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

2007년 한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존재를 알았습니다.
실크로드보다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교역로.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사천성과 운남성에서 티벳을 연결하는 길.
히말라야 동쪽의 험준하고 가파른 산악 지형을 따라 건설된,
티벳인과 중국 장족의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아름답고 험난한 길.

라싸의 조캉 사원에 이르는 머나먼 길을 오체투지의 고행을 행하며 걸어가는 순례의 길.

다큐멘터리를 통해 신비롭고 경외스럽게만 생각했던 그 길이
몇 년 전 등산에 입문한 이후엔
언젠간 꼭 바 봐야 할 버켓 리스트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차마고도의 하이라이트라 일컬어지는 호도협!
그리고 그 협곡을 이루는 옥룡설산!
이 두 단어를 리스트에 올린지 일 년 여 만에 드디어 그 꿈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봄, 여름, 6개월 동안 영어 연수를 가게 된 아내가
연수 스케줄 상 여름 휴가를 같이 가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해외 트래킹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마침 방학을 맞아 집에 와 있는 큰 아이가 합류하겠다고 해서
일사천리로 여행사 호도협 트래킹 상품을 예약했습니다.

그러나 호도협 트래킹을 가는 길은 험난한 코스만큼이나 시작부터 험난했습니다.
3개월 여 전 일찌감치 신청해 둔 상품이었건만,
출발 날짜가 몇 주 앞으로 다가오도록 성원이 되지 않더니
결국 팀 자체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둘이서 자유 여행으로라도 강행하느냐 여행지를 바꾸느냐 갈등하다
결국 자유 여행으로 강행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전 원래 선진국은 자유 여행을, 후진국은 패키지 여행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후진국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후진국의 경우 시스템이 허술하기 때문에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여행 중의 시행 착오가 지나고 나면 즐거운 추억일 수도 있지만
휴가가 길지 않다 보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데
중요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여행 전체가 심각한 난관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우 이미 작년에 베이징 여행을 통해서 시스템의 미비와 언어 소통의 문제점을 경험했기 때문에
말까지 통하지 않는 중국으로의 자유 여행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차마고도를 향한 열망은 이 모든 것들을 상쇄하더군요.

인터넷이 해결사인 시대입니다.
자유 여행을 결정하고 난 뒤 인터넷을 통해 비행기 편과 호텔을 예약하고 이동 교통편도 해결했습니다.
활성화 된 인터넷 카페를 통해 현지 리장 공항에 도착해서
호도협 트래킹이 시작되는 치아오토우(교두진)까지 가는 빵차를 예약해 준 쿤밍한스님도 만났고
옥룡설산 등반과 리장 관광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상세하게 일러준 팅팅님도 만났습니다.



차마고도는 크게 윈난성의 쿤밍에서 가는 루트와 쓰촨성의 청두에서 가는 두 개의 루트가 있는데
두 루트 모두 호도협 근처를 거쳐서 티벳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번에 우리가 돌아볼 코스를 구글 어스에서 시뮬레이션 해 봤습니다.
첫 이틀은 호도협 트래킹을 하고
3일 째는 옥룡 설산의 망설봉을 오른 다음
4일 째는 두 트래킹로의 배후 도시인 리장 고성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휴가를 떠나는 날은 초롱 속의 새가 열려진 새장 문을 박차고 창공을 나는 기분입니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지난 3주간 자신의 모교에서 진행되는 여름 캠프의 보조 교사 일을 끝마친 아이를 픽업하여
인근에 있는 막국수 집을 찾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막국수가 주 메뉴지만 메밀 전병도 참 맛있네요.



주말이라 차가 막힌 덕분에 넉넉할 줄 알았던 비행 시간이 조금 바빴습니다.



처음 타 본 사천 항공의 기내식.
나쁘지 않았습니다.

※ 중국 여행을 하면서 중국 지명, 인명 등의 발음과 표기가 많이 헷갈렸습니다.
중국의 여러 지명, 인명은 우리에겐 이미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익숙해 져 있는 상태라
한자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한데 요즘은 중국 현지 발음대로 쓰고 읽는 것이 또한 대세이다보니
같은 단어를 두고 어떤 때는 우리식 한자음으로 어떤 때는 중국 현지 발음으로 읽고 씁니다.
심지어 인명의 경우엔 신해 혁명을 기준으로 그 이전 인물은 우리식 한자음으로,
그 이후는 중국식 발음으로 읽고 쓴다고 하니 정말 헷갈리기 짝이 없습니다.
四川航空은 '사천항공'으로 읽어야 하나요? '스촨항공'으로 읽어야 하나요?
아니면 성조까지 잘 맞춰서 '스촨항콩'으로 읽어야 하나요? ^^
전 이번 여행기에서는 이런 골치 아픈 것 생각하지 않고 그냥 꼴리는대로 적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단어를 같은 여행기에 씀에도 불구하고 두가지 발음이 섞일 수도 있습니다. 해량하기길... ^^




