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토스트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운 우리는 제임스 가족을 방문했습니다. 제임스는 아내가 이곳에 있을 때 봉사했던 한국어 학교의 학생으로 본인에게 이미 두 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 호주인입니다. 아내가 호주에 있을 때 휘진이란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고, 2개월 전에는 또 한 명의 한국 아이를 더 입양했습니다. 두 번 째 입양아인 성우를 입양할 때는 온 가족이 한국으로 왔었고, 그 때 우리 집도 방문하여 우리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이들의 방문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들이 우리 가족을 만나고 호주로 돌아갈 때 여름에 우리가 호주를 방문하게 되면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오늘 오전에는 그 제임스를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제임스의 집은 맥쿼리 호수 근처에 있습니다. 뉴카슬에는 맥쿼리 호수라는 아주 큰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는 바다와 일부가 연결되어 있는 염수호로서 그 크기가 무지하게 큽니다. 맥쿼리 호수는 그 면적이 110 ㎢에 이르는데, 호주 뿐만 아니고 남반구에서는 제일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수가에서 바라보면 마치 바다인 듯한 착각이 들기조차 합니다. 제임스 집으로 가는 길에 맥쿼리 호수 가에 잠시 차를 세웠습니다. 이곳은 워너스 베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가족끼리 자주 놀러 오던 곳입니다.

길을 걷다보니 낯익은 가게가 나옵니다.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집인데, 예전에 이 곳을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입에서는 군침이 돌지만 오늘은 체중을 생각해서 참기로 했습니다. 안그래도 연일 푸짐한 식사로 체중 걱정이 되는데다 또 오늘 제임스 집에 가면 점심 대접을 받아야 하니......

제임스 집은 맥쿼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야트마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집 앞 쪽으로는 야트막한 구릉지와 그 너머엔 푸른 숲이 자리잡고 있어 풍광이 끝내줍니다. 우리의 연락을 미리 받은 제임스가 집밖에 나와 있다가 우리를 반겨 줍니다. 집 안에는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벤과 세라는 학교에 가고 없었고, 휘진이와 성우만 있습니다. 휘진이는 두 달 전 우리를 봤던 기억이 나는지 아는 체를 합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집이 꽤 어수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제임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호주로 돌아가면 집 수리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생각납니다. 제임스는 이번에 성우를 입양하면서 집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있습니다. 언덕진 지형에 자리잡은 원래의 집은 아래층에는 차고만 있었고 위층에 3개의 침실이 있는, 약간은 좁은 집이었는데, 휘진이와 성우를 입양하면서 앞으로 이들이 거주할 공간을 고려해서 아래층에 아이들을 위한 4개의 방을 새로 넣고 위층엔 손님을 위한 게스트 룸을 넣는 등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공사가 끝나면 6개의 침실을 가진 멋진 집으로 변모할 것 같습니다. 이 공사를 벌이면서 기존의 방에 있던 짐들을 모두 딴데로 옮겨 놓고 꼭 필요한 짐들만 남겨 놓은 채 온 식구가 거실 바닥에 침대 매트리스들을 깔아놓고 생활하고 있어서 집안이 많이 어수선합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리노베이션의 현장 이곳 저곳을 돌아봤습니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개보수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보수 하기 보다는 뜯고 새로 짓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수십년 된 집도 허물지 않고 보수해서 쓰고, 모자란 부분은 덧대서 확장 공사를 해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의 집을 보면 겉 모양은 무척 낡고 오래된 것 같아도 안에 들어가 보면 정말 깨끗하고 세련되게 잘 꾸며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구나 집안 장식 하나하나에 집주인의 수 십년에 걸친 정성이 묻어 있기도 하구요.

주택을 유지, 관리하는 태도에 있어서 이런 큰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경우 지은지 좀 오래된 집은 매매할 때 건물값을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땅 값만 인정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땅값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의 가격도 거의 대부분 인정해 줍니다. 그러므로 오래된 집이라도 리노베이션을 해 놓으면 주택 값어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살던 집이라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개,보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나라는 땅값은 싸고 인건비가 포함된 건축비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건축비에 비해 땅값이 워낙 비싼 것도 한 요인일 것 같고, 또 최근 수 십년 동안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10-2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은 사용된 재료나 설계등이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큰 요인일 것 같습니다. 자원 활용 측면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가치관의 문제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 문제 등과 맞물려 있어서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공사 현장을 이곳 저곳 둘러보고 있으려니 휘진이는 어느새 형섭이, 윤섭이와 친구가 되어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형섭이, 윤섭이 보고 '형'이라고 그러면서 졸졸 따라 다닙니다. 애들은 정말 금방 친해지나 봅니다.

