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를 이용하여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때마침 큰 아이가 8박 9일간의 정기 휴가를 받았는데
우리는 신정을 쇠어 구정 때는 차례를 지낼 필요가 없으므로
온가족이 한라산 등반을 가기로 했습니다.



구정 전날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가서
'늘봄 흑돼지'를 찾아가니 이미 저녁 식사로는 조금 늦은 시간입니다.
구정 전 날이라 그런지 손님이 좀 적은 듯하네요.

원래는 선술집 분위기가 나는 '돈사돈'을 가고 싶었는데
그곳은 구정 연휴 동안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돈사돈과 같은 서민적 분위기는 없지만



깔끔하게 준비된 상위에 숯불을 피워놓고
두툼한 흑돼지 구이를 먹는 맛은 각별합니다.



거기다 아이들과 함께 한라산 소주까지 한잔 걸치니
분위기 좋습니다! ^^



된장과 공기밥으로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내일을 위해 일찍 취침...



다음날 이른 아침 온가족이 성판악 휴게소 앞에 섰습니다.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친 육지와는 달리
성판악의 아침 기온은 그렇게 춥지 않더군요.
영하 1-2도 정도의 기온인데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서
등산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두꺼운 자켓은 벗어야 했습니다.



장비 점검하고 아이젠 착용 후 7:35부터 등반 시작!!



조금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해가 떠오르고 있네요.



오늘이 설날이라 그런지 등산객이 크게 많지 않아서
비교적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날 잘 잡았습니다!! ^^



성판악 휴게소에서 백록담까지는 9.6km이고,
중간에 사라 오름 갔다 오는 걸 감안하면 10.8km 정도 됩니다.
부지런히 걸어도 4-5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습니다.



주초에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 바람에 눈이 많이 녹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주중에 다시 눈이 살짝 온 덕분에
나뭇가지에 눈꽃이 피었습니다.



작년보다는 조금 빈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눈꽃을 구경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아이가 찍어 준 사진입니다.
스님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진은 많이 찍지만 막상 내용을 살펴 보면 제 사진은 거의 없는데
이번엔 큰 아이도 사진기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제 사진도 좀 건졌습니다.
위와 같이 별표(★)를 붙인 사진은 제 아이가 찍은 사진입니다.



성판악을 출발하여 1시간 쯤 걸어가니 속밭 대피소가 나옵니다(08:39).
잠시 휴식을 취한 뒤



30여 분 더 걸어 올라가니 사라 오름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네요(09:27).



갈길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르막 길을 잠시 오르니 앞이 트이면서 사라 오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라 오름의 분화구엔 칼데라 호수가 있는데 수량이 많습니다.
백록담보다 훨씬 물이 많은 것 같네요.





★ 사라 오름에서 바라본 백록담







★ 이 발자국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이곳엔 항상 상고대가 열리는 모양입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햇빛을 받은 상고대가 아름답게 빛나네요.





사라 오름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데크를 따라 반대편으로 건너 가면



사라 오름 전망대가 나옵니다.



여기선 조금 후 올라가게 될 백록담과



제주의 남쪽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사라 오름을 갔다 와서(10:00) 다시 30여 분 길을 오르니



진달래밭 대피소가 나옵니다(10:28).
백록담 올라가기 전 마지막 대피소이므로



잠시 쉬면서 전열 정비!



진달래밭 대피소를 12시 이전엔 통과해야 한다는데 지금 시각이 10:46이므로 여유있습니다.



사진 찍기 놀이 하면서





차근차근 오르다 보니 어느덧 백록담이 코앞입니다.



뒤를 돌아 보니 이제 전망이 넓게 트이면서 발 아래로 동제주의 풍광이 일망무제로 펼쳐지고...



오른쪽 구름 아래쪽으로는 좀 전에 올랐던 사라 오름도 보이네요.





인증샷 몇 장 더 찍고



갈길을 재촉하니





드디어 정상(12:50)!!!



★ 여기가 한라산 정상, 백록담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두 다리 힘으로
4시간 여 정직한 땀을 쏟은 자만이 접할 수 있는 장엄한 풍경입니다.

07:35에 출발하여 12:50에 도착했으니
4:15 걸린 셈인데 중간에 사라 오름 다녀온 0:45울 제외하면
3:30만에 올라온 셈이므로 비교적 빨리 온 것 같습니다.
겨우내 소백산 전지 훈련 시킨 보람이 있네요. ^^



백록담을 파노라마 뷰로 찍어 봤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좀 더 큰 사진이 나옵니다.







정상에 서서 뒤를 돌아 보니 동제주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맑은 날씨 덕분에 저 멀리 해안까지 환하게 조망할 수 있네요.
한라산 정상이 이렇게 쾌청한 날이 많지 않아서
이런 풍광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런 멋진 풍광을 보게 되었으니
한라산 등반에서만큼은 대운을 탄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이 설날이기도 하니 더욱 뜻깊은 일입니다. ^^



정상 인증샷 찍고...



백록담에는 작년까지 없었던 표지석이 새로 하나 생겼군요.





일반 등산객은 많지 않았지만
때마침 서귀포에서 전지 훈련 중이던 상주 상무 축구팀과



'위대한 대한민국의 청년들'이라는 곳에서
단체 등반을 온 바람에 정상부가 조금 붐빕니다.



한라산엔 까마귀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작년에 왔을 때는 진달래밭 대피소에서부터 까마귀가 무척 많았는데



올해는 별로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다 싶었더니
이렇게 꼭대기에 모여 있군요.



