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부석사

지난 일요일은 골프 모임이 아침 일찍 있었습니다. 운동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3시.

벌써 해가 많이 길어져서 아직 한낮입니다.

별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부석사를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찾는 부석사라 사진이라도 찍어 두려고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사진기에 메모리 카드가 없습니다!! 이런...

지난 번 사무실에서 사진 작업하느라 거기에 꽂아 두고 안 가져온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똑딱이라도 들고 가기로 했습니다.

2년 쯤 전에 산 라이카 D-LUX3인데 주로 아내와 둘째가 사용하던 것입니다.

원래 쓰던 DSLR을 쓸 수 없어 아쉽긴 했지만 똑딱이로 찍은 부석사는 어떨지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원래 우리는 부석사에 갈 때면 샛길을 이용해서 부석사 본당 바로 옆으로 난 출입문을 이용합니다만

오늘은 사진기를 들고 나섰으니 입구부터 제대로 걸어 올라 갑니다.

유홍준 교수가 그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상로'라고 극찬한 부석사 진입로입니다.

좌우로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양편으로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키작은 사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이 길은,

봄에는 눈부신 흰색의 사과꽃이 언덕을 물들이고,

가을이면 노란색의 옷을 입은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뽑냅니다.

요즘은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추위가 채 물러가지 않아서

주변은 겨울 풍경 그대로입니다.

일주문을 지나고

당간 지주를 지나면...

천왕문이 나옵니다.

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이 무서운 얼굴로 내방객을 맞습니다.

절을 찾는 신도들이 이곳을 통과하면

사람들 몸에 붙어 있던 온갖 잡귀들이 사천왕에게 잡히게 되어

신도들은 온전하게 깨끗한 몸으로 부처님을 뵐 수 있다고 하죠?

사천왕의 발에 깔린 잡귀가 보이나요?

예전에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이 사천왕상을 너무 무서워 해서

이곳에만 오면 안아 달라고 했는데

아이를 안고 가면 천왕문을 완전히 통과할 때까지 눈을 꼭 감고 있었습니다.

부석사는 매우 가파른 지형에 지어진 절집이라 석축과 계단이 매우 많습니다.

거의 1400여년 전에 이런 거대한 돌들을 옮겨 이렇게 높은 석축을 쌓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부석사는 건설 당시부터 국가적인 지원을 받는 큰 역사였음을

이 석축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천왕문을 지나서 큰 계단을 하나 올라 서면 석탑과 범종루가 세워진 넓은 공간이 나옵니다.

부석사 풍경의 절정은 역시 무량수전이라고 하겠지만

이곳에서 보는 풍경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앞쪽은 팔작지붕, 뒤쪽은 맞배 지붕이라는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범종루.

그 범종루의 아래를 통과하면

드디어 무량수전이 보입니다.

범종루에는 법고와 목어, 운판이 걸려 있는데,

정작 범종은 이곳에 없습니다.

원래는 이곳에 범종이 있었으나 일제 시대에 일본군이 가져갔다고 하는데,

범종은 한 번 범종루를 떠나면 돌아 올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범종은 이 옆에 새로 지어진 '신 범종각'에 있습니다.

가파른 절집을 올라오면 목이 마르기 마련.

감로수로 목을 축입니다.

무량수전에 오르는 마지막 계단입니다.

이곳에 걸린 '부석사'라는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고 합니다.

그 밑에는 '안양문'이라고 씌여져 있는데,

한자로 安養은 극락 세계를 뜻한다고 하니 안양문은 극락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일컷습니다.

그러니 이 문을 통과하고 나면

저 위가 바로 극락세계, 서방정토인 셈입니다.

드디어 무량수전...

부석사는 화엄종의 종찰이지만

이 절이 세워진 이념적 배경은 정토 사상입니다.

정토 사상은 이승에서 올바른 삶을 살면 사후에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사상인데

그래서 이 절의 본전의 이름도 '무량수전'이고 무량수전에 모셔진 부처님도 '아미타여래불'입니다.

아미타여래불은 극락 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으로 '무량수불'이라고도 합니다.

배흘림 기둥의 대표적 건물로 알려진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물입니다.

무량수전 마당엔 아름다운 양식의 석등이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석등으로서는 가장 빼어난 미를 자랑해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올라올 때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해서 '안양문'이라고 이름붙여져 있었으나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보면 누각처럼 보이기 때문에 반대편엔 현판 글씨도 '안양루'입니다.

안양루 지붕과 뒷쪽 언덕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습니다.

방랑 시인 김삿갓은 초로의 나이에야 부석사를 찾았는데

이 안양루에 올라 멀리 이어지는 소백산의 연봉들을 바라보면서

이미 늙은 뒤에 이런 절경을 보게 되었음을 한탄한 시를 썼다고 합니다.

무량수전 동쪽엔 아담한 삼층 석탑이 놓여져 있습니다.

아미타여래불은 서방정토를 관장하는데

세상의 서쪽 끝에서 동쪽의 이승 세계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무량수전의 동쪽이 위치한 이 탑은 사바 세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무랴수전과 안양루의 아름다움은 사진으로는 담아 낼 수 없습니다.

석탑 옆쪽으로 난 산 길을 올라가면 부석사의 또 하나의 명소인 조사당이 나옵니다.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아내가 피곤하다고 해서 조사당 답사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삼층 석탑에서 무량수전 뒤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자그마한 건물이 하나 나오는데,

이름하여 '선묘각'입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사모하였으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어 의상 대사를 지켰다는 그 선묘 낭자를 기리는 곳입니다.

의상 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이교도들이 절의 건축을 방해하였는데

용이 된 선묘 낭자가 큰 바위를 공중에 들어 올려 이들을 쫒아 냈다고 합니다.

하늘에 뜬 돌이란 뜻의 '부석(浮石)'이란 절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부석사 뒷편에 보면 '浮石'이라고 새겨진 큰 바위가 있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이 바위 밑으로 실을 넣었더니 걸림없이 통과하더라'라는 말이 나온다고 하죠.

무량수전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 오면

새로 지은 건물이 나오는군요.

탬플 스테이와 그밖의 여러 용도로 쓰기 위해 새로 지은 건물인데

부석사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곱게 단청을 올렸습니다.

딴 건물들과 조화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본 절과는 좀 떨어져 있어서 큰 상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 본당 쪽으로 돌아갑니다.

내려오면서 바라다 본 부석사의 전경입니다.

석양이 곱게 물들었군요.

부석사는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절집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봄이라고는 하나 아직 싹을 틔운 식물이 하나도 없어서

오늘의 부석사는 봄 부석사가 아닌 겨울 부석사라고 해야 할 겁니다.

겨울의 때를 채 벗지 못한 부석사는 딴 계절에 비해 황량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부석사 건축물들의 진면목을 더욱 잘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파장이 다 된 노점에서 봄 나물도 좀 샀습니다.

쑥이 벌써 쑥 나왔더군요.

오뎅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나니

주차장엔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 보니

LCD 창을 통해 피사체를 확인하는데 익숙지 않아서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과물을 보니 크게 나쁘지 않습니다.

아웃 포커싱 효과가 떨어지는게 좀 아쉽긴 했지만

색감도 괜찮고 전체적으로 비교적 만족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