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패밀리의 괌 휴가기 (1)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해외로 배낭 여행을 떠나고, 신혼 부부들은 남국의 별빛 아래에서 그들의 첫날 밤을 맞는 요즈음, 해외 여행은 이제 특별한 것이 아니고 일상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린 시절에는 해외 여행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웬만해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돈으로 해결될 수 없는 여러 가지 규제가 있어서 학술, 사업 등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출국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죠. 주위에서 간혹 해외에 다녀온 이가 있으면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봐야 했으며 김찬삼 교수의 해외 여행기가 그나마 딴 나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줄 뿐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해외 여행에 대한 규제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지만 경제적인 이유와 시간적인 이유 때문에 외국은 늘 먼 나라였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해외 여행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3년 전 여름이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끼리 모아놓은 돈이 제법 되어서 다같이 해외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녀온 곳이 바로 남태평양의 섬나라 '괌(Guam)'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겪어 본 이국적인 풍물들은 저에게는 무척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몇 주 후 두 동생 가족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어머니께서 아직 한 번도 해외 여행을 다녀오시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고 이 참에 온 가족이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 여행을 다녀오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매달 얼마간의 돈을 모아서 2년 쯤 후 실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장소는 '괌'으로 잠정 결정하였습니다. 괌에는 동생이 근무하고 있는 LG 그룹에서 운영하는 콘도형 호텔이 있어, LG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는 숙박료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행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미 다녀온 곳이긴 하지만 이곳으로 여행지를 잠정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아내와 두 아이들이 결정 당시에는 예정에 없었던 호주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작년에 가기로 했던 여행도 한 해 늦춰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일 년 후, 이번 여름에 드디어 온 가족이 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집 가족 4명, 남동생 집 3명, 여동생 집 4명, 그리고 어머니까지 모두 12명의 식구이니 제법 인원이 많은 편입니다. 어머니 밑의 자손들이 모두 가는 셈이죠. 원래는 어린애들은 경비만 많이 들고 본인들은 제대로 즐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애들 챙기느라 제대로 즐기기 힘들다는 생각으로 6살, 4살, 4살인 두 동생 집의 조카들은 모두 두고 가기로 계획을 세웠으나 어린 애들을 떼놓고 가기가 마음에 걸렸던 동생들이 막판에 결국 데리고 가기로 하는 바람에 식구가 많이 늘어 났습니다.

여행은 4박 5일의 일정인데 출발하는 날은 저녁 8시 30분 비행기를 타서 새벽에 목적지에 도착하고, 돌아오는 날은 현지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하니 실제로는 3일 정도의 일정인 셈입니다. 토요일 오후 조금 일찍 진료를 마치고 1시쯤 모두들 인천 공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곳 영주에서 인천 공항까지는 대중 교통이 마땅치 않아 승용차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중앙 고속 도로와 영동 고속 도로를 이어 타고 안양까지 간 다음 서울 외곽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김포까지, 또 거기서는 인천 공항 고속 도로를 이용하는 노선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길을 나서니 휴가의 피크 타임 답게 고속 도로는 온통 자동차의 물결을 이루고 있고 차량들의 속도는 거북이 걸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서울 사람들과는 반대 방향이어서 교통 체증과는 무관하게 쾌적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 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지체 없이 예정된 시간에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즈음의 김포 공항은 일 년 중 가장 붐빌 때입니다. 여름 휴가가 절정을 이루는 주간의 토요일이니 그 넓은 공항이 여행객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도 12명의 인원을 보탰습니다.

탑승권을 발급받고 화물 배송을 한 뒤 출국 수속까지 마치고 나니 탑승 시간까지 1시간 30분 가량 시간이 남습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쇼핑도 좀 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식구는 인천 공항에 오면 거의 정해지다시피 한 식사 메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버거킹입니다. 평소 집사람의 제지로 제대로 먹지 못했던 햄버거를 이때 만큼은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는 것이죠. 우리 집은 어른이나 애나 모두 햄버거를 무지 좋아합니다. 저는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입에 좋은 음식을 좋아합니다.


