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 피곤하긴 했지만 시계의 알람에 맞춰 잠은 쉽게 깨입니다. 잠자리가 바뀌면 예민해지는 탓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거실로 나가니 윤섭이는 벌써 깨어나 있습니다. 이 녀석은 거의 한 시간 쯤 전에 일어났다고 하네요. 하긴 이녀석들은 어제 이곳으로 오는 차 속에서 내내 잤으니 일찍 잠이 깰 만도 합니다.

한국은 여름이라 벌써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이지만 이곳은 이제야 어슴프레하게 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겨울철이긴 해도 호주의 겨울은 온화해서 최저 기온이 8~9℃ 정도밖에 안되니 우리의 늦 가을 날씨 정도의 날씨입니다. 거실에 있는 조그만 온풍기를 제외하면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아서 추울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이불이 두꺼워서 추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잘 잤습니다. 베란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맑고 싸늘한 공기가 기분좋게 온몸을 감쌉니다. 피서 하나는 확실히 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 8시에 골프 라운딩이 예약되어 있으므로 조금 서둘러야 합니다. 어제 저녁 늦게 도착해서 저녁 먹고 바로 잤으므로 아침 식사 거리가 전혀 없습니다. 골프 코스에서 스낵으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하고 모두들 나섰습니다.

아파트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10 여 분 달리니 포트 맥쿼리 골프 클럽이 나옵니다. 포트 맥쿼리 골프 코스는 1911년에 시작되어 거의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입니다. 처음에는 몇 개의 홀로 시작한 것이 1953년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네요. LPGA 플레이어인 레이첼 헤드링턴의 고향이 이곳이라고 하니 그녀가 이 코스에서 샷을 가다듬었을 가능성도 많겠습니다.

우리가 예약한 8시 정각이 첫 티타임인 모양입니다. 아직까지 클럽 프론트는 문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직원이 출근합니다. 예약을 확인하고 그린피와 카트피를 지불했습니다. 그린피는 일인당 28달러(22,000원 정도)인데 카트 사용료는 33달러(약 26,000원)입니다. 그린피보다 카트 사용료가 더 비싸네요. 아, 그런데 사실을 말하면 2인승 카트 한 대에 26,000원이면 일인당 13,000원이니 카트 사용료도 한국보다 싼 편이지만 사실은 그린피가 무지무지 싼 거죠. 호주는 카트 사용료는 어딜가나 이 정도이고 그린피는 싼 곳은 15불 정도, 비싼곳이라고 해도 40-50불을 넘지 않습니다. 2인승 카트를 2대 빌려서 라운딩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첫 팀인데다 이곳은 현재 겨울철 비수기라 우리 말고는 아직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뒷 팀이 없으니 푸근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비행기와 차에서 너무 오랜 시간 시달린 탓인지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습니다. 준비 운동을 충분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첫 티샷은 어이없는 탑핑을 하고 말았습니다. 집사람도 마찬가지였는지 역시 탑핑을 냅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이번 골프는 스코어보다는 가족 여행의 일부로서 다같이 시간을 보낸다는데 의의가 있으니까요.

이후에도 몇 개의 홀이 진행될 때까지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샷이 잘되고 못되는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즐겁게 라운딩을 했습니다. 이곳은 카트가 페어웨이 내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자신의 공 바로 옆까지 카트를 몰고 갈 수 있습니다. 형섭이는 제 카트에, 윤섭이는 아내의 카트에 탔는데 카트의 운전은 이 두 녀석들이 맡았습니다. 이 녀석들은 몇 년 전 호주에 있을 때 이미 몇차례 카트를 운전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는 제법 능숙하게 운전을 했었는데, 카트를 모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이번 여행에서 골프 쳤던 것이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재미있었다고 합니다(처음 운전 배워서 차 몰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심지어는 나중에 지들이 커서 운전 면허를 딸 때가 되면 카트 몰아본 경험 때문에 면허를 쉽게 딸 수 있을 거라며 기염(?)을 토하네요. 또한 이놈들은 카트 모는 것 뿐만 아니고 캐디의 역할도 제법 할 줄 알아서 엄마 아빠가 채를 주문하면 해당 클럽을 척척 뽑아서 주고, 디봇 리페어용 모래 주머니를 들고 있다가 디봇이 생기면 모래도 뿌려 주고, 그린에 올라가서는 깃대도 뽑아주곤 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애들의 보조를 받으니 편해서 좋고, 애들은 애들대로 신이 났습니다.

