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겨울 한라산 등반을 하고 나니 다른 계절의 한라산도 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철쭉이 피는 계절에 맞춰 제주도 티켓을 예매해 놨었는데
때마침 군에서 제대한 큰 아이가 따라 나서겠다고 하여
급히 티켓을 하나 더 장만했습니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아이와 함께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대구에서도 제주행 비행기는 탈 수 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가 일찍 끊어지기 때문에
한라산 등반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
김해 공항을 출, 도착지로 했습니다.



김해 공항에 도착하여 하늘 정원에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하며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제주 공항의 일기 상태가 안좋다고 하면서 30분이나 늦게 출발하더니
제주 상공에 와서는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면서 40-50분이나 상공을 뱅글뱅글 돌다가
급기야 도저히 착륙할 수가 없으니 김해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김해 공항에 내려서 상황을 알아 보니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로 티켓을 바꿔 주든지 환불해 주겠다고 하는데
첫 비행기는 7:10에 있다고 합니다.
7:10 비행기를 타면 최소한 9:00는 되어야 등산을 시작할 수 있는데
그 시각에 시작해서 등반을 마치고 샤워하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될까 생각해 보니
만만하진 않겠지만 조금 빨리 올라간다면 가능할 것 같아서 결행하기로 하고
다음날 비행기 표로 교환하여 공항을 나오니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었는데
아직 저녁 식사도 못한 상태입니다.

공항 직원에게 숙소를 구하려면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일까 물어 보니 사상이라고 해서 사상으로 갔더니
숙박 업소는 몇 개 있지만 주변은 온 동네가 캄캄하여 식사를 할 곳이 없습니다.
근처의 편의점에 들어가서 주변에서 식사할 곳을 문의하니 근처엔 없고 남포동으로 나가 보라 합니다.




내비게이터에 남포동을 찍고 갔더니 과연 그곳은 불야성이더군요.
숙소를 잡고 뒷골목으로 들어가니 11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온갖 음식점들이 성업을 하고 있습니다.



남포동에선 자갈치 횟집을 가든지 곰장어를 맛보라고 했지만
회는 내일 한라산 등반을 마친 뒤 먹기로 했으니
오늘은 큰 아이가 좋아하는 오븐 치킨집, 오꾸닭으로 갔습니다.



치킨과 소시지를 안주 삼아 둘이서 생맥주 4,000 cc 흡입하고,
다음날 점심 식사용 김밥까지 구입한 뒤
숙소로 들어가 정리하고 나니 2시 가까이 되었네요.
내일을 위해 바로 취침.



3시간 남짓 자고 8시간 만에 어제 그 자리에 다시 왔습니다.
탑승권을 끊으며 직원에게 물어 봤더니
10:30 까지는 기상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하여
과연 제대로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걱정하며 탑승을 하였는데
일단 이륙은 정시에 합니다.



제주로 가는 도중 바깥을 보니 매우 아름다운 섬이 하나 보여서



무슨 섬인지 찾아 봤더니 '거문도' 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어업 전진 기지랍니다.



우려와는 달리 제주 공항은 안개나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여 정시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관음사로 이동하여 등반을 시작합니다.
9:00 출발.
일단 시작은 예정대로입니다.
등반을 마친 후 사우나와 저녁 식사를 제대로 하려면 오후 4시 이전에 등반을 완료해야 하므로
주어진 시간은 7시간입니다.
가능하면 빨리 진행하되 만약 시간이 부족하면
하신길의 사라 오름 탐방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는 등산로는 성판악과 관음사 두 개의 코스가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는 성판악 코스입니다.
성판악 코스는 관음사 코스에 비해 길이는 약간 길지만(9.5km)
시작점의 해발 고도가 더 높아(750m) 완만한 편인데다가
전체적으로 경사도가 일정해서 어려운 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관음사 코스는 길이는 약간 짧지만(8.7km) 더 낮은 곳(580m)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성판악 코스에 비해 훨씬 가파릅니다.
시작 지점에서 탐라 계곡 대피소까지(3.2km)는 비교적 완만하지만
그 이후 개미등, 삼각봉 대피소, 왕관릉으로 이어지는 코스(5.5km)는
매우 가파른 구간이어서
우리나라의 단일 정상 등정 코스로서는 가장 힘든 코스라고도 합니다.

성판악 코스로 오르면 쉽긴 하겠지만 이미 그쪽으로는 두 차례나 가 봤고
이번엔 제대한지 한 달도 안된 특급 전사를 동반했으니
관음사 코스를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관음사 코스는 탐라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나 있지만 계곡과는 약간 떨어져서 진행하는데
탐라 계곡 대피소 직전에 드디어 계곡과 만나게 됩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넘쳐나겠지만 현무암 지대로 이루어진 제주도의 토양 특성상
평소엔 이렇게 건천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작 지점에선 날씨가 쾌청했는데 탐라 계곡 대피소를 지나면서(9:48)
중턱에 걸린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네요.
경사도도 급격히 올라갑니다.
경사가 급하기로 유명한 오색-대청봉 구간 만큼이나 가파른 것 같습니다.



하늘도 열리지 않고 지루한 숲길로만 이어지는 가파른 등로를 따라
한 시간 이상 숨을 몰아쉬며 열심히 오르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열리면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삼각봉이 나타납니다(5.9km 지점, 10:55).
출발점에서 2시간이 채 안걸렸으니 순조로운 진행입니다.
이 속도로 가면 하산길에 사라 오름도 들를 수 있는 시간도 날 것 같습니다.