	인천 공항 식당 중 가장 붐비는 곳은 아마도 이런 종류의 패스트 푸드점일 것입니다. 외국인도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제 우리의 입맛도 많이 변했나 봅니다.

	비행시간을 기다리는 외국인들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뉴욕 공항에서 고스톱 치는 것이나 이들이 여기서 카드 게임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이제는 고스톱 칠 때 이들 처럼 좀 고상하게 보일 방법을 강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쇼핑가를 둘러보려니 얼마 안가서 애들이 낑낑대기 시작합니다. 이 녀석들은 10분을 버티지 못합니다. 애들을 탑승구로 먼저 보내고 쇼핑을 좀 더 했습니다. 선그래스를 하나 사고 집사람에겐 시계도 하나 선물했습니다. 현지에서 먹을 김치와 깻잎 등 밑반찬도 좀 샀습니다.

여행을 떠나면 꼭 한 두가지의 물품을 빠뜨리게 됩니다. 이번에는 제가 쓸 모자를 챙기지 못했는데, 모자를 하나 사기 위해 면세점을 더 돌아봤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습니다. 야구 모자 스타일 몇 개를 빼고는 모자라고는 거의 진열된 것이 없습니다. 인천 공항 면세점에 모자가 이렇게 구색이 부족한 지 처음 알았습니다. 아마 찾는 사람이 없어서겠죠. 모두들 준비를 철저히 하나봅니다. 할 수 없습니다. 맨 얼굴로 괌 햇살이나 싫컷 받기로 했습니다.

탑승이 시작된 지 약간 지난 시각에 탑승구로 왔더니 그 동안 애들은 휴대 전화를 해대고 야단입니다. 일찍 비행기를 타도 어차피 시간이 되어야 비행기가 떠나니 천천히 타도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딴 식구들도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지 모두들 표정이 꾸리꾸리합니다. 들어가서 기다리나 기다렸다 들어가나 마찬가지 아닌가? 히..... ^.^ 지송.

괌까지는 보통 약 4시간 정도 걸립니다. 3년 전 처음 해외 여행을 하면서 이 비행기를 탔을 때는 무척이나 지겨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크게 지겹지 않고 금방 도착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동안 10여시간 걸리는 호주를 몇차례 다녀오면서 장거리 비행기 여행에 익숙해 져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괌 도착 시간이 다가오면서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합니다. 늘 그렇지만 비행기는 착륙할 때가 제일 기분이 안좋습니다. 그런데 마치 바닥에 착륙한 듯이 덜컹대던 비행기가 이내 조용해 집니다. 착륙을 마쳤다고 하기엔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서 바깥을 봤더니 괌 공항은 아직도 저만큼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공중에 떠 있습니다! 약간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장이 첫 번째 착륙 시도에 실패해서 지금 고도 상승 중이고 10분 쯤 뒤에 다시 시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7년 전 대한 항공의 괌 사고 생각이 납니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이 비행기는 시기적으로도 그때와 거의 비슷한 때이고, 항공사도 역시 대한 항공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어머니 이하 모든 식구들이 몽땅 이 비행기를 타고 있습니다. 만약 잘못되면?

잠시의 불안한 생각을 뒤로하고 다행히 비행기는 두 번째 착륙 시도에서 무사히 착륙하였습니다. 하긴 7년 전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이었고 오늘은 기상이 맑으니 큰 문제야 있겠습니까? 어쨌든 비행기가 멈추고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 쉬면서 짐을 챙겼습니다. 비행기를 빠져나오니 열대 특유의 습기를 머금은 후덥지근한 공기가 몸을 감쌉니다.