평일인데다 겨울철 비수기이고, 또 티업 시간이 일러서 라운딩 내내 앞 뒷 팀 없이 그야말로 황제 골프를 즐겼습니다. 전반 나인이 끝나고 인 코스로 들어갔을 때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팀이 앞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일부러 약간 진행을 늦춰서 간격을 벌려 놓으니 다시 우리들만의 라운딩이 되었습니다. 조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었고, 스코어를 타이트하게 기록하는 게임도 아니므로, 샷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연습 샷을 한 두 번 더 해 볼 수도 있었고, 그린에서 퍼팅을 끝낸 다음에는 아이들도 연습삼아 퍼팅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갤러리의 입장이 허용되지 않고, 캐디를 반드시 써야하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운동나온 것이 아니고 마치 가족 피크닉을 온 기분입니다.

포트 맥쿼리 골프 클럽은 코스 레이아웃은 평이한 모양이지만 거리가 많이 긴 편이고, 그린이 무척 까다로웠습니다. 지금까지 겪어본 그린 중에서 가장 빠른 그린이었던 것 같은데, 평지에서 1m 정도의 거리에서 건드린다는 느낌으로 쳐도 홀에 들어가지 않을 경우엔 다음 퍼팅의 거리가 훨씬 더 길게 남기가 일쑤였습니다. 유리알 그린이란 말이 실감나더군요. 이 코스는 거리와 그린의 어려움에서 코스 레이트를 확보하는 것 같습니다.

2인 플레이라서 그런지 온갖 여유를 다 부리면서 라운딩을 했는데도 4시간 30분 만에 마지막 홀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인도식 카레 라이스로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팀버 타운(Timber Town)'으로 향했습니다.

팀버 타운은 포트 멕쿼리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워홉(Wauchope)'이라나는 작은 도시에 위치하고 있는데, 1900년대 초반에 이 지역이 목재업으로 유명하던 그 시절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입니다. 우리로 치면 민속촌과 같은 곳이겠죠?

이곳에는 1900년대 초반의 호주의 시골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정미소, 가구 공방, 가게, 대장간, 식당 등을 볼 수 있고,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실제로 음식과 차를 먹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호주 농가를 재현해 놓은 곳에서는 이들이 집에서 많이 키우던 조랑말, 토끼, 닭, 기니피그 등의 동물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것은 마을을 한 바퀴 돌게 설계된 증기 기관차입니다. 옛날에 호주의 철길을 달리던 실제 증기 기관차를 여기에 가져다 놓고 철길을 새로 놓아서 마을을 일주하면서 달리게 되어 있는데 총 2.4km의 길이이고 한 바퀴 도는데는 한 20분 쯤 걸립니다. 숲속으로 난 철길을 구불구불 달리면서 팀버타운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해 놓아서 한 번 쯤은 타 볼만 하더군요. 특히 이 철길의 중간에는 128m 길이의 목재로 만들어진 육교 위에 철길이 놓여져 있는데 호주에 남아있는 가장 긴 목재 육교 철로라고 하더군요. 팀버 타운은 1976년에 건설되어서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고 하니 나름대로 상당히 유서깊은 곳이더군요.

영화에서나 봤던 개척 시대의 모습이 잘 보존된 팀버 타운을 돌아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의 민속촌에 왔을 때도 이와 비슷한 감정적 경험을 하겠죠?

