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의 아픈 역사을 근대 문화 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는 군산을 다녀 왔습니다.
영주서 군산까지는 바로 연결되는 도로가 없어서
몇 개의 고속도로와 국도를 갈아타면서 구불구불 300km 이상 가는 까닭에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출발하여 군산에 도착하니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있는 시각입니다.




밑반찬이 푸짐하기로 유명한 군산 횟집들 중에서도 이름난 곳이라는 이곳이
마침 숙소에서 가깝기도 해서 찾아갔더니
역시 유명한 집 답게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0분여를 기다린 후에야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네요.



광어와 우럭이라는데 역시 바닷가에서 먹는 회는 신선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곁들여 나오는 각종 밑반찬들은 밑반찬이라고 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제대로 된 단품 요리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기대가 너무 컷던 탓일까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가짓수가 조금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맛은 따로 주문한 요리에 버금갈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튿날 군산 기행은 일흥옥의 콩나물 국밥으로 시작합니다.
일흥옥의 외관이 인터넷에서 본 것과 다르네요.
최근에 보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근처의 딴 상가들도 모두 같은 모습입니다.
아마도 근대 문화 역사 도시란 컨셉에 맞춰서
군산시 차원에서 그 시대의 일본식 가옥 스타일로 꾸민 것 같습니다.



이 집 콩나물 국밥의 특징은 토렴식이란 거랍니다.
토렴이란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러내는 것을 여러번 반복하여
밥이나 국수를 데우는 방법으로서
이렇게 조리를 하면 국물이 좀더 구수하게 된다고 합니다.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서 먹어 보니
과연 맛있습니다!!
한 20년 쯤 전, 경상도에 콩나물 국밥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전주 코아 호텔 뒷편에 있던 국밥집에서
제대로 된 콩나물 국밥을 처음 먹었을 때의 감동만큼은 아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맛있는 콩나물 국밥을 먹은 것 같습니다.



일흥옥 바로 옆에는 콩나물 국밥으로 유명한 또 다른 집, 일해옥이 있습니다.
이 집은 토렴식으로 조리하지 않는다고 하니 깔끔한 맛을 원하면 이 집으로 가면 될 일입니다.



아침 식사 후엔 군산의 명물 먹거리로 단연 첫 손 꼽히는 이성당을 찾았습니다.
일찍 가면 줄을 안서도 된다고 해서 갔더니 과연 줄을 안서도 되고



심지어 일인당 살 수 있는 빵 숫자의 제한도 없습니다.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면 그때그때 빵 상황에 따라 일인당 살 수 있는 갯수가 정해진답니다.



여보게 맘대로 살 수 있다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여? ^^



더운 여름날 하루종일 들고 다니면 상할 것 같아서 보관을 부탁했더니
벌써 이렇게 미리 보관한 사람, 택배 주문한 사람들의 봉투가 즐비합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군산 기행을 시작합니다.
군산 구 시가지에는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간직한 곳들을 돌아보는
이름하여 '탁류' 탐방길이 있습니다.
진포 해양 공원에 차를 세우고 출발!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군산항에는 밀물이 되면 선착장 자체가 물위로 떠오르는 부잔교가 있습니다.
지금은 썰물 때라 갯벌이 드러나 있지만 밀물 때가 되면 다리에 연결된 선착장이 물위로 떠오릅니다.
그 옛날 이 선착장엔 일본으로 쌀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드나들었겠지만
지금은 연안 어선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네요.





부두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눈에 띄는 조각상이 하나 있어서 가까이 가 봤더니
그 주인공이 바로 화가 박수근랍니다.
박수근 화백의 고향이나 활동 무대가 군산이었던가?
돌아와서 찾아 보니 그는 원래 강원도 출신인데
한국 전쟁 당시 이곳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부두 노역자로 생계를 이었는데
'이곳이 바로 화가 박수근이 부두 노역자의 곤궁한 삶을 살면서도 예술혼을 불태웠던 장소다'
라고 적고 있네요.
그럴듯한 스토리 텔링인가요?