빨리 숙소로 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제촉하던 우리는 뜻밖의 복병(?)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입국 수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괌은 비록 자치령이란 단서가 붙긴 해도 염연한 미국인 것입니다. 과연 911의 위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독립 전쟁 이 후 한 번도 외국인에 의해 미국 본토를 공격받은 일이 없던 미국인들이기에 더욱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한데, 모든 입국인들은 양손의 검지를 지문 체취기에 갖다대야 했으며, R2D2의 눈을 닮은 디지털 사진기 렌즈에 자신의 얼굴을 디밀어야 했습니다. 거기다 예전 같으면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여권과 입국 신고서만 쓱 훓어 보고는 일사천리로 진행하던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 짝이 없습니다.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으면 통역관을 불러서 물어봤고, 조금이라도 미비한 사항이 있으면 따로 불러서 별도의 조사실에서 특별 조사까지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설상가상,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줄이 딴 줄 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재 봤더니 한 사람 당 약 7-8분 가량 걸립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 가족이 섰던 줄의 담당관은 괌 공항에서 제일 깐깐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결국 입국 신고를 하는데 거의 한 시간 가량 걸린 것 같습니다. 호텔로 가기 위해 여행사에서 마련한 셔틀 버스에 갔더니 우리 일행이 거의 마지막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기다렸다 탄 셈이 되었고, 딴 사람들은 타고 기다린 셈이 되었습니다.

호텔에 돌아와서 짐을 풀고 나니 거의 4시가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 아니 오늘 아침이 되겠죠 - 부터 정해진 일정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잠을 자 두어야 합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서둘러 잠을 청해 봅니다.

저는 보기와는 달리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여행 등으로 환경이 바뀌면 잠을 푹 자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 전 날도 3-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는데 오늘도 3시간 정도 자고 나니 잠이 깨 버립니다.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일어나 거실로 나왔습니다. 호텔 베란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니 남국의 아침 햇살이 가득히 들이 비칩니다.

모두들 찌부둥한 몸을 이끌고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니 한식, 일식, 양식으로 된 아침 식사가 제공 됩니다. 해장국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한국의 맛은 나지 않지만 그런대로 봐 줄 만 합니다.

한식, 양식, 일식 골고루 자기 취향껏 시켜서 먹었습니다. 잠을 덜자서 입맛이 없을 텐데 애들도 잘들 먹습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파세오 공원'입니다. 파세오 공원은 2차 대전의 상흔을 간직한 곳입니다. 괌은 2차 대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격렬하게 싸운 곳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은 전쟁 잔해물 들을 바다에 매립하여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파세오 공원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본다면 이 곳은 하나의 전쟁 기념 공원과 같은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공원은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 공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뜻 봐서는 특별한 기념물이나 안내문도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다만 공원 안에는 1950년, 보이스카웃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이곳에 여행온 미국의 고등 학생들이 기증한 조그마한 자유의 여신상이 있고, 또한 근처에는 스페인 점령 시절 괌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원주민 추장인 키푸하 동상이 있어 그나마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서 공원을 자세히 둘러보지 못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수백년 전 괌을 지키던 성벽 요새 중 하나인 산타 아규에다 요새입니다.

카메라 앞에서는 좀처럼 포즈를 취하지 않는 웅섭이. 수건을 어깨에 걸쳐주자 '호빵맨'이라고 하면서 좋아합니다.

여동생과 두 딸들입니다.

엄마 등에 업혀 있는 희연이는 아무래도 전생에서 엄마에게 무척 많은 빚을 받아야 할 빚쟁이였지 싶습니다.

엄마를 좋아하는 건지 괴롭히는 건지 아무튼 하루종일 엄마한테서 떨어질 줄 모릅니다.

해양 스포츠를 즐긴 원주민이 공원에 마련된 간이 샤워기에서 몸을 씻고 있습니다.

괌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괌과 괌 인근에 수많은 섬들을 통틀어서 마이크로네시아라고 부르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인종을 차모로 족이라고 합니다.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이 대개 그렇듯 이들도 통통한 몸집의 낙천적인 사람들입니다. 인종적으로는 말레이시아인이나 필리핀인과 가깝다고 하는데 아마도 용감한 말레이시아인이나 필리핀인들이 배를 타고 해 뜨는 동쪽을 향해 항해하여 이곳에 도달하였을 것입니다.