팀버 타운을 돌아보고는 포트 멕쿼리 다운타운의 가장큰 쇼핑 몰을 찾았습니다. 간식거리와 내일 아침 식사거리를 좀 사고 이곳저곳 내부를 둘러 보았습니다. 아내는 호주를 다시 찾은 기념으로 예전에 이곳에 있을 때 즐겨 찾던 브랜드 샵에서 티 셔츠를 한 장 샀는데, 한국 가격과 비교하면 무지 쌉니다. 대개의 서구 사회처럼 호주의 서민 의류는 수수하고 소박, 검소한데다 중국산이 많아서 우리나라의 의류에 비해 많이 싸고, 비슷한 품질이라 하더라도 가격이 싼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나라의 옷을 그대로 입고 가면 이 나라에서는 거의 공주 패션 수준이 됩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대개 비싼 옷을 입지 않고 수수, 검소하게 차리고 다닙니다. 그리고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의 가격이 한국에 비해 많이 싼 편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는 우리나라보다 비용이 훨씬 덜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이들은 여행, 레져, 취미 활동 등에는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대학생들조차도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모은 돈으로 방학 때는 해외 여행 등에 아낌없이 돈을 씁니다. 인생을 즐기는 방식이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그동안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고, 국내 여행지는 제한된 편인데다 휴가나 주말 시간도 많지 않습니다. 여행, 레져에 돈을 쓰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으니 자연히 좋은 옷을 입는 쪽으로 소비 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우리도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진 데다가 주 5일제 근무도 확산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생활 패턴이 이들처럼 바뀌어 가리라 생각됩니다.

아직 저녁 식사 시간 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에 해변을 거닐어보기로 했습니다. 포트 멕쿼리는 헤이스팅스 강과 메리 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는 안쪽 항구는 파도가 거의 없어 호수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방파제 바깥 쪽은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항상 밀려오므로 해수욕과 서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지금은 겨울철이지만 성급한 서퍼들은 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핑을 즐기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니 동틀 무렵부터 해수욕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타운 비치(Town Beach)로 내려갔습니다. 저녁이라 그런지 바닷바람이 제법 거세게 붑니다. 겨울철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가을 날씨 정도이기 때문에 바람이 그리 춥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애들은 금방 모래 사장에서 장난을 치면서 옷과 신발을 모래 범벅으로 만듭니다. 우리도 호주 해변의 밀가루 같이 고운 모래를 밟으며 잠시 산책을 즐겼습니다. 해변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걷다보니 어느덧 해도 저물고 사위가 캄캄해 집니다. 적당히 허기도 느껴지네요.

저녁 식사는 이 항구에서 제일 큰 리조트 호텔의 하나인 '퀄리티 리조트 세일스(Quality Resort Sails)'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음식점이 맛있는지 자문을 구할 만한 가이드나 현지인이 없으니 이럴 때는 큰 호텔 레스토랑을 찾는 것이 제일 안전합니다. 더군다나 이 호텔은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해변가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안내를 보고 이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작은 도시라서 호텔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제로 이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가 보니 지금은 겨울철이라 해변가의 야외 식당은 운영을 하지 않고 실내 홀만 오픈을 한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죠. 음식이라도 맛있기를 바라야겠습니다. 모두들 안심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맛은 기대 이상입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스테이크의 맛은 정말 일품입니다. 특히 윤섭이는 이번에 처음으로 미디움으로 익힌 스테이크를 먹어봤는데 여태껏 딱딱한 웰던 스테이크와 비교도 안되게 맛있었던 모양입니다. 엄지 손가락을 몇 번이나 치켜 세우네요.

여행하면서 제일 즐거운 일 중의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일텐데, 어제 저녁 볼링 클럽, 오늘 점심의 인도식 카레라이스, 저녁 식사. 일단은 모두 성공적인 선택들이었습니다.