박수근의 조각상 옆으로는 구 조선은행 건물이 있습니다.



해방 이후 여러 용도의 건물로 바뀌면서 쇄락한 것을 최근 옛 모습으로 복원하고
군산 근대 건축관으로 개관했습니다.



이곳엔 근대 군산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고



오늘날 한국 은행과 같은 역할을 했던 조선 은행 군산 지부의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역사는 우리가 근대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춰가는 시기의 역사이지만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이기도 해서
그 역사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처연한 감상에 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근대 문화 유산을 돌아보는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군산은 호남의 곡창 지대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른 본거지이니
더욱 그런 감정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속의 전시물에선 군산 지역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탁류'의 한 부분을 통해
일제 수탈의 도구가 된 조선은행과 거기에 엮인 서민들의 애환을 보여주고 있네요.



2층에도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군산의 역사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모시모시??
전화기를 들면 전시물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구 조선은행을 시내 쪽으로 길을 건너면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빈해원이 있습니다.
빈해원 오래된 중화요리집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물이라 내부서 보는 모습이 멋있다고 하는데
아침 먹은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 패스!



빈혜원을 지나 탁류 탐방길을 따라가면
예전엔 손님으로 붐볐을 국도 극장과



우일 극장이 나옵니다만 지금은 주인잃은 건물이 되어
쓸쓸히 옛 영화를 추억하고 있고...



이 두 극장이 있는 일대를 '개복동 예술인의 거리'라고 한다는데



이런 몇 개의 간판들이 이곳이 예술의 향기가 있는 곳임을 증거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저 쇄락한 구시가지 길...



주차장 담벼락에 그려진 난데없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생뚱맞은 느낌마저...



퍼포먼스 하면 공짜? ^^



이게 뭘까요?



오른쪽을 먼저 봤었는데 왼쪽에 답이 있군요.



해돋이 공원으로 연결되는 선양 고가교의 오래된 콘크리트 계단엔 담쟁이 덩굴이 생명의 끊질김을 보여주고...



그 옆엔 이름모를 열매가...



해돋이 공원의 언덕을 기어오르며 세워진 집들.
어느 도시나 달동네는 있다...



해돋이 공원에서 동국사로 가는 길엔 철이른 코스모스가 여름 더위에 지쳐 있네요.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절이랍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는 종교일 것입니다.



일제 시대 이땅엔 수많은 일본식 절이 세워졌지만 대부분 철거되었는데
동국사는 유일하게 원형이 잘 보전되어 아직도 사찰로 쓰이고 있는 일본식 사찰이랍니다.

일제 시대엔 '금강선사'란 이름이었는데
해방 후 정부에 이관되었다가 1955년 불교 전북 교단에서 인수하여 '동국사'라고 이름을 고쳤고
1970에 조계종에서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지붕의 경사가 급한 것과 용마루나 처마가 일자로 된 게 우리 식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이랍니다.



대웅전에 들어가면 내부 양식은 일본식이지만 모셔진 부처님은 그렇지 않은데
이 부처님은 조선시대 효종 1년(16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원래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 모셔져 있던 것을 해방 후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하네요.



대웅전의 한켠엔 일제 침탈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어 묘한 기분을 갖게 합니다.



동국사를 나오니 탐방로는 동국사길로 이어집니다.
고교 야구가 인기를 끌던 시절 군산 상고는 '역전의 명수'였죠?



군산이 낳은 소설가 채만식의 흔적은 이 도시 곳곳에 보입니다.



한때 출가한 몸이었던 고은 시인이 바로 이곳,
동국사에서 혜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암소 한 마리를 주메뉴로 하는 이 식당의 축대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지 않습니까?
이 집이 바로 옛 군산부윤 관사랍니다.
온갖 물자가 모여들던 군산의 부윤 자리는 큰 부를 쌓을 수 있는 자리였기에
그 시절 관리들은 이곳으로 부임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하네요.