3시간 30분 여의 비행을 끝내고 청두 공항에 도착.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에 도착했는데
중국 자유 여행 첫 관문인 택시 기사와의 의사 소통에 실패.
공항에서 5km밖에 안 떨어진 호텔을 찾지 못하여 빙빙 돌아다니는 바람에
택시비가 무려 55원!!
돌아오는 날 같은 구간 이용한 택시비는 13원 나왔더라는...
호텔까지 가는 지도를 준비하고 구글 네비게이션까지 동원했지만
택시 기사의 지도 해독 능력 미비가 가장 큰 문제. ㅠㅠ
★ 이번 여행 사진은 제 사진이 많지만 큰 아이가 찍은 사진도 제법 있습니다.
큰 아이가 찍은 사진에는 ★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6:40 비행기 탑승을 위해 4:30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잠이 안 올 것을 대배히 먹었던 수면제 때문에 늦잠.
호텔 직원이 셔틀 버스 출발 시각이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아서
객실 문을 두드려 깨운 덕분에 겨우 일어나서 허겁지겁 준비하여
리장을 향하여 날아갑니다.






급하게 나오느라 아침도 못 챙겨 먹었는데
공항 대합실에 중국식 패스트 푸드 체인점이 있네요.



치킨 햄버거인데 맛은 그냥저냥 평범한 맛. 나쁘진 않았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호도협 트래킹을 합니다.
치아오토우(교두진)에서 출발하여 28 벤드를 오른 다음 중도 객잔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은 나머지 구간을 마무리 하고 중호도협 격랑을 감상하는 것으로 호도협 트래킹을 마무리 합니다.
리장으로 돌아와 하룻밤 잔 다음
모레는 옥호촌으로 이동하여 전죽림을 거쳐 해발 5,100 미터의 망설봉을 오르는 것이 이번 여행의 핵심입니다.



리장 공항에서 치아오토우까지는 빵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대중 교통이 미흡한 리장에는 작은 봉고 형태의 '빵차'가 많습니다.
일종의 대절 밴인데 가격은 흥정하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쿤밍 한스님께서 예약 대행해 주신 빵차가 미리 대기하고 있네요



모계 사회인 나시족 들은 남자보다 여자들이 일을 많이 한다고 하더니
우리 빵차 기사도 여성입니다.



리장 시내로 들어온 빵차는 일행을 더 태우기 위해 잠시 쉬어 갑니다.
우리 빵차를 예약해 준 쿤밍 한스님의 개인 고객과 합류한답니다.
덕분에 빵차비 절약. ^^



아침 식사를 집에서 하지 않는 중국인들이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식당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 옆에는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는 노점들이 있었는데
햄버거 하나로 조금 부족했는지 군침이 돕니다.



음식의 이름을 물어 봤더니 '바바'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아 보니 '바바'는 이 지방 사람들이 구워 먹는 빵으로서
빵 위나 속에 다양한 식재료들을 넣어서 먹는데
혹자는 이 음식이 피자의 원조라고도 한답니다.

이번 여행 중 처음 먹은 토속 음식이었는데
맛있었습니다!!
특히 담백하게 구운 빵이 참 맛있었습니다.
잘 정련된 밀가루 맛이 아닌
소박하고 담백한 밀가루 맛이 일품이었는데
이 맛은 리장에서 먹은 모든 밀가루 빵의 공통된 풍미였습니다.



이건 빵 가운데를 가른 뒤 고기 다진 소를 넣은 것으로
'고기 호떡'이라고 하면 되려나요?



