먹어봤던 매콤한 닭갈비보다 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맛이 좋은 것은 사실이고,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어린이나 외국인에게는 꼭 맞는 맛인 것 같습니다. 마가렛도 아주 맛있다며 잘 먹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하는대로 고기를 다 먹고는 거기다 밥도 볶아먹고 비빔 막국수도 시켜서 먹었습니다. 이런 음식 먹고 난 뒤에 의례이 먹는 철판 볶음밥은 주요리보다 더 맛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노릇하게 달라붙은 누룽지를 긁어 먹는 맛은 비길데 없이 좋습니다. 온 식구가 숫가락을 부딪혀 가며 박박 긁어 먹었습니다.

온 식구가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윤섭이는 흥이 났는지 시키지 않았는데도 며칠 전 구경했던 뮤지컬 '맘마미아'에 나오는 여러 곡들을 목청껏 불러젖힙니다. '댄싱퀸'을 비롯하여 '맘마미아', '머니머니', '수퍼 트루퍼'등 여러 곡들을 차례로 부르면서 춘천 시내를 가로 질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마가렛은 춘천 교대의 기숙사에 내려 주었죠.

이번 답사는 마가렛과의 첫 만남이었는데, 좀 피곤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둘러보았고, 좋은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가렛도 우리와의 만남을 즐거워 했고, 한국 음식들도 잘 먹어서 앞으로의 동행에 특별한 문제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부석사와 소수 서원은 우리 식구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라 별로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외국인에게 가장 한국적인 것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데 의의를 찾아야겠죠?

 

 

다음 달에는 하회 마을과 병산 서원을 둘러볼 생각입니다.

 

 



옹달샘
소수서원을 들어설 때 마음이 고요해지곤 했지요
자세하게 올려놓으신 유래와 역사를 고맙게 잘 보고 갑니다.

서울에서 영주 봉화 죽변에서 백암까지
정다운 길을 자주 들리겠습니다.

반가운 마음
이곳에 두고 갑니다.
2006-11-10
08: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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