탁류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면 검붉은색으로 담장을 칠한 큰 가옥이 하나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지로 유명한 '히로쓰 가옥'입니다.



히로쓰는 일제시대 포목상으로 크게 돈을 번 이로서
이 집은 그당시에 가장 호화로운 집 중의 하나였다고 하네요.
건물 뿐만 아니고 일본식으로 꾸며진 정원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층식인 이 집은 대부분의 공간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어
이층에 올라가면 제법 장쾌한 전망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일대를 걷다 보면 이런 일제식 고가옥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군산의 구 시가지를 걷다 보면 오래된 시가지임에도
모든 거리가 놀랍도록 반듯반듯하게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 특이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박물관에서 보니
근대 군산은 1899년 군산항이 개항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군산항은 개항 당시부터 조계지로 출발하였다고 하네요.
조계지란 외국인들이 이곳에서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군산항이 개항할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내국인들의 가옥을 모두 철거, 이주 시키고
세밀한 도시계획에 의해 계획적으로 개발한 곳이라고 합니다.
군산의 구시가지가 이렇게 반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고
그 시대 유적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이면엔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던 딴 도시들은 일제 이전에 이미 토착 양반, 부호들이 있었을 테고
그래서 일제 시대에도 나름대로 세력을 유지했을 것이며
해방이 된 이후엔 빠르게 일제의 흔적을 지워 버렸을 가능성이 크지만
군산의 경우 한국인을 모두 몰아낸 상태에서 출발했으므로
이 지역에선 한국인으로서 큰 부나 권세를 가진 사람이 드물어서
제대로 된 건물들은 온통 일본식 건물들이었을 테고
그런 이유로 자연히 그시절 유적이 많이 남아 있게 되지 않았을까요?
물론 군산이 해방 이후 항구의 중요도가 떨어지고 산업 개발에서 소외되는 바람에
이 건물들을 빠르게 대체할 현대식 건물의 건축이 저조했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되긴 할 거고요.



이곳은 숙박 시설로 사용되고 있는 '고우당'입니다.
원래는 우리도 이곳에서 묵고 싶었으나 워낙 인기 있는 숙소인지라 예약이 안돼서
이렇게 외관을 둘러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곳은 원래 일본인 집단 거주지였는데 군산시의 근대 문화 역사 도시 조성 사업의 하나로 조성된 곳이랍니다.
일부는 옛 건축물을 보수하기도 했다지만 많은 건물이 새 건물처럼 보이는 걸로 봐서
1930년대의 건축 양식으로 복원된 건물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1930년대의 일본식 건물들과 일본식 정원이 잘 조화를 이룬 매우 아름다운 공간임엔 틀림없습니다.
다음에 또 군산을 방문할 일이 있으면 미리 예약해서 이곳에서 꼭 한 번 자 보고 싶네요.



고우당에는 숙박 시설 뿐만 아니라 식당과 선술집, 찻집도 있어서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둘러 볼 이유가 충분히 있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찻집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면서 시원한 스무디 한 잔씩 마셨습니다. ^^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한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은 초원 사진관이 여기 있었군요!!

사실 이 사진관은 원래부터 있었던 건 아니고
당시 영화를 찍기 위해 분위기에 맞는 장소를 찾다찾다 못찾은 헌팅팀이
이곳에 왔을 때 여기는 창고로 쓰고 있었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주변 분위기가 완벽한 걸 확인한 제작진이 원상복구를 조건으로 이 공간을 빌렸고
실제로 영화를 찍고 난 뒤엔 원상복구를 시켜 주인에게 돌려줬다고 합니다.