다시 빵차를 타고 1시간 30분 여를 달려 드디어 호도협 트래킹의 관문인 '치아오토우(橋頭 교두)'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교두진에서 출발하여 나시 객잔에서 점심을 먹고 28벤드를 오른 후 차마 객잔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중도 객잔까지 가서 하룻밤 묵고 내일은 오전에 티나 객잔까지 이동한 후
티나 객잔에서 운행하는 버스 예약하고 중호도협 강 기슭까지 내려가서 중호도협의 거센 물살을 감상하고
리장 시내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호도협은 원래 하나였던 거대한 설산이 둘로 쪼개어 지면서 형성된 좁은 협곡입니다.
이 협곡 사이로 양자강의 상류인 금사강이 흐르면서
좁은 협곡으로 금사강의 물굽이가 거세게 굽이치는데
그 물살이 워낙 거세서 바로 이곳이 제갈량이 남만 정벌 때
거센 물살을 잠재우기 위해 사람 대신 사람의 머리 형상으로 빚은 만두를 재물로 바치고
무사히 강을 건넌 그 지점이라고 하여 만두의 원류가 바로 이곳라고 하는 믿거나 말거나 스토리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호도협이란 이름은 협곡의 너비가 워낙 좁아서 호랑이가 강 가운데 있는 바위를 디딤돌 삼아 강을 뛰어 건넜다고 해서
'범 虎', '뛸 跳' 字를 써서 '虎,跳峽'이라고 한답니다.




트래킹 시작 지점에 있는 호협 도보 객잔에서는 탐방객들의 짐을 보관해 주기도 합니다.
내일 트래킹을 마치고 나면 어차피 이곳을 거쳐서 리장으로 가야 하므로
오늘 당장 필요하지 않는 짐은 여기에 맡기고 갑니다.
치아오토우에서 짐을 맡아 주는 곳으로 유명한 곳은 짐 하나에 10원씩 받는다는 'Jane's Guest House'인데
호협 도보 객잔은 5원씩 받는군요. 

이집 선전 좀 해 줘야 할 듯. ^^



호협 도보 객잔에 짐을 맡기고 배낭을 다시 꾸린 후 이제 본격적으로 트래킹 시작! 해발 1,800m, 11:57



우리나라도 산불 조심을 강조하지만 중국 정부는 특히 더 강조하는 모양입니다.
'숲에 들어갈 때는 항상 불조심을 명심하라'는 말인 것 같은데
이런 류의 표어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습니다.



트래킹 시작 지점은 마을을 통과하는 구간이라서 그런지 유실수들이 많네요.



호도협 트래킹은 다른 등반과 달리 음식과 음료수를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군데군데 음료수, 간식을 파는 가게나 난전이 있고
식사를 제공하는 객잔도 여러 곳 있기 때문이지요.



마을을 벗어나 이제 길은 본격적인 트래킹 길로 접어 듭니다.
저 청년들은 1박 2일 동안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트래킹을 했었는데
빨간 옷 입은 친구가 DSLR 카메라를 잘 다루어서
저 친구 덕분에 우리 부자가 함께 나온 사진을 몇 장 건질 수 있었네요. ^^





경운기와 트럭의 하이브리드? ^^



아버지가 쓰던 페도라를 같이 나눠 쓰고 옷색깔까지 맞춘 부자! ^^



드디어 호도협의 물결을 이루는 금사강(金沙江)





호도협의 한 벽을 이루고 있는 옥룡 설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아쉽게도 정상 부분은 구름에 가려져 있는 모습.



차마고도란 말 답게 이곳엔 말이 매우 흔한 가축입니다.
저 녀석은 지금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지만
자기 차례가 되면 안장을 얹고 손님을 태우러 나가야 할 터입니다.



이곳은 골짜기 척박한 땅이라 옥수수가 주된 작물인 것 같습니다.





길가에 위치한 허름한 매점 겸 객잔에서 생수를 두 병 샀습니다.
군데군데 이런 곳이 있으니 많이 살 필요는 없고 당장 마실 만큼만 사면 됩니다.



드디어 마부 딸린 말이 나타납니다.
앞으로 시작될 오르막 길이 힘들테니 말을 타라는 말을 손짓 발짓으로 합니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말 타!'라고 한국말로 하네요.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게 아닐테고 그러면 어느 정도 관상을 보면 알 텐데
필요 없다고 해도 계속 따라 옵니다.
따라오는 건 자유 의지지만 계속 바로 뒤에서 방울 소리 울리며 따라 오니 신경이 쓰이긴 합니다.





계곡이 깊어짐에 따라 강폭이 약간씩 좁아지는 것 같죠?



협곡의 강물이 잘 보이는 첫 조망점에서...



천하제일측, 즉 세상에서 제일가는 화장실이란 뜻인데
아마도 중도 객잔에 있는 천하제일측의 짝퉁인 모양입니다.