그나 저나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일주일 후에 돌아갈 때 우리의 모습이 궁금해 집니다. 그러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다음 날은 리버 크루즈(River Cruise)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전 10시에 출발하므로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나서 느긋하게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포트 맥쿼리는 헤이스팅스(Hastings) 강과 메리(Mary) 강이 하나로 만나는 하구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이 두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운행되는 여러 가지 크루즈 상품이 있는데 우리는 오늘 Port Macquarie Cruise Adventure라는 회사에서 운행하는 리버 크루즈를 가기로 했습니다. 이 회사의 리버 크루즈도 요일에 따라서, 가격과 시간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 우리가 선택한 것은 메리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여러 가지 풍경을 보여 주고 중간에 모닝 티와 빵을 먹는 시간을 가지고 마지막에는 점심 식사 까지 제공되는 상품입니다(위의 사진은 Port Macquarie Cruise Adventure의 홈페이지에서 빌려온 사진입니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25명 정도 탈 수 있는 조그만 배입니다. 그런데 배에 타고 보니 우리 식구 말고는 모두 호주인, 그것도 모두 노인들 뿐입니다. 하기는 지금이 휴가 시즌도 아니고 공휴일도 아니라서 젊은 사람들은 모두 직장에 갔을테니 자연히 은퇴한 노인들이나 우리같은 외국 관광객들이 이런 크루즈 상품의 주 고객일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졸지에 이 배 안에서 영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배는 출발한 직후 맥쿼리 항 주변을 한 번 돌아 본 후에 메리 강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캐니 로저스 처럼 멋진 흰 수염을 기른 선장 할아버지는 주변에 펼쳐지는 경치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호주 억양이 강하게 들어간 영어인데다 배경 지식마저 부족해서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드문드문 들리는 건 듣고, 어려운 건 옆에 앉아 있는 형섭이한테 물어보니 그런대로 내용 파악은 됩니다. 이럴 때는 호주에서 1년 동안 살게한 보람이 느껴집니다.

한참동안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제법 상류 지역으로 갔을 때 강변에 조그만 선착장이 하나 나타납니다. 모닝티를 마실 'Old Butter Factory'입니다. 옛날부터 버터를 만드는 곳이었고 지금도 버터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 이 곳은 공장이라고 하기 보다는 조그만 오두막집에 가깝습니다. 아마도 가내 수공업 형태의 조그만 공장인 모양입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홍차와 커피가 구수한 향내의 스콘(Scone)이라는 빵과 함께 제공되고 있습니다. 스콘은 영국에서 만들어져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퀵 브레드(Quick Bread)인데 특히 아침에 모닝 티를 마실 때 필수적인 빵으로 자리 잡으면서 영국의 차 문화와 함께 세계적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버터와 잼을 발라서 먹으니 약간 달콤하면서도 소박하고 담백한 맛과 구수한 향이 차와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함께 앉은 선장 할아버지와 초로의 부부, 그리고 이 집 주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우리가 한국에서 왔고, 2년 전에 호주에서 1년 정도 유학 생활을 했으며, 지금은 일주일간 휴가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역시 그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왜 그렇게 휴가가 짧느냐'는 것입니다. 최소한 1달 이상의 휴가를 즐기는 호주 사람들에게 1주일 휴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짧은 것이어서, 예전의 몇차례 방문할 때도 늘 듣는 이야기였으니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같은 반응이......

우리나라에선 제가 일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왔더니 그 후에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이 무슨 휴가를 그렇게 오래 가느냐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즐겼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골프 이야기가 나와서 한국의 골프 비용을 이야기 해 줬더니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더군요. 참고로 이곳은 그린피가 싼 곳은 15달러(12,000원 정도) 정도에서 비싼 곳도 50달러(40,000원 정도)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대개의 골퍼들은 전동 카트를 쓰지 않고(전동 카트는 장애인이나 시니어들 이외에는 잘 안씁니다.) 자신의 백을 매고 다닙니다. 거기다가 그늘집은 아예 없고 프로샵이나 이동식 판매대에서 간단한 음료수, 스낵 등만 사먹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린피 말고는 추가로 쓰는 돈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의 그린피, 특히 회원권이 없이 플레이 할 경우와 비교하면 거의 10배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스콘을 곁들인 차를 마시고 바깥으로 나와 근처를 둘러 봤습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볼 수 있었지만 정작 버터를 만드는 공장은 어디에다 꼭꼭 숨겨 뒀는지 구경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다시 배에 올랐습니다. 이젠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갑니다. 올라오면서 보지 못했던 몇군데를 더 살펴 보고 천천히 다시 내려옵니다. 멕쿼리 항은 헤이스팅스 강과 메리 강이 만나는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민물과 바닷물이 적당히 섞이면서 염도가 조절되어 굴 양식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하구에는 대규모의 굴 양식장이 여러 군데 있고, 이 굴들은 주로 시드니로 운반되어 비싼 값에 판매된다고 합니다.