그 뒤 군산시에서 근대 역사 문화 도시 조성 사업을 하면서 초원 사진관을 다시 복원 했다고 하네요.
즉 애초의 초원 사진관은 세트였던 건데
지금의 초원 사진관은 그 세트를 다시 한번 복원한 거네요.
위의 사진 속엔 영화 속의 초원 사진관이 나오는데 지금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김이 빠지죠?



초원 사진관 맞은 편엔 무국으로 유명한 한일옥이 새롭게 확장 이전했습니다.
이전의 초라하고 작은 음식점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인터넷의 힘이 무섭습니다.



구 조선 미곡 창고 주식회사 사택이랍니다.
규모가 작고 소박한 가옥이지만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곡 창고 주식회사 사택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 월명 공원이 나옵니다.
월명 공원 산책길을 따라 가다 보면 아름다운 탑이 하나 나오는데
이름이 '수시탑'이랍니다.



수능 수시 합격을 비는 사람이 찾아 오는 탑이라고 수시탑인가요? ^^
인터넷을 찾아 봤더니 한자로 守市塔이라고 쓰네요.
탑의 모양이 봉화의 모양이면서 배의 돛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군산 시를 지키는 봉화라는 뜻인 모양입니다.



수시탑을 돌아 내려오면 해망굴이란 터널이 나오는데
1926년에 개통되었다고 하니 근 90년 가까이 된 터널이네요.



지금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람만 드문드문 다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더군요.
바닷가에서 나는 약간 불쾌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주변을 잘 정리해서 노천 카페 등으로 활용해도 되겠다 싶습니다.



이곳은 '사가와 가옥'입니다.
왼쪽의 커피점 '사가와'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이 아니고 그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사가와 가옥'입니다.



사가와란 이름은 이집 주인의 이름은 아니고...
예전에 전당포로 사용되던 이곳에서 사용하던 금고가 '사가와' 금고였고
그 이름을 따서 이곳을 '사가와 가옥'이라 불렀다 합니다.



개인 주거 공간이라 뜰에서 외관만 대충 볼 수밖에 없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커피점을 통해 앞뜰까지는 들어가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근대 유산의 발자취를 따라 구 시가지를 한 바퀴 돈 다음 바닷가로 나오니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이 있습니다.



군산항이 개항한 이후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군산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인데



오래된 유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서 약간 생소한 느낌도 있지만
지금부터 또 오랜 세월이 지나면 박물관의 의미는 더 커질 것 같습니다.



박물관 2층엔 일제 시대의 군산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공간이 있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곳은 그 시절 군산의 하층 노역자들이 거주하던 공간인데 집이 아니라 움막입니다.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 지대에 사는 서민들의 삶이 이토록 곤궁했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군산은 개항 당시부터 토착민을 이주시키고 외국인(사실은 일본인)을 위한 도시로 개발한 곳이며
그 후 일제 강점기에는 이 일대 곡창 지대의 미곡을 긁어 모아 일본으로 수출하던 수탈의 중심지였고,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근처의 평아지대에서 자작농, 소작농으로 살던 이들이
일제의 수탈 농업경영으로 몰락하여 유입된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의 피폐한 삶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의 혼란스러운 나라에서는 석유와 다이아몬드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듯
혼란스러운 시대의 비옥한 토지 역시 축복이 아니라 재앙인 것 같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뒤로하고 비치된 의상을 입고 사진도 한 장씩!



근대 역사 박물관 옆에는 구 군산 세관 건물이 있습니다.
1908년 문을 열어 1993년까지 사용되었던 이 건물은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단 세곳 남은 중세 유럽 양식의 건물로서
독일인이 설계했고 벨기에에서 수입한 벽돌로 건축되었다고 힙니다.



내부를 돌아보고 싶었으나 일요일은 휴관한다고 하여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고...

옛 건물 옆으로는 새로 지은 군산 세관이 보이네요.



역사 박물관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가면 이름도 요상한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이 나옵니다.