들어가서 풍광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



호도협에선 길이 헷갈릴 때는 말똥을 따라 가면 틀림 없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길의 주인은 우리같은 나그네가 아니고 이 말 들인지도 모릅니다.









마부도 힘이 드는지 말을 타고 따라 오네요. ^^



호도협과 같은 고지대에 와 보면 산소의 소중함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도가 2,100 미터 쯤 되려나요?
우리나라의 산이라면 전혀 숨이 차지 않을 정도의 경사에도
약간 숨이 참을 느낍니다.
이런 느낌은 갈수록 심해지겠죠?





제법 경사가 높은 언덕을 오른 뒤에는



어김없이 음료수와 과일, 간식 거리를 파는 노점이 있습니다.



처음 보는 과일을 하나 먹어 봤는데 씨가 많고 맛은 좀 밍밍했습니다.
별 맛이 없더군요.
끝까지 이름을 몰랐다는...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경치도 점점 좋아집니다.



호도협 트래킹 길을 이루는 바위벽은



이런저런 객잔들의 광고판이 되기도 합니다.
중국답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잠시 구름이 갈라진 틈새로 고운 햇살이 트래킹 길을 비춥니다.



갈림길이 있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객잔 알림판이나 바위에 써진 화살표가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트래킹을 시작한지 1시간 30여분 만에 나시 객잔이 있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옥수수 밭을 지나



설산의 녹은 물이 내려오는 수로를 하나 지나니



우리의 첫 번째 휴식 지점인 나시 객잔(納西客棧)에 도착합니다. 해발 2,160m, 5.1km 지점, 13:45



객잔의 메뉴 중에는 한국식 닭백숙도 있는데
주문이 들어오면 이 녀석들 중 한 녀석은 바로 솥으로 들어가야 할 운명이겠죠?



인증샷 한 장 찍고...







이곳 식당에선 대부분 손님에게 물대신 차를 내 놓습니다.
역시 차의 고장 답습니다.



음식을 주문한 후 객잔을 슬슬 돌아 봅니다.











이곳의 객잔들은 모두 이렇게 옥룡 설산과 호도협을 조망할 수 있는 옥상 전망대가 있습니다.



호도협에 위치한 객잔들은 화려한 인테리어가 필요 없습니다.



입을 다물 수 없는 최고의 풍경화가 눈 돌리는 곳마다 턱턱 걸려 있으니까요.







아침 먹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간단하게 감자 볶음(水炒土豆絲)과



돼지고기 버섯 볶음(猪肉炒蘑菇)을 시켰는데
맛이 좋았습니다!!

이 지역 음식이 우리 입맛에 거부감 없이 잘 맛는 것 같습니다.



디저트 삼아 시킨 바나나 파이(香蕉派)도 굿! ^^





나시 객잔의 계산대 뒷 벽에 붙은 각종 인쇄물들.
역시 한국인들의 자취 남기기 습성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한글로 된 인쇄물이 꽤 많이 보이네요.



에너지 보충하고 다시 출발!



저기 언덕 끝 어디 쯤이 28벤드의 시작점일 겁니다. 28벤드는 고개 뒷편에서 오르막길로 이어집니다.



잠시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나시 마을이 벌서 저만큼 아래에 있네요.



길을 걷다 보면 말들이 길을 차지하고 비켜 주지를 않습니다.



혹시 뒷다리에 채이기라도 할 새라 조심조심 비켜갑니다.



염소들도 길을 막고...
이런 풍광 때문에 호도협 트래킹 길은 등반로라기 보다는
마을 사이로 나 있는 올레길, 둘레길 같은 느낌입니다.



길이 헷갈리는 지점엔 거의 항상 화살표나 안내문이 있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네요.



나시 객잔을 벗어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한참을 올라왔더니 주변 풍경이 제법 달라지고 금사강도 점점 까마득해져 갑니다.



숨이 제법 찬다 싶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쉼터.



잠시 숨을 고르면서 시원한 캔커피 한 잔 사 마시고 다시 출발하는데



매점의 규모가 좀 크다 싶었더니 마방도 같이 운영하나 봅니다.
그 전의 마부가 나시 객잔 조금 전에 포기하고 돌아가더니 여기서 또다른 마부가 호객을 합니다.
다행이 이번엔 우리가 안탄다고 하자 따라오지는 않네요.





이제는 많이 가팔라진 길을 숨을 몰아쉬며 올라갑니다.
몇 걸음 안 가 찬 숨은 산소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고
산소 농도가 떨어진 피는 근육에 힘을 주지 못해 다리를 흐느적거리게 만듭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점점 멋있어지는 풍광!