넓디넓은 태평양 한 가운데서 평화롭게 살던 차모로 인들이 세상에 -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럽에 -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에 와서입니다. 그 당시 유럽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습니다. 컬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당시 세계 최강의 함대를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앞다퉈 이 거대한 대륙에 깃대를 꼿기에 정신이 없었으며 특히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인도로 향하는 뱃길의 필수 통과 지점인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점령하고 앉아서 모든 배들에게 통행료를 징수하는 등 대단한 영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인도에서 군인으로 많은 공을 세웠지만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지 않은데 대한 불만을 품은 포르투갈 태생의 귀족 마젤란은 스페인 왕실을 찾아 갑니다. 그 당시 스페인은 포르투갈에게 희망봉을 통과하는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고 인도로 가는 무역길을 개척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마젤란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는 동쪽 항로를 이용하지 않고 서쪽으로 가더라도 남미 대륙을 돌아가면 인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왕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여 선단을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오늘날에야 당연한 생각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론으로나 알려진 것이지 아무도 실제로 이를 증명한 적이 없는 상태였고, 아메리카 대륙부터 인도 대륙 사이의 바다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알려진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마젤란의 이 계획은 대단한 모험이었던 셈입니다.

1519년 5척의 배로 출발한 마젤란은 대서양을 건너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단까지는 순조로운 항해를 하지만 여기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거센 파도와 바람 때문에 결국 2척의 배는 마젤란의 계획에 반발하여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젤란은 굽힐줄 모르는 의지로 항로를 찾은 결과 풍랑이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를 발견하여 드디어 태평양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 때 발견한 바다는 지금도 '마젤란 해협'이란 이름을 달고 그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 후 마젤란은 오랜 시간 끝없는 바다만 바라보며 항해를 계속합니다. 요즘 우리가 이 바다를 부르는 '태평양'이란 이름도 마젤란이 너무나 광할한 바다라는 뜻에서 붙힌 이름이라고 합니다. 2년 넘게 지속된 항해를 하는 동안 신선한 채소의 부족으로 선원들이 괴혈병에 걸리기도 하는 등 지극한 고충을 뚫고 드디어 마젤란은 육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육지에 닻을 내린 마젤란은 검은 피부, 통통한 체구의 원주민들의 환대를 받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차모로 인이요, 이들이 정박한 섬이 바로 괌이었던 것입니다.

괌에서 신선한 야채, 과일, 식량, 물 등을 보충한 마젤란은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하여 필리핀의 세부 섬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마젤란은 세부를 정벌하는데, 대분의 섬을 손쉽게 정벌했으나 막탄 섬의 나풀라푸 추장에게는 뜻하지 않는 참담한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마젤란 자신은 이 전투에서 생명마저 잃게 되고, 자신이 끌고 왔던 선단은 간신히 몇 명만 살아 남아 본국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간 것이 아니고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를 돌아 갔으니 세계를 일주한 셈이 되었고, 3년에 걸친 이 항해를 계기로 지구는 둥글고 남미 대륙을 통해서도 동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괌과 필리핀의 존재도 알려지게 되었죠. 그로부터 몇 년 후 스페인 왕실은 정식으로 무장한 군대를 파견해서 괌과 필리핀을 정벌하게 되고 그 때부터 괌은 필리핀과 함께 스페인의 긴 지배에 들어가게 됩니다.

350여 년의 스페인 통치를 받던 괌은 1898년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서 필리핀과 함께 헐값에 미국에 할양됩니다. 그 때부터 괌은 미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고 모든 제도와 관습, 언어가 미국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 진주만 공격으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이 섬을 차지하게 되고 괌 주민들은 이후 31개월 동안 일본군의 혹독한 통치를 받게 됩니다. 이 후 맥아더는 치열한 전투를 통해 승리를 거두게 되어 괌은 다시 미국의 통치하에 들어갑니다. 그 후 트루만 대통령은 괌을 미국의 자치령으로 인정하게 되어 오늘날 괌은 푸에르톨리코, 서사모아와 함께 미국의 자치령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치령은 식민지와 독립국의 중간 형태 쯤 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괌, 푸에르톨리코, 서사모아 등 모두 3곳의 자치령이 있는데, 괌의 시민들은 모두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국할 때 어려움을 겪은 것도 이 곳이 미국의 법률의 지배를 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괌의 시민들은 미국의 어떤 주에도 속해 있지 않고 단지 자치령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미국 시민이라면 당연히 가져야할 참정권이 이들에게는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없고,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총독과 국회 의원을 뽑지만 이들은 미국 국회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에도 이들은 미국이 아닌 괌으로 따로 대표를 보내기도 합니다. 비슷한 섬나라인 하와이는 미국의 한 주로서 완전한 미국땅인데 괌은 좀 성격이 다른 곳으로, 미국에 속하지 않은 미국땅인 것입니다.