일본에서 18번째로 생긴 은행이라해서 18은행이라 이름 붙었다는 이 은행은
이곳에 진출한 일본인들의 사업 자금을 대 주는 일이 주업무였다고 하니
일제 미곡 수탈의 자금줄이었던 셈입니다.



그당시 여기서 실제로 썼던 금고랍니다.



은행 뒤쪽의 별실 2층엔 안중근 의사의 여순 감옥을 재현한 공간이 있습니다.
근대 문화 유산 탐방이라 하지만 결국 일제 수탈의 역사를 보는 셈이 되어 불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데
그런 마음을 달래기 위한 공간일까요?
약간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만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번 기립니다.



은행 뒷편으로 나오면 장미 공연장이 있습니다.
이 일대가 장미동인데 여기서 '장미'는 꽃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고
예전에 이 일대가 일본으로 수출하는 쌀(米)을 보관하던 창고(藏)가 있던 장소라고 해서 藏米洞이라고 불렀답니다
지금의 이 공연장은 조선 미곡 창고 주식회사에서 쌀을 보관했던 창고라고 하네요.



장미 공연장 옆의 골목길을 돌아 나가면



갤러리도 있고



카페도 있습니다. 이 건물은 예전에 무역회사로 사용되던 건물이라고 하네요.



온종일 땡볕에 걷느라 피곤해진 다리도 쉴겸



갈증도 해소할 겸 옛날 팥빙수 하나 먹어 봅니다. 먹는데 정신이 팔려 핀이 나갔네요.



군산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출발점으로 돌아오니 그새 밀물이 되어 갯벌 위에 있던 배들이 물위에 떠 있네요.



군산 문화 유적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 위봉함을 돌아봅니다.
이 배는 1945년 미국에서 건조된 상륙함(LST)으로서 1959년 한국군에 인수된 뒤
우리 해군의 주력함으로서 월남전에도 참여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다
2006년 퇴역하여 지금은 이곳에서 안보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내부도 둘러 보았는데 배터리가 간당단당해서 아끼느라 사진은 생략했습니다.

위봉함을 끝으로 군산 근대 문화 유산 답사를 끝내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경암동 철길 마을로 갑니다.



이 철길은 1944년 신문용지 제조 회사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철도로서
하루에 딱 두 번 열차가 지나갔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는 동네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열차인지라
열차가 지나갈 때면 역무원들이 호루라기를 불어 사람과 동물들을 대피시켰다고 하는데
주민들은 철길에 널어 놓았던 농작물, 세간 등을 들여놓고 강아지도 불러 들였다고 하지요.



시속 10km로 느릿느릿 운행되던 그 열차도 2008년을 끝으로 더 이상 다니지 않으니
이곳은 이 지역 주민들의 온전한 골목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낭만스러운 모습이 알려지면서
(에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의 무대였고,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의 촬영지였답니다)
이젠 군산을 들르는 사람들이 한 번씩 가봐야 하는 곳으로 바뀌었으니
철길 골목은 이제는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녀도 그들은 무심한 일상을 이어갈 뿐입니다.





이곳의 빨랫줄 사진이 유명하다던데 전 마음에 들게 나오지 않네요. ^^









골목길 상권이 형성되기도 하고요...





딱 한 장 찍은 커플 인증 샷!



적은지 몇 시간, 아니 몇 붙도 채 안됐을 수도 있는 따끈따끈한 메모가...
관섭아 20살이 되면 꼭 여친과 함께 다시 오너라.



군산 근대 역사 문화 유산 답사길은 참 묘한 기분이 드는 답사길입니다.
우리의 근대사란 것이 일제 강점기와 딱 맞물려 있다 보니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일은 우리의 아픈 속살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딴 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근대의 유산물들을 돌아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시절 핍박받던 우리의 모습을 대하는 아픔도 있지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시절의 애잔한 추억을 되씹는 군산 답사길은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법고창신,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야 발전이 있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