애들이 장난치고 노느라 정신없는 동안 제임스는 배란다에서 바비큐 준비를 합니다. 소시지와 스테이크를 바비큐 그릴에 구워서 내 놓습니다. 고기를 어떻게 구울까 묻는 질문에 모두들 '미디움'을 외쳤습니다. 제임스가 조리한 스테이크 맛은 왠만한 레스토랑의 그것 뺨치게 맛있습니다. 점심은 가볍게 먹어야된다고 생각하고 왔지만 역시 또 과식하고 말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 제임스의 부모님 집을 방문했습니다. 제임스의 부모님 댁은 조그만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제임스 집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함께 살지는 않지만 바로 앞에서 살면서 매일 아들, 손자를 만날 수 있으니 제임스의 부모님들도 다복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하긴 자신의 자식 외에 외국인을 2명 씩이나 입양하는 제임스가 자신의 부모님께도 효자가 아닐리 없겠죠?

제임스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프랭크 할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원래는 인근의 '몰패스(Morpeth)'라는, 1900년대 초기의 모습이 잘 간직된 오래된 타운을 방문하기로 했지만 제임스 집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랭크 할아버지 댁에서 조금 쉬다 교수님 댁으로 바로 가기로 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교수님 댁으로 초대를 받았는데, 어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긴 했지만 오늘 저녁에 자신들의 집에서 다시 한 번 만나서 이야기나 좀 하자고 하십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되니 하나, 세라, 알렉스, 엘레노어, 소피아 등, 할아버지의 손자, 손녀들이 몰려와서 한 바탕 난리를 칩니다. 모린 할머니는 매일 이들을 위해서 간식을 준비해 두시는데 이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모린 할머니는 이 애들 때문에 자신이 매일 이 시간이면 딴 일을 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와야 된다면서, 감옥이 따로 없다고 하시지만 절대 싫은 기색은 아니네요. 아이들의 집은 학교에서 좀 멀고 할아버지 집은 학교 바로 옆이니 매일 학교를 마치면 부모님들이 데리러 오기 전에 이곳에 먼저 오는 것인데, 힘은 들겠지만 매일 이렇게 손자 손녀를 볼 수 있는 노인들도 많지 않을 겁니다. 다복한 분들이라고 해야 되겠죠? 어제처럼 오늘도 우리 애들과 함께 1시간여 신나게 놀다가 자기들을 데리러 오신 엄마, 아빠를 따라 돌아갑니다.

우리도 짐을 챙겨 일어 섰습니다. 교수님 댁에 갈 때까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뉴카슬 비치를 한 바퀴 둘러본 후 교수님 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 나라는 대부분의 도시가 해안을 따라 발달해 있어서 그런지 호주 사람들은 바다를 정말 좋아합니다. 바닷가에 지어진 집은 무지하게 비싸고, 어른의 경우 낚시배나 요트가 재산 목록 1호이며, 애들은 서핑 보드가 보물입니다. 뉴카슬 해변으로 갔더니 겨울 날씨에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어둑어둑해 지는 해변을 잠시 걸어봤습니다.

오랜만에 찾는 교수님 댁은 여전히 예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거실에 놓인 TV가 PDP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2년전 제가 방문했을 때 그대로입니다. 할머니의 건강도 여전하시고.

오늘은 이집의 두 아들 현호와 현빈이 총각도 자리를 같이 했군요. 호주는 서양의 다른 나라들처럼 대학에 들어가면 독립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들도 아직 학생의 신분이지만, 그리고 이곳 뉴카슬에서 대학을 다니지만 둘 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따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모두들 모인 모양입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완전히 한국식입니다. 불고기, 갈비, 잡채, 묵, 콩나물, 김치...... 거의 일주일만에 처음 보는 한국 음식들입니다. 이곳 뉴카슬은 한국 교민 사회가 크게 발달해 있지 않아서 이런 불고기, 갈비 거리를 구입하려면 이곳에서 150여 km 떨어진 시드니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의 방문을 위해서 지난 주말 교수님 사모님은 시드니까지 다녀오신 모양입니다. 맛도 맛이지만 우리를 배려하는 이분들의 고마운 마음이 깊히 전해져 옵니다.

점심 때 많이 먹는 바람에 저녁에는 정말 제대로 못 먹을 것 같다는 신호를 보내던 위장이 한국 음식을 보자 맘이 싹 달라진 모양입니다. 차려진 음식이 바닥을 드러내도록 정말 또, 자~알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고국 사람을 만난 교수님 부부도, 호주 온지 일주일 만에 불편한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우리도 물 만난 고기처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밤 늦게야 돌아왔습니다.

벌써 금요일 저녁입니다. 호주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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