우리가 두 번 째로 찾은 이 곳은 스페인이 괌을 지배하던 당시 괌 해안을 지키던 포대 중 하나인 산타 아규에다 요새(Fort Santa Agueda)입니다. 17 - 18세기 이 근처에는 영국 해적이 많이 출몰했다고 하는데 이 포대는 해안에 출몰하는 해적들과 그 외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주민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쓰였을 것입니다. 수백년 전 해적들을 향해 불을 뿜었을 대포들이 이젠 수많은 관광객들의 엉덩이에 깔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절벽 위에 건설된 포대에서는 괌의 수도인 하갓냐 시가지와 아가나만의 전경이 바라다 보입니다.

그 옛날 괌 해안을 지켰던 포대를 배경으로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왼쪽부터 남동생 식구, 아내, 여동생 식구, 어머니, 형섭이, 윤섭이, 오궁.

산타 아규에다 포대에 서면 아가나 만과 괌의 수도인 하갓냐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 옵니다. 괌의 해안은 얕고 평평한 해안이 수백미터 이어지다가 갑자기 낭떠러지가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수십 미터 깊어집니다. 얕은 바다와 깊은 바다의 경계는 물 색깔이 달라서 사진으로도 뚜렷이 구별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찾은 곳은 괌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사랑의 절벽'입니다.

스페인 점령 시절 스페인에서 젊은 해군 장교가 새로 부임해 왔습니다. 첫 날 저녁 원주민들의 환영 만찬에서 이 젊은 장교는 한 원주민 처녀를 만나는데 그만 첫 눈에 반하고 맙니다. 이 처녀는 한 원주민 부족 추장의 딸이었는데, 장교가 청혼을 하자 추장은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처녀에게는 남몰래 장래를 약속한 원주민 총각이 있었습니다. 강요된 결혼이 다가오는 가운데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사랑하는 두 남녀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근처의 높다란 절벽으로 올라가서 서로를 부등켜 안고 떨어지지 않게 서로의 머리를 묶은 뒤 절벽으로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세를 기약하면서.......

두사람이 몸을 던진 절벽은 그 후 '사랑의 절벽'으로 불려졌고, 이젠 괌 관광에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절벽은 높이가 좀 높고 파도가 거세다는 것 말고는 다른 절벽들과 다를 바 없지만 사랑이라는 만국 공통, 영원 불변의 코드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이곳에는 다섯 나라의 말(우리나라 말도 있습니다)로 기록한 돌판이 관광객들에게 이들의 애절한 사연을 이야기해 주고 있지만 정작 차모로 언어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차모로 인들은 말은 있지만 글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종 대왕이 다시 한 번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이곳에는 사연을 기록한 돌판과 함께 전망대 등 관광객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되어 있습니다. 3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두 연인을 기념하는 기념 동상이 있었지만 작년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부서지는 바람에 이젠 흔적만 남아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인들의 사랑을 이뤄 준다는 사랑의 종은 여전히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새로 이뤄야할 사랑은 없지만 가족 간의 사랑이 영원하라는 의미로 모두 한 번 씩 종을 쳐 보았습니다.

두 연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한국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여러나라 말로 적혀 있지만 정작 차모로 말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차모로인들은 말은 있지만 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데는 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다들 모였는데 매제와 그의 둘째 딸 희연이만 빠졌습니다. 웅섭이는 여전히 호빵맨 복장입니다.

막강 여성 4인방입니다. 날이 갈수록 파워가 커지고 있는데, 특히 맨 오른쪽의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집니다. 왼쪽부터 제수씨, 어머니, 여동생, 아내

시누이와 올케.