우린 저들을 구경하지만 저들 또한 우리를 구경하고 있겠죠?
우리는 잠시 왔다 가는 산객이지만
저들은 이곳에 상주하고 있으니
한라산의 주인은 저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싸가지고 온 김밥과 어묵국으로 점심을 먹습니다.
어제 저녁 제주 시내에 있는 김밥이 맛있다는 곳에서 포장해서 가져온 것인데
과연 맛이 좋습니다.
높은 산을 힘들여 오른 뒤 먹는 이 맛은
오직 먹어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겁니다.



★ 점심 식사를 한 뒤



인증샷 몇 장 더 찍고





이제 하산합니다(13:07).



하산길은 관음사 방향으로 잡았는데



성판악 코스와는 확연히 다른 풍광을 보여 줍니다.





특히 백록담 북벽에서 이어지는 장구목 능선쪽 풍광은 다시 없는 절경입니다.



장구목 능선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절벽은 그 모양이 병풍을 닮아서 '병풍 바위'라고 한다는데,
관음사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병풍 바위를 배경으로 인증샷 한 컷 찍고



계속 하산을 서두릅니다.





하산길은 시작부터 급사면이고 이 급사면이 끝나면 안부가 나오는데
이곳을 왕관릉(왕관 바위)이라고 한답니다.
여기서 봐서는 왜 왕관릉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산을 좀 더 내려가서 반대편에서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왕관릉을 지나 삼각봉 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백록담 등반로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구간인데,
눈이 쌓인데다 얼어 붙기까지 해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사진으로 봐도 정말 가파르죠?
문득 나중에 이 구간을 거꾸로 한 번 올라가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급사면이 끝나는 지점엔 용진각 대피소 터가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용진각 대피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장구목 능선의 수직 암벽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전문 산악인들의 동계 훈련 코스로 손꼽히는 곳인데
용진각 대피소는 그 베이스 캠프와 같은 역할을 했다지요.



그러나 2007년 태풍 나리 때 불어난 계곡물에 대피소는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가 버리고
지금인 이렇게 빈 터만 남았습니다.




용진각 대피소터 앞에는 삼각봉으로 이어지는 출렁다리가 있어
흔들림을 즐기며 건너가는 조그만 재미도 있습니다.



★ 큰 녀석이 찍어 준 컷입니다.



★ 반대편에서 본 왕관릉(왕관 바위)인데,




이쪽에서 보니 정말 왕관을 닮았죠?



저 왕관을 쓰려면 설문대 할망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관음사 코스는 전체 길이가 8.7km입니다.
그런데 이 코스는 해발 580m 정도에서 시작하니
해발 700m에서 시작하고 전체 길이가 9.6km인 성판악 코스에 비해
훨씬 가파른 코스입니다.
이제 2.7km 내려왔고 앞으로 6km 더 내려가야 하는군요.





이곳은 용진각 대피소가 쓸려 내려간 후 새로 세워진 삼각봉 대피소입니다(14:25).



대피소에서 보면 저 봉우리에 왜 삼각봉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피소 뒤쪽에 있는 벤치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가가도 실눈을 뜨고 슬쩍 한 번 쳐다 볼 뿐, 이내 다시 잠을 청하더군요.
흡연, 취사, 야영 금지란 표지판이 보이지도 않는지 쯧쯧... ^^



삼각봉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하산길을 재촉하는데(14:42)...



거기서 조금만 내려가니 풍경이 갑자기 변하더군요.



정상부 쪽은 바닥을 제외하고는 눈이 거의 없었는데
이곳은 며칠 전 내린 눈이 전혀 녹지 않고 있었고



★ 바람도 전혀 불지 않았는지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생긴 눈꽃들이




★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으며



갑자기 구름마저 잔뜩 끼어 마치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얼음나라와 같은 풍경을 연출합니다.



설국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



가족 인증샷도 찍어 봅니다.



정상부와 이곳의 풍경이 너무나 달라서



이게 모두 한 날에 찍은 사진이라고 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겠죠?



큰아이와 저는 성판악에 세워 둔 차량의 회수를 위하여 하산길을 서둘러 16:05에 주차장에 도착했고
아내와 둘째는 이보다 40분 쯤 늦게 내려왔는데,
각각 8:30, 9:10 쯤 걸렸으니 중간에 사라 오름 갔다온 것(45분)과
정상에서 한 시간 이상 논 것(1:17)을 감안하면 비교적 준수한 기록이고
아내도 크게 피곤해 하지 않으니
역시 소백산 전지 훈련의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등산 후엔 간단하게 사우나를 하고 뷔페 식당을 찾았습니다.



제주에서 나름 맛으로 인정받는다는 '삼다정'을 갔었는데
메뉴가 아주 다양하진 않았으나 내실있는 구성이었고 맛은 참 좋았습니다.



거기다 지난 12월
우리 부부의 결혼 기념일을 맞아
둘째가 선물했던 '모에 샹동 로제'까지 곁들이니



캬! 좋다!!!
온가족이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을 오른 뒤

함께 마시는 샴페인!
정말 좋습니다.
음식도 다 맛있고... ^^

한라산 등반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던 아내도
날씨, 풍광, 분위기, 등반(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고...) 등
모든 것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고 하고
아이들도 모두들 행복해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싶습니다. ^^



또 하나 기분 좋은 사실은
이곳 매니저가 이 샴페인이 아들이 부모의 결혼 기념일 선물로 준비한 것이란 말을 듣고
코르키지를 면제해 줬다는 사실!! ^^
돈 굳었다... ^^





원래 장시간의 등반과 같은 강도 높은 운동을 한 직후엔 소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식사를 가볍게 하는 것이 좋지만 이날은 특별한 날이니 만큼 온 가족이 과식을 했습니다.
(덕분에 다음날 약간의 대가를 치르기도 했지요. ^^)

행복한 저녁입니다. ^^


아이들이 점점 커 가니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 듭니다.

앞으로 이렇게 온 가족이 다시 한라산을 찾을 날이 또 언제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