2시간여 쉴 새 없이 오른 다리를 쉬며 음료수와 간식으로 수분과 에너지 보충하고

주변의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백록담의 북벽은 장구목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길게 북쪽으로 달려 오던 장구목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마침표를 찍듯 우뚝 서 있는 봉우리가 삼각봉입니다.



신록이 우거진 삼각봉은 눈으로 뒤덮힌 겨울 풍경과는 또다른 감흥을 줍니다.





삼각봉 왼편엔 아름다운 절벽이 있는데 '왕관 바위'라고도 하고  '왕관릉'이라고도 합니다.
저 왕관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설문대 할망일까요?





삼각봉을 배경으로 인증샷 한 컷!



2007년 태풍 '나리'가 이곳을 강타했을 때 백록담 북벽의 계곡으로 토사가 쏟아져 내려며
용진각 대피소와 다리를 쓸어 버렸는데
이 용진각 현수교는 그 후 새로 만든 다리이고
방금 지나온 삼각봉 대피소도 용진각 대피소 대신 지어진 것입니다.



용진각 대피소 터에서 바라본 장구목 능선과 병풍 바위입니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이곳은 거대한 설벽이 되어
희말라야 등반을 꿈꾸는 알피니스트들의 전지 훈련지로 변하는데,
초여름의 장구목은 겨울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네요.



시계가 열리지 않아 부지런히 오르기만 하면 됐던 개미등 구간과는 달리
이 구간은 숨막힐 듯 아름다운 풍광이 산객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극기 훈련하러 온 것이 아닌 이상 발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구목의 여름과 겨울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고사목들도 많아집니다.



관음사 코스에서 가장 가파른 왕관릉 오르는 길을 지나서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계속되더니



심신이 슬슬 지쳐갈 무렵 드디어 정상 바로 아랫쪽의 전망 데크가 나오네요.



백록담 북벽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바위인데
경복궁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잡상을 연상케하는 모양을 하고 있네요.



아 드디어 정상입니다.
관음사 입구에서 8.7km 지점.
출발한지 3시간 35분 만에 드디어 백록담에 도착했습니다(12:35).
삼각봉 대피소에서의 휴식 시간 제외하면 3시간 5분 걸렸네요.



인증샷은 찍어야 되겠죠?



처음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백록담이 구름에 가려 져 있었는데



잠시 기다리니 슬슬 구름이 벗겨지면서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 냅니다.
2주 쯤 전에 이곳에 1,000ml가 넘는 비가 와서
백록담에 물이 가득했다고 했었는데
워낙 물을 가두어 두지 못하는 지질 구조라
물이 많이 빠져 버리긴 했지만
아직도 물이 제법 많습니다.



파노라마 뷰로 백록담 전체의 모습을 담아 봤습니다.
위와 아래의 두 사진 다 클릭하면 더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점심 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45분 가량 쉬었습니다.
아름다운 백록담을 좀 더 감상하고 싶었으나 4시 이전에 하산을 완료하려면 이제 출발해야 합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백록담을 봤더니 이젠 구름이 완전히 개었네요.
파노라마 뷰 한 장 더 찍었는데 역시 클릭하면 큰 사진 나옵니다.



백록담을 배경으로 인증샷 한 컷씩 찍고...







하산(13:20)!!!





부지런히 하산길을 서둘렀더니 사라오름 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사라 오름은 백록담 등반길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오름인데 정상부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환경 보호를 위해 그동안 개방하지 않았으나 지난 2010년 11월부터 일반에게 개방되어
이젠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사라 오름은 왠만하면 일정에서 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라 오름 전망대에선 백록담을 볼 수 있고
한라산의 남쪽 사면을 조망할 수 있으나
오늘은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 전망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사라 오름의 개구리



후다닥 사라 오름을 돌아보고 난 뒤 다시 갈길을 재촉하여



드디어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목표했던 4시 이전에(3:53) 도착했으니 향후 일정에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총 6시간 53분 걸렸고
1시간 20분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이동 시간은 5시간 33분 걸렸는데
제법 빠른 시간 주파 기록입니다.



성판악에서 택시를 탔더니
서비스 정신이 놀랍게 투철한 기사 양반,

지나는 길목에 있는 말목장 옆에 차를 세우고
말 구경을 시켜 줍니다.





거기다 예로부터 한라산 산신제가 거행되던 산천단까지 안내해 주는데 



그동안 제주도에 여러 번 왔지만 산천단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기념샷까지 찍어주신 고마운 기사님.


사우나에 들러 7시간 동안 흘린 땀을 깨끗하게 씻고
산지물 식당으로 갔습니다.



성질이 급해 활어 상태를 유지할 수가 없고
기름기가 많아 쉽게 상하므로
현지가 아니면 맛볼 수 없다는 고등어 회.



한 점 먹어 보니 탱탱하고 고소한 맛이 혀를 자극하네요.
맛있습니다!!
고등어 특유의 비린 맛도 전혀 없는데 이게 이집을 유명하게 만든 비결일까요?



제주도 특산 '한라산' 소주까지 한잔 곁들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거기다 한치 물회까지 광속 흡입하고 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우여곡절을 겪은 한라산 등반이었지만
모든 일정 차질없이 잘 진행했고
거기다 남포동 밤거리까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으니 
이번 한라산 등반은 대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