시누이와 올케 2

연인들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라는 염원을 담고, 신혼 부부들은 백년해로를 기약하면서 이 종을 친다고 합니다. 우리도 가족 간의 사랑이 영원하도록 빌어 보았습니다.

이제 비는 그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옵니다. 괌은 태풍의 나라입니다. 매년 필리핀과 괌 사이에 있는 바다에서 수 십 개의 태풍이 만들어져서 중국, 우리나라, 일본 근처로 올라오고 있으니 괌은 태풍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년 만들어지는 태풍에 이름을 붙이는 일도 괌에 있는 미군 기상 관측소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죠.

태풍은 이 나라의 생활 양식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괌에는 경작할 땅은 많지만 태풍이 심하여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어서 농산물 조차도 대부분 수입한다고 합니다. 건물 또한 고층으로 지어진 것은 별로 보이지 않고 낮으막하게 지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건물들이 지붕을 올리지 않고 박스 형태로 지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게들마다 유리창 앞에 튼튼한 셔터를 장착하고 있는데 이는 방범을 위한 것이 아니고 태풍으로부터 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타이푼 셔터'라고 합니다.

사랑의 절벽을 구경하고는 모두들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묵고 있는 이 호텔은 콘도형 호텔이어서 호텔 내에서 취사를 할 수 있습니다. 점심은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으로 간단하게 먹고 오후에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여인네들이 놀러오면 원래 남자들이 취사를 담당해야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남동생이 라면을 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날 이 친구의 놀라운 라면 조리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동생은 자그마치 10개나 되는 라면을 한 냄비에 끓이면서도 조금도 퍼지지 않은 꼬들꼬들한 면발을 선보였습니다. 라면이 퍼지지 않게 하려고 물은 좀 적게 잡고, 스프를 미리 풀어서 물을 끓인 후 면을 넣는 것이 비법이라는 군요. 모두들 퍼진 라면을 먹을 것을 각오하고 있던 터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는데, 덕분에 남동생은 돌아오는 날까지 라면 담당이 되어서 이후에도 두 번이나 더 식구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 대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함께 가져온 김치를 반찬으로 햇반까지 데워서 모두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슬픈 정식 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식사 후에는 모두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후 늦게 수영장으로 향했습니다. 이 호텔에는 조그마한 야외 수영장이 있는데 여기서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카애들도 미리 준비해간 고무 튜브에 앉아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게 잘 놀아서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라데라 콘도 호텔의 뒷편에는 조그마한 야외 수영장이 있습니다.

수영장 주변에는 바비큐 요리를 할 수 있는 그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수영장 주변에는 야외 바비큐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애들과 여인네들이 수영을 하는 동안 남자들이 쇼핑몰에 가서 사 온 스테이크용 고기, 새우, 소시지 등의 각종 재료들을 올려 놓고 불을 붙혔습니다. 중간에 비가 내려 불이 꺼지는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다행히 비가 계속 내리지는 않아 근사한 바비큐 요리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야외에서 이렇게 먹는 바비큐의 맛은 각별합니다. 맛도 맛이지만 남국의 분위기와 여행의 들뜬 기분이 한 몫한 까닭이겠습니다. 쇼핑 몰에서 함께 사 온 와인까지 한 잔 씩 걸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역시 여러 가지 재미 중 먹는 재미가 제일인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음주 수영까지 곁들여가며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영장은 밤 10시까지 개장하므로 밤 늦은 시간에도 수영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정다운 모녀. 몇 잔의 포도주로 혈색이 좋습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표정이 굳어지는 우리 애들. 어릴 때는 포즈를 잘도 취해 주더니만 요즘은 사진기를 거부합니다.

적당하게 술이 취해 객실로 돌아오니 연 이틀 쌓인 피로가 몰려 옵니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전날 먹었던 술 때문인지 목이 말라 잠을 깨어 보니 아직 이른 새벽입니다.

조명을 환하게 밝힌 수영장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관광지라 그런지 새벽이 되어도 시가지는 불빛이 휘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