한참을 헐떡이며 올라갔다 싶은데 눈앞에 나타난 '1'이란 숫자!
그렇네요. 여기가 바로 28 벤드 시작점이군요!!
어떤 이가 쓴 여행기에 28 벤드보다 그 전의 오르막이 더 힘들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헐!~ 28 벤드는 가파르긴 가파르더군요.
국내 산이라해도 이 정도면 상당히 가파른 편인데 2,600미터에 달하는 해발이니!!...



부족한 산소 탓에 휴식을 채근하는 근육을 달래며 한발한발 오른 끝에



드디어 28 벤드 정상에 서다!! ^^
해발 2,650 m, 7.3km 지점, 15:57.
출발한지 4시간 만입니다.


28 벤드 정상 약간 아랫쪽엔 포토 존이 있는데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일인당 8원씩 내랍니다.
김선달은 팔아 먹을 물이라도 있었지만
이건 뭐 완전히 거저 먹는 돈입니다.
그래도 이 포토존의 풍광이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흥정을 해 봅니다.
한국인은 일인당 5원씩 받는다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어서
한국인이라고 하니 10원 내라고 하는데
몇 번의 흥정 끝에 8원으로 합의했습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길을 따라 조금 내려 가니 드디어 호도협 물길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가 니옵니다.
此景 向飛虎
무슨 뜻일까요?



저 아득한 물길이 보이시나요?



아 풍경 좋습니다.
이런 절경을 만나면 범부의 마음에도 시심이 깃들게 됩니다.
그러나 워낙 문재가 없는 위인이라
직접 시를 읊을 엄두는 못내고
중국에 왔으니 만큼 한시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대학 시절 약간의 관심을 가졌을 때 익혔던 몇 안 되는 한시 중
자연의 시인 도연명의 작품 중 '飮酒'란 시의 중후반부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다 문득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이 저무니 산의 기운은 더욱 아름답고 새들은 무리를 지어 집으로 돌아오네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이런 가운데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을 터인데 말을 하고 싶지만 표현할 말을 잊었네.


도연명이 보았던 풍경은 저녁 무렵의 고즈넉한 풍경이어서 지금의 이 장엄한 풍광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지만
천하의 절경을 두고 표현할 말을 잊은 것은 도선생님이나 저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



넓었던 금사강물이 이제 많이 좁아진 협곡을 지나가면서 물살이 많이 거세졌네요.







28 벤드 정상에서 본 옥룡 설산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원본을 보려면 클릭해 보세요



절벽에 삔 한송이 야생화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꽃을 보니
문득 대학 시절 합창으로 불렀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절벽에 매화 한 그루 바위틈에 끼어 있구나...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인데
호도협을 걷는 내내 흥얼 거리다 후반부 가사와 곡조가 생각나지 않아서
여행기를 적으며 찾아 보니 김인곤 작시, 김규환 작곡의 가곡이었군요.

매화 / 김인곤 작시, 김규환 작곡

절벽에 매화 한 그루 바위틈에 끼어 있구나
그렇게 구차하게 살아도 좋다하네
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라네
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란다네
꺼꾸로 매달려도 제 멋 제 철을 못 이기어
눈 쌓인 그 사이로 방긋이 피었구나
멋없는 잣나무들이사 그 마음을 어이 안다하리

절벽에 매화 한 그루 바위틈에 끼어 있구나
그렇게 구차하게 살아도 좋다하네
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라네
청산에 비껴 서서 굽어 보며 사노란다네









인증샷 몇 장 찍고



어렵게 삼각대도 설치해서 부자 인증샷도 찍었습니다.







정상 전망대 옆에는 음료수와 간식을 파는 난전이 있었는데
여기엔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인 보드가 있습니다.



얼마전 공중파 방송 오락 프로그램인 '7인의 식객' 팀이 이곳에 왔다는데
낯익은 이름들이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 저 보드가 가득차면 새 보드로 바뀔테니 부질없는 짓이긴 하지만
우리도 동참해 봅니다 사용료까지 지불하고... ^^







이제부터는 더 이상 오를 일은 없고 계속 내리막길이라 한결 편합니다.



옥룡 설산 봉우리들의 정상 부근에 자욱하던 구름이 살짝 걷히면서
푸른 하늘도 드러나고 햇살도 비칩니다.
몇 개의 봉우리는 정상부도 보이네요.