캐니 로저스를 닮은 선장 할아버지(왼쪽의 사진을 보세요. 닮았죠?)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굴 양식 시설 사이를 지나더니 또다시 선착장으로 배를 댑니다. 'Oyster World'라는 곳인데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한답니다. 이 곳은 굴 양식장을 겸하고 있는 식당으로 주인인 듯한 사람이 굴 양식 통과 굴을 보여주면서 굴 양식에 대해 이것 저것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는 간단한 뷔페 형식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크루즈에서 결정적으로 실망한 것은, 이집 이름이 'Oyster World'임에도 불구하고 점심 식사 메뉴엔 굴이 단 한 조각도 없었다는 것입나다. 오히려 굴 대신에 비프 스테이크, 소시지 등의 육지 음식이 대부분이고, 생선 튀김이 그나마 유일하게 바다에서 나는 음식이더군요. 저는 식당 이름이 'Oyster World'라서 푸짐하고 다양한 굴 요리를 기대했었는데 정말 실망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크루즈 프로그램의 소개 글을 다시 봤더니 Oyster World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고만 되어 있지 굴 요리를 준다는 말은 없긴 하더군요. 그러나 Oyster World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는 말은 굴 요리를 제공한는 것처럼 보여서 교묘한 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한국이라면 농담처럼이라도 한마디 할 만 한 상황이었지만 현지인들은 아무도 이에 대한 언급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또 결정적으로 영어가 짧아서 꾹 참았습니다. 굴은 없어도 음식 맛이 나쁘지 않아서 그나마 봐 줄 만 했습니다.

약간은 단조롭다는 느낌까지 든 리버 크루즈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호주의 유람선 관광이 우리나라의 유람선과 비교해서 좋았던 것은 우리나라의 유람선에서는 거의 100% 틀어대는 시끄러운 음악이 없다는 것입니다. 관광지에서 신나게 즐길 권리가 있다면 그 반대로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강요받지 않을 권리도 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유람선(관광 버스도 마찬가지)은 그런 의미에서 조용히 즐기고 싶은 관광객의 권리를 무참히도 짖밟아 버리는 셈입니다. 딴 사람을 배려해 주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는 서양의 이런 조용히 즐기는 문화는 우리가 꼭 배워야 할 태도인 것 같습니다.

리버 크루즈를 마치고 나니 오후 3시쯤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인 '헌터 벨리(Hunter Valley)'로 떠나야 합니다. 이틀 전 오던 길을 되짚어서 뉴카슬까지 간 다음 뉴카슬의 서쪽 내륙 지방으로 좀 더 들어가야 합니다. 헌터 벨리까지는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포트 맥쿼리를 떠나 헌터 밸리 초입에 있는 세스낙(Cessnock)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 쯤입니다. 일찍 해가 져서 이미 한밤중 같은 분위기입니다. 헌터 밸리에 들어가기 전에 세스낙에 있는 맥도널드에 들러 간단하게(빅 맥을 먹었는데 간단한 저녁이라고 하기엔 좀 거시기 한가요?) 저녁을 먹고난 뒤 헌터 벨리의 사이프레스 리조트(Cypress Resort)에 여정을 풀었습니다. 헌터 벨리는 예전에 이미 몇차례 와 본 곳이고 이 리조트도 한 번 들러본 곳이라 모든 것이 낯설지는 않습니다.

처음 가보는 여행지는 미지의 세계를 방문하는 설레임이 있어 좋지만 예전에 들렀던 곳을 다시 찾는 것은 그때의 추억을 반추하는 즐거움이 있어 또 좋은 법입니다. 이제부터의 일정은 예전의 추억이 어린 곳을 다시 돌아보는 코스가 될 것입니다. 헌터 벨리에서 즐겁고 아쉬운 호주의 세 번째 밤이 깊어 갑니다.

3편 헌터 벨리 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