아 정말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아름답고 장엄한 풍광이 탐방객의 발길을 잡아 끌어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이 광경을 또 언제 다시 보려나 싶어 자꾸 돌아다 보게 되네요.



파노라마뷰 만들어 봤습니다. 사진을 누르면 큰 사진이 나옵니다.





28 벤드 정상에서 40여 분 걸어 내려오니 차마 객잔이 나옵니다.
마을 옆에는 어김없이 설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있습니다.
마을 옆에 물이 있다기 보다 물이 있는 곳에 마을이 생긴 것이겠죠?



Tea-Horse Guest House! 이름 그대로 차마 객잔입니다. 해발 2285m, 10.6km, 17:36





차마 객잔의 전망대에서 한숨 돌리며



탁 트인 전망을 잠시 즐기고






중도 객잔을 향하여 다시 발길을 옮깁니다.





부지런하기도 한 호도 객잔의 주인장.
호도협 트래킹에서 가장 많이 만난 안내판입니다.





염소 풀 다 뜯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모양입니다.





이제 고도가 많이 낮아 졌는지 강줄기가 제법 가까이에서 보입니다.



파노라마 뷰입니다. 클릭하면 큰시잔을 볼 수 있습니다.



차마 객잔에서 중도 객잔으로 가는 길에는 호도협 트래킹에서 가장 유명한 포인트 중 하나가 있습니다.
'얼굴 바위'라고 부를까요?



포토존을 비껴갈 순 없지요?





이제 서서히 해도 저물어 가고





풀 뜯어러 갔던 말들도 집으로 돌아올 때 쯤. 



오늘의 종착지 중도 객잔(中途 客棧)에 도착합니다.



영어로는 Halfway Guest House군요.



오늘의 트래킹을 마무리하는 인증샷 한 장!
해발 2,350m, 15.7km, 19:19. 11:57에 길을 떠나 7시간 22분 만에 중도 객잔에 도착했습니다.
부지런히 걸었으면 더 일찍 도착했겠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트래킹 길이니 가능하면 모든 풍광들을 눈과 사진에 담는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도 이곳은 베이징보다 훨씬 서쪽에 있지만 동일 시간대를 쓰는 관계로
오후 7시 20분의 시각인데도 아직 환합니다.



중도 객잔은 호도협 트래킹 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객잔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곳엔 영어가 통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종업원이 다 영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접수를 보고 있는 청년만 영어를 할 수 있는데
영어가 제법 능숙해서 의사 소통에 아무 불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도 객잔엔 외국인 투숙객이 많은 편입니다.



우리가 머문 날에도 이층 전망대엔 여러명의 서양인 탐방객을 볼 수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 뿐만 아니고 다음날 중호도협에서도 여러 외국인 그룹을 만났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호도협은 미국보다는 유럽에 더 잘 알려진 듯 보입니다.



중도 객잔의 접수부 옆의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옥룡 설산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호도협 트래킹 중 옥룡 설산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망대엔 솟대가 하나 있는데 세계 각국의 국기가 매달려 있습니다.



한국 탐방객이 많을 텐데 한국 건 없네요.




風高物燥嚴禁用火
여기도 어김없이 불조심 표어가 있네요.
바람이 세고 사물이 건조하니 화기 사용을 절대 금한다는 내용 같습니다.







저녁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설산은 서서히 어둠에 묻혀 갑니다.



저녁 식사로 시킨 요리는 닭 요리인 궁보계정(宮保鷄丁)과



송이 버섯 볶음(炒香菇)




돼지고기 볶음(靑椒炒猪肉)인데
세가지 모두 정말 맛있었습니다.

원래는 한국인들이 거의 필수로 먹는다는 오골계 백숙을 먹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나
우리는 외국 여행을 가면 입에 맞든 안맞든 그 지역 음식을 먹자는 원칙을 고수하는 의미에서
이 메뉴들을 시켰는데 결과적으로 무척 잘한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여행 끝나고 나서 이번 여행 중 가장 맛있었던 식사를 꼽았을 때
아이와 제가 이구동성으로 이 중도 객잔의 저녁을 꼽았습니다.



더군다나 식사의 배경이 되는 풍경이 바로 이 옥룡 설산이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
정말 제 생애 최고의 저녁이었습니다.



저녁 식사와 함께 면세점에서 산 발렌타인 17년 산
그리고 이 지역에서 가장 흔한 맥주인 대리 맥주와 칭따오 맥주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호도협에서의 첫날 저녁이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호도협은 그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곳입니다.


호도협 